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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0]울림의탄생, 2021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개부분 수상

안양똑딱이 2021. 8. 30. 08:33

안양시청 1층 로비에 있는 큰 북을 만드신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0호 악기장(북메우기) 임선빈 선생님을 3년 동안 카메라에 담은 영상 이정준 감독의 작품 <울림의 탄생>2021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관객상'을 수상했습니다. 큰 축하를 전합니다.

<시놉시스>

<울림의 탄생>은 경기 무형문화재 30호 악기장 임선빈 선생을 주제로 그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스승님의 공장에서 우연히 들은 어릴적 떨어진 어머니의 품을 닮은 북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평생을 북을 만들어 왔다. 어느 날, 귀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한 선빈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잇는 철부지 아들 동국과 함께 자신이 어릴적 들었던 마음을 위로해주는 소리를 내는 북을 만들기 위해 20년간 간직했던 목재를 꺼내 큰 북을 만들기 시작한다.

<울림의 탄생> 을 연출한 이정준 감독은 TV프로그램 제작으로 영상제작일을 시작했으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바람커피로드>, <올드마린보이>,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의 조감독 및 촬영을 담당하며 경력을 쌓았으며 <울림의 탄생>이 그의 첫 연출작이다.

한편 이정준 감독은 최근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안양 출신의 나바루 감독이 2019년부터 제작중인 FC안양 서포터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수카바티>의 촬영감독을 맡아 축구선수들과 팬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한편 산스크리트어로 ‘극락’을 뜻한다는 의미의 <수카바티>는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제작비 일부 지원을 받아 과거 사라진 안양LG와의 투쟁, FC안양의 창단과정에 동거동락 함께했던 팬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코로나 19 정국에 대면 경기를 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막바지 촬영이 한창으로 2021년 개봉 예정이다.

<두 번째 행군>이라는 독립영화를 통해 데뷔한 나바루 감독은 "처음에는 안양시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준비했다. 안양의 무속신앙과 포도농장 등을 돌며 안양의 역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을 생각이었다. 그 중 하나로 과거 사라진 안양LG의 역사를 담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FC안양 서포터스를 보고 감탄해 팬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고 <수카바티> 영화 제작을 하게된  동기를 밝혔다.
그는 축구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면서 이미 성공을 거둔 <비상>을 언급하며  “<비상>이 ‘팀’에 관한 이야기라면 우리 영화는 ‘팬’에 초점을 둔 영화다. 촬영을 하면서 경기 모습도 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안양을 응원하는 팬을 주인공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포도농장과 무속신앙 등도 안양 축구와 아예 연관이 없지 않다”면서 “안양의 팀 컬러가 보라색인 건 안양의 상징인 포도에서 따온 거다. 안양 팬들이 작년에 포도농장으로 봉사를 가기도 했다. 또 ‘수카바티’라는 구호 역시 산스크리트어로 ‘극락’을 뜻한다. 안양이라는 지명의 뜻도 ‘극락’아닌가. 영화에 축구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안양이라는 곳과 맞물려 영화를 풀어내고 싶다”고 계획을 전해 안양을 이야기로 담은 또 하나의 영화 탄생에 주목을 받는다.

 

"하늘을 열고, 땅을 울리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웅장하고 장엄한 소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분명 자연에서 올 것 같은 이 커다란 울림은 한 장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온 대지 속으로 공기를 가르며 퍼져나간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0호 악기장(북메우기) 임선빈 선생은 청각장애를 뛰어넘어 북의 완전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 하늘이 낸 장인이다. 천지를 진동케 하고 삶에 기운을 북돋아주는 큰북 만들기를 특기로 한다.

