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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서울에도 경기에도 있는 시흥,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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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서울에도 경기에도 있는 시흥, 왜?

[2015.10.07]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서울에도 경기에도 있는 시흥, 왜?

조선시대 영등포까지 거느린 거대도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땅 일부 서울 편입

김범수 기자
발행일 2015-10-07 제37면

광명·안산 등 독립으로 해체 위기도
현재 42만 산업도시 제2 중흥기 맞아

‘서울의 시흥동과 경기도 시흥시, 어느 지역이 먼저일까’.

서울을 오가는 경기도민은 한 번씩 의문이 생기는 지역이 있다.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과 경기도 시흥시다. 심지어 한자어 역시 시흥(始興)으로 같다. 이처럼 다른 지자체에서 같은 지명을 사용하는 이유는 쪼개지고 축소된 ‘시흥군’ 행정구역 변천사에 있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경기도 시흥군은 오늘날의 서울 영등포·금천·관악·동작구와 경기도 안양·안산·과천·의왕시 등을 포함한 거대한 지자체였다. 시흥이라는 이름은 광활한 곡창과 물줄기로 ‘뻗어나가는 땅’에서 출발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지금의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에 관아가 있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영등포읍으로 청사를 옮겼다. 하지만 1936년 영등포읍이 서울(당시 경성부)로 편입되고 광복 이후 지금의 안양으로 다시 군청을 옮겼다.

이에 맞춰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1963년 시흥군의 신림리, 봉천리, 가리봉리, 시흥리가 서울의 동(洞)으로 편입되면서 시흥이라는 명칭을 중복사용하게 됐다. 서울시의 입장에선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던 시흥동을 고수했고, 시흥군 역시 전통적인 지역 명칭을 버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두 개의 시흥(始興)은 이 때 시작됐다.

시흥의 수난(?)의 역사는 끝이 아니었다.

1973년 안양읍이 시로 승격되고, 1981년 광명시가 독립하면서 시흥군의 모습은 동서로 나눈 기형적인 모습이 됐다. 게다가 5년 뒤 시흥군의 서부지역이 오늘날 안산시로 독립하고, 동부지역의 과천면은 시로 승격되면서 행정구역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또 1989년에 시흥군 군포읍과 의왕군이 시로 승격하면서 시흥군의 소래읍, 군자면 수암면이 모여 오늘날 시흥시를 이룬 것이다.

한 때는 해체 직전까지 갔지만 서울과 경기 지자체의 어머니 역할을 한 시흥시는 인구 42만여명의 산업도시로 제 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김범수기자 fait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