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만명의 아기들이 태어난 신영순병원
안양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포도, 영화, 안양유원지 그리고 신병원이 있다.
1965년 5월, 경기도 안양시 안양1동(안양시 안양동 674-179)에서 신영순산부인과로 개업한 후 1979년 신영순병원과 1996년 12월 안양8동에 병원을 새로 신축해 이전하면서 신병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2003년 폐업하며 문을 닫기까지 34년 동안 25만명이 넘는 아기들이 태어난 곳이다.
"지역주민에 대한 양질의 의료보건서비스와 모자보건 및 가족계획사업의 선구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은 물론 질 높은 의료기관으로서 국민보건향상과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 인술 · 친절 · 봉사의 정신으로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병원이 되고자한다"
박애·인화·노력은 이 병원의 운영이념인 동시에 환자와 지역주민들에 대한 직원들의 마음가짐이기도하다
신영순병원은 1979년 3월14일 모자보건전문병원의 개설허가를 취득, 산부인과와 소아과,임상병리과,방사선과,초음파실 등을 설치했다. 이때 모자보건 및 가족계획실도 신설했다. 안양1동에 있을 당시 세 차례에 걸쳐 병동을 증축했고 1996년 모자보건 여성전문병원으로 확장하기 위해 안양8동으로 이전한다.
1996년 12월 안양8동 성결대옆에 신축 (설계:건축가최승원-대한민국 환경문화상)한 새 병원 이름은 신병원으로 전국적인 여성전문병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진료과목을 확대했다.
이 병원은 대지 1백49평에 연건평 4백93평의 5층 건물과 50병상의 입원실, 40병상의 신생아병상 및 20대의 신생아보육기 등을 갖추는 등 모자전문병원으로서 필요한 모든 의료장비를 골고루 설치해 놓았다.
신병원은 비둘기가 알을 품고있는 디자인에 환경친화적이며 예술성을 가미해 건축부분 상(1997 문화관광부 환경문화대상,1997 경기도 건축문화상 금상)을 받을 정도의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입구 계단을 오르다 보면 두 어미새가 아이들을 태우고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 작품(조각가:전뢰진)을 볼수 있었다.‘ 모정 나들이’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미새에 비유, 인술을 향한 신병원의 끝없는 의지를 표현했다.
병원 1층에‘아기 놀이방’을 갖춰 아이들과 병원을 방문한 부모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진료시 부담감을 해소토록 유도하고 아기들에게 놀이공간을 마련 친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하 1층에는 최첨단 시청각 기기를 설치하여 산모들을 위한 교육장과 지역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조성하기도 했으며 환자들이 갖는 부담감을 해소하고자 병원 7층에 식당을 마련해 시내 전경을 내려다보면서 식사를 하도록 함으로 환자들과 가족, 직원들에게 쾌적한 공간을 제공했다.
하지만 신병원은 안타깝게도 1997년 IMF 직격탄을 맞으면서 무리한 확장의 후유증으로 신영순산부인과로 개원한지 44년만인 2003년 폐업함에 따라 2004년 의료법인 효산의료재단(이사장,이상택) 샘여성병원으로 간판이 바뀌게 된다.
신영순병원이 유명했던 이유는 그 첫번째가 조산사 수습의료기관으로서 1979년 이래 수백여명의 조산사를 양성 배출했다. 두번째로는 자궁암 등록제도를 마련, 정기진단과 정밀검사로 자궁암을 조기발견토록 예방과 건강관리 지도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임산부등록제도도 마련하여 산모들의 산전산후 건강관리교육을 중심으로 운영했다. 그런가하면 적극적인 가족계획사업을 벌여 정부의 인구억제정책에 적극 참여하고 산모들을 위한 태교음악회나 지역내 어린이들을 위한 사랑의 대잔치를 개최하는 등 환자진료는 물론 지역내 발전을 도모 하는 사업도 펼쳤다.
또 네쌍둥이를 건강하게 받아내 텔레비젼뉴스에 나왔고, 보호자가 없는 급박한 임산부도 주저없이 받았으며, 연고없는 아기만 남았을때는 병원 신생아실에서 1년이나 키워 돌잔치까지 해주고 복지재단에 보내기도 했다.
특히 신영순병원은 매년 5월31일이면 어린이를 초청,‘어린이 잔치’를 베풀었다. 안양시내 극장, 평촌 놀이공원원등에서 열렸던 이날 행사는 뽀빠이 이상용, 개그맨 심형래 등이 사회를 보는 등 당시 안양 최대의 어린이축제로 행사에 오는 어린이들을 무료진료 하는 등 지역에서 나름대로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병원장 신영순(申英順)씨는 1936년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해 인천여고와 1961년 수도의과대학(고려대 의대 전신)을 졸업했으며, 가톨릭의과대학교 대학원(의학박사,1984)을 나왔다.
그녀는 1965년 신영순병원장, 1986년 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장과 1993년 6월1일 제17대 한국여자의사회장, 고대의대 교우회장, 1994년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1995년 사단법인 베트님한인 2세와 하께 가는모임 공동대표, 1988년에는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 전국구 비례의원으로 제13대 국회에 진출해 정치에 입문하기도 하는 등 여장부다운 면모를 과시했었다.
1992년 4년의 임기를 끝낸 신영순은 의사이자 활동가로 돌아와 1996년 12월 안양8동에 모자보건 전문병원을 오픈한다. 비둘기가 알을 품고있는 디자인으로 건축부분 상을 받을 정도의 아름다운 건물이었던 신병원은 안타깝게도 1997년 IMF 직격탄을 맞으면서 무리한 확장의 후유증으로 개원 44년만인 2003년 폐업함에 따라 병원을 잃고만다.
신병원 문을 닫은 신영순은 안양을 떠난다. 그녀는 울산 보람병원장으로 잠시 근무하다가 2009년 9월 전남 강진으로 내려가 마량에서 우리의원을 개원(강진신문 2009.09.18)하고 인근 주민들을 위해 진료에 나서는 등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의사로 일했으나 지병으로 2019년 3월17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별세한후 에덴낙원에 자연장으로 묻혔다. 유족으로는 섬유공예 예술가로 활동해온 동생 신영옥이 있다.
44년을 의료인으로 살았던 그녀는 한 언론(경행신문 1996.08.12)과의 인터뷰에서 '사후에 봉사를 소명으로 알고 여성의 권익 향상에 발벗고 나섰던 사람이자 모자보건에 온정열을 쏟았던 여의사'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한적이 있다.
한편 현재 안양6동에 거주하는 동생 신영옥씨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였다. 오랜기간 섬유예술가로 활동해 왔으며 2003년 ‘안양을 빛낸 여성상’을 수상한바 있다. 부군은 안양시 지명위원이자 만안구 만문누리위원으로 활동중인 최승원 건축가이다. 그녀의 뛰어난 작품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특별전과 필라델피아미술관등에서 전시되었다. 영국의 빅토리아&알버트미술관, 일본의 갤러리 나노리움, 캐나다 한국대사관, 대만시립미술관,필라델피아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일민미술관,성곡미술관,홍익대미술관등에도 소장돼 있다.
아래 사진 출처: 대한병원협회지 병원탐방-신영순병원
[Kisti 연계] 대한병원협회 대한병원협회지 Vol.18 No.10 1989 pp.6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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