안양지역얘기/담론

[김대규]지역발전을 위한 고언(苦言)

안양똑딱이 2016. 5. 3. 16:35
[김대규]지역발전을 위한 고언(苦言)

안양시민신문 발행인


 

최근 수삼년 간 우리 안양에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발전의 기반조성을 위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기에는 벤처벨리조성, 시민축제개최, 경인교대유치, 안양학연구소설립, 문예진흥기금조성 등을 비롯하여, 시민단체들의 의욕적인 조사·연구·제안, 여성계의 눈부신 활동, 안양역사와 롯데백화점 개설, 그리고 최근의 ‘아트시티’조성계획, 신필림종합예술학교 설립과 무비타운 건립을 위한 일련의 논의들이 포함된다.

국가경영은 정치와 경제를 축으로 삼게 마련이지만, 지역사회의 경우는 ‘행정’이 주체가 된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일단 시당국의 적극적인 사업의 개발과 추진에 응분의 평가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와같은 괄목할 만한 과업의 추진에 있어, 그것이 시당국과 관계될 때는 해당분야의 전문가들, 특히 시의회나 시민단체로부터 거부감이나 비판을 받아왔음도 묵과할 수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바로 지금이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중지를 모아야 할 시점이라는 취지에서 시당국과 시의회나 시민단체측에 고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시당국은 추진사업의 당위성이나 중요성보다, 계획수립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시행결정에 이르는 전과정에서 의회나 전문성이 있는 시민사회단체와의 협의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이는 지방자치의 본질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더 훌륭한 대안을 가진 인사가 참여의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소외감을 안게 되거나, 의회와의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결여될때, 시당국은 ‘독단’이나 ‘무시’라는 굴레를 벗기 어렵게 되고, 이는 소기의 목표달성에 장애요인으로 등장되게 마련이다.

이와는 반대로, 시의회나 시민단체의 관계 전문가들은 비판이나 거부감 표출의 방향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다 나은 ‘대안’이 없는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투쟁’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우리는 ‘갈등’이 아니라 ‘상보(相補)’의 구조로 가야 한다. 투쟁은 항상 ‘all or nothing’의 논리다. 그러나 상보는 이질성의 조화에 의한 대안의 창출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 지역적, 종교적, 이념적 갈등 구조에 의해서 편재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결되어야 할 것이 ‘지도자’부터의 의식변화다.
따라서 필자의 고언의 촛점은 시행정의 책임자인 시장, 각동의 지도자인 의원,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의 대표에게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안양의 발전을 위해서는 위의3자들이 이마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가장 진실되게, 가장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 어떤 일에 있어서나 가장 본질에 달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진정으로 지역사회를 사랑하고, 공익을 염원하며, 발전을 기원한다면 누구를 탓하고, 어찌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투쟁은 배격하고, 상보는 포용한다. 행정은 민(民)을 먼저 헤아려 베풀려고 해야 하며, 민(民)은 행정을 이해하고 협조하도록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렇다면 거기서 어찌 갈등이 생길 것인가.
고정관념은 자기우월주의의 창이며, 선입견은 배타주의의 방패다. ‘너-나’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라는 의식의 틀부터 먼저 만들어 가자.

2003-05-28 09:3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