임선빈 선생이 생명이자 천명과도 같은 북과 만난 것은 넝마와 거지생활을 하던 10살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가 나던 1950년 선천성소아마비로 태어난 임선빈 선생은 서울 이촌동에서 집단거지생활 중 폭력을 견디다 못해 몇몇 형들과 탈출했다. 기차를 타고 무작정 간 곳이 전라도 여 수 덕양. 그러나 덕양 우시장에서 선천성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임선빈 선생은 걸리적거린다고 버림을 받았다. 더구나 동네 아이들이 던진 돌을 맞아 머리에 피까지 흘렸다. 임선빈 선생을 발견한 것은 그를 운명처럼 북소리로 이끈 첫 스승 황용옥 선생이었다. 소가죽을 사러 왔다가 그를 보고는 대구 공방으로 데려갔다. 잔심부름을 하던 임선빈 선생은 11살부터 북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손재주와 눈썰미가 뛰어났던 임선빈 선생의 실력이 눈에 띠자 이를 시기한 선배들이 임씨를 때려 오른쪽 청력을 잃었다. 나머지 한 쪽 귀마저 청력이 약해 보청기를 사용해야 하는 임선빈 선생은 소리가 생명인 북메우기 장인으로서 최고의 결함을 가졌지만 그가 천상을 울리는 북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그의 첫 스승의 사랑과 가르침 때문이었다. 스승은 그에게 북만드는 법은 물론 소잡는 법과 가죽 고르는 법, 심지어 북을 만들기 전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을 찾으라는 마음가짐까지 모든 것을 내주었다. 지금도 대형북을 만들 때는 스승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스승이 세상을 뜨면서 공방이 문을 닫은 후 생계를 위해 단청을 배우던 시절, 두 번째 스승인 대구시무형문화재 김종문 스승을 만난다. 첫 스승으 로부터 미처 배우지 못했던 기술까지 전수 받은 임선빈 선생은 본격적으로 북메우기에 들어갔다.

북의 생명은 소리다. 임선빈 선생은 소리를 고를 때 보청기를 뺀다. 오로지 손끝 울림과 마음으로 소리를 듣는 것이다. 소리가 좋지 않을 경우 완성한 북을 몇 번이고 뜯어낸다. “형상이 있어도 소리가 틀어지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세한 북의 울림을 감지하는 능력은 수없이 반복된 노력에 의한 것이든, 천부적인 것이든 임선빈 선생은 혼신을 바쳐 전통북을 만든다.

북메우기는 소나무로 만든 울림통에 무드질한 쇠가죽으로 피를 씌우는 작업이다. 여기에 고리를 달고, 줄을 매고, 소리를 잡고, 칠과 단청까지 마치면 하나의 북이 탄생한다. 북의 소리는 가죽의 두께뿐만 아니라 소의 부위별로 다르다. 소리북은 소의 목 부위, 사물놀이 북은 엉덩이, 무속인들이 쓰는 소북은 배 부위를 사용한다. 특히 대북은 앞·뒤 한 마리씩 2마리의 소가죽이 들어가는데다 웅장한 느낌과 상, 하, 좌, 우의 음을 다르게 잡아야하기 때문에 부위별로 가죽을 다듬는 방법이 다를 뿐 아니라 앞·뒤 균형까지 맞추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북메우기란 가죽을 이용해 북을 만드는 기술로 예전에는 이를 고장이라 불렀으며 고대 사회부터 제사와 주술용, 경고와 신호의 도구로 사용되는 한편 음악적으로는 리듬과 선율악기로 중요하게 취급되오고 있다. 다듬어진 쇠가죽의 부위까지 맞출 정도로 뛰어난 촉을 자랑하는 임선빈 선생도 어쩔 수 없다.

대전에서 북을 만들던 시절, 안양시에서 기증할 북을 제작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997년 안양에 올라와 8개월간에 걸쳐 국내 최대의 소리북을 완성했으니 울림통 240㎝, 통길이 220㎝ 크기로 제작된 ‘안양시민의 소리북’이다. 1997년 11월 안양시청에 입고돼  1층 홀에 자리매김을 한 안양 시민의 소리북은 춘향목과 쇠가죽을 재료로 해 총길이 220센치미터, 울림판 240센치미터 등 당시 국내  최대의 규모로 이름은 두개의 여의주는 서로 여의주를 탐내며 싸우지 않는 의미로 넉넉하고 풍요로운 안양시민의 정서, 화합을 상징하며 봉황새를 배치하므로써 봉황의 깊은 참뜻과 그 복이 안양시에 고루 넘치는데 그 의미를 두고있다. 

임선빈 선생은 1999년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던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이루었구나!” 하는 감동과 함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임선빈 선생은 요즘 몸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기력이 남아 있을 때 길이 남을 수 있는 대 북을 만드는 게 소원이다. 기계식 북이 대세가 돼 가는 오늘날 정교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전통 방법의 계승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대북에서 울려퍼지는 천둥같은 소리로 일깨워지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