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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국민보도연맹학살 안양에서도 죽음 있었다

안양똑딱이 2023. 2. 2. 14:40

해방 이후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 그리고 한국 전쟁을 통해 무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10월 인민항쟁, 여순 사건, 4.3제주 사건,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사건 등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그 중에서도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은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다. 아마도 한국 역사 전체를 통해서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단기간에 희생된 사건을 찾아보기가 힘들며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사건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학살은 그것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 발생한 일이라 할지라도 민간인에 대한 살상은 반인륜 범죄이며 전쟁범죄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란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이 625일부터 9월 중순경까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맹원들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국민보도연맹이란 과거 남로당 등 좌익 단체에 가입해 활동했거나 이와 관련한 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향시켜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전국에 걸쳐 30여만명(8)의 맹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은 국가 권력에 의해 전국에 걸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학살자 숫자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고 최소 수만명에서부터 최대 30만명까지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10) 적어도 1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공회대학교의 김동춘 교수는 국민보도연맹이야말로 단군 이래 우리 역사에서 국가 공권력이 저지른 가장 잔혹하고 비인도적이고 반국민적인 범죄라고 평가했다.

한강 이남지역에서는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과 과천에서부터 사건이 발생하였다. 참고인 김○○에 따르면,576) 부친 김○○(1911년생, 당시 40)은 전쟁이 발발한 이후 경찰에 끌려갔고,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말죽거리(현재 양재동)에서 군인에 의해 죽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참고인 이○○에 의하면 과천지역에서도 개전 초기 보도연맹원이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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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강원국민보도연맹사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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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 참고인 김○○ 진술조서(2009.6.4). 참고인의 선친 김○○은 전쟁 이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고, ○○ 자신이 안양경찰서 내의 보도연맹 사무실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다른 보도연맹원 2030명이 모여 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부친의 사망일이 제적등본상 195087일로 되어 있으나 정확한 날짜는 아니라며, 그 날짜는 모른다고 하였음. 당시 부친의 시신은 전쟁 중 어머니가 말죽거리에서 찾았는데, 여러 사람의 시체 중에서 바클을 보고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하며, 현재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에 부친의 묘가 있다고 진술했다.

 

577) 경기 안양지역 미신청 건 조사보고(집단희생조사국-113, 2009.06.26). ○○은 당시 안양경찰서 과천지서에 근무하였다.

그는 당시 보도연맹은 과천에도 조직되어 있었는데, 전쟁이 나고 7월초쯤 과천에서도 보도연맹원을 안양경찰서로 보냈는데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증언했다.

 

한국 현대사 최대의 민간인 학살 사건.. 보도연맹의 정체?

https://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901

 

국민보도연맹사건: 한국 현대사 최대의 민간인 학살 사건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