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30202]1980년대 안양공설운동장에서 근명여상 밴드부

안양똑딱이 2023. 2. 2. 15:48

2023.02.02/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근명여상밴드부 #안양 #만문누리 #

사진출처: 다음카페에서 https://cafe.daum.net/agapesgd/76nN/65?q=%EA%B7%BC%EB%AA%85%EC%97%AC%EC%83%81+%EB%B0%B4%EB%93%9C%EB%B6%80&re=1

 

1980년대 안양은 물론 인근 군포.의왕.광명 등에서 열렸던  왠만한 굵직굵직한 행사를 비롯 각종 행사에서 연주와 공연을 했던 근명여상 밴드부 사진으로 뒷 배경을 볼 때 1980년대 초  안양 석수동에 있던 안양공설운동장(현 럭키아파트)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해 공연한 모습으로 보인다.

시흥군 시절인 1970년대 조성한 안양공설운동장은 시흥군.안양읍 시절 각종 체육대회와  행사들이 열렸으며 1977년 안영대홍수 당시에는 수재민 보호소로  100여둥이 넘는 거주용 천막들이 설치되기도 했다. 안양공설운동장은  1986년 6월 30일 현재의 비산동에 새 운동장이 건립되면서 역할를 다하고 매각된후  아파트가 들어섰다..

안양의 수리산 언덕 아래 안양5동에 위치한 안양여상은 1967근명상업고로 설립되어 근명여자상업고등학교를 거쳐 근명여자정보고등학교로 이어오며 50여년간 여자학교로 운영해 오다 2020년 신입생부터 여학생뿐만 아니라 남학생도 입학이 가능한 남녀공학으로 개편하고 교명도 근명고등학교로 변경했다.

근명고는 20201월초에 50회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누적 졸업생은 28천여 명에 달한다.

자영업자와 일용직 근로자, 노인 등 취약계층의 타격이 가장 크다. 한편 중소기업들은 각종 원·부자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공급망이 끊겨 문을 닫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이다. 해외 네트워크가 약해 다른 나라에서 부품 조달하기가 쉽지 않고 비싼 국내 재료를 쓰게 되면 제조원가를 맞출 수가 없다고 한다.

 

근명여상에 다녔던 여학생이 옛 기억을 더듬어 쓴 추억의 글

 

여자들은 아침 저녁으로 거울을 볼때마다 " 그나마 나는 눈이 커서 매력이야~~"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고, 남자들은 헬스클럽에 다닐 경우 " 사람들이 나를 보면 근육질의 남자라고 부러워 하겠지..." 하면서 기분좋게 살 수 있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엔 "착각도 행복"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착각을 일으키는 것 중에 유니폼이 있지. 교복을 입던 과거에  일류 중.고등학교 다닐때 사람들이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을것이다.

저 위에 있는 한장의 사진을 보니 그때 우리는 사춘기였을것이다.

근명여상의 자랑스런일들중 하나가 수영부가 있다는것과 밴드부가 있었다는 것. 밴드부 지휘자 전미화~~~~이쁘고 날씬하고 성격 좋았던 친구가 맨앞에 서서 지휘봉을 휘저으며 안양시내를 활보할때 내 가슴까지 콩콩 뛰었지.

 

 

옛날에는 학생들이 거리를 행진하는 행사가 많았어. 그땐 한반에 68명씩 한 학년이 480명이 넘었던걸로 기억되네.

한학년이 500명 가까이 있으니 3개학년이 모이면 약 1.500명이 되나? 야간까지 합하면 더 될꺼야.

거기다가 같은 운동장안에 있는 근명여중까지 합치면 약 3,000명이나 되었지.

3천명이 4열 종대로 서서 안양시내를 행진하면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기다란 행렬이 되었다. 그 행렬의 맨앞에 서서 트럼펫과 트럼본, 클라리넷과 섹스폰.. 큰북과 작은북...엄청나게 큰 나팔폰옆에서 실로폰까지 약 30여명의 밴드부가 선두 행진을 하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힌색과 하늘색 유니폼으로 차려입은 밴드부는 이때가 가장 신나는 날이기도 하고....양쪽 길가에는 남녀노소 시민들이 나와 박수치며 환호성을 울렸어. 그냥....아는 사람도 없는데 보는 것 만으로도 신이 났던 모양이다.

 

내가 트럼펫을 안불었어도 내가 분것마냥...내가 비록 그 유니폼을 입지 않았어도 근명여상 밴드부가 활보하는 것을 보는것 자체만으로도 난 사람들이 나를 쳐다 보는것 같은 착각의 행복을 느꼈던 거이야.

우리가 언제 짧은 치마에 주름치마를  나풀거리며, 햐얀 깃털달린 햐얀 모자쓰고 까만 구두에 햐얀양말 목다리를 두번접어 신던 우리가 언제 햐얀 부츠 신어 보겠냐 말이다....

그때 그시절 우리는 밴드부를 보면서 대리만족! 착각의 행복을 느껴보았던 여고생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