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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식]새 천년, 안양 100년의 의미

안양똑딱이 2016. 6. 11. 07:58
성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80년대 말 지금의 평촌 신도시 개발공사 도중 선사문화유적지가 발견되었다. 다량의 고인돌과 토기파편 등 출토된 유물들은 생각보다 일찍 이 지역에 우리 조상들이 정착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안양이란 지명을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은 헌종년간(1842-43)에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시흥현도(始興縣圖)인데, 지금의 석수동 지역을 안양리(安養里)라고 표기하고 있다.
안양에 대한 최초의 인구자료는 영조 35년(1759)의 호구조사 기록인데, 현재의 석수동, 박달동을 제외한 나머지 안양지역이 속한 하서면의 인구를 1,515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역마를 이용한 교통의 중심지이던 과천과는 달리 전형적인 농촌 촌락의 형태를 띠고 있던 안양이 발전의 계기를 맞이한 것은 1905년 1월 1일 개통된 경부선 철도의‘안양역’개설과 함께 역세권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안양역사의 개설은 교통·운송의 변경지대에 있던 안양리가 새로운 운송수단인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한 것을 말한다.
안양지역의 행정구역이나 명칭이 지금과 비슷하게 된 시기는 1914년 3월 1일 부로 시행된 총독부령 제 111호에 의해서다. 이 영에 의하여 탄생한 시흥군은 9개면 83개리에 이르는 거대한 강역이었는데, 이 때 현재의 석수동과 박달동 지역은 동면에 편입되었고, 그 외 전지역은 서이면에 속하게 되었다.
일제하인 1936년의 인구조사 기록은 당시 안양인구를 9,234명으로 적고 있는데,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안양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이후 1941년에는 안양면으로 승격하였고, 1949년 인구 20,021명으로 안양읍, 65년 인구 5만을 돌파하고, 1973년에는 대망의 안양시로 승격하였는데 당시 인구는 111,075명이었다. 1945년에는 시흥군청이 영등포에서 안양면으로 옮겨 옴으로써 안양은 경기 남부지역의 중심도시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현재는 90년대 초 평촌 신도시 입주로 인구 60만의 수도권의 대표적인 위성도시로 성장했다.
돌이켜 보면 급속한 성장에 따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백 여년에 이르는 사이 산술적으로 약 200배의 인구성장을 한 셈이다.
발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군청사가 이전해 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안양은 경기 남부지역의 정치, 행정의 중심이 되었다. 더불어 동서남북으로 뻗은 교통의 연결축의 기능도 하고 있는데, 지금도 국도 1호선이 안양을 통하여 수원으로 연결되고 있고, 인천으로 가는 고속도로와 수도권 순환 고속도로가 안양을 경유하고 있어 철도와 더불어 자동차교통 중심지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안양의 빠른 성장은 1905년의 안양역사 개설이 계기가 되었고, 근대 안양은 그 이후 지난 100년에 걸쳐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시청 앞 교차로의 문자 광고판에는 새로운 천년이 약 140일 남았음을 알리고 있다. 역사적인 새 천년을 맞는 준비에 바쁜 가운데, 안양 100년의 기점을 1905년으로 잡고 ‘2005년, 안양 100년 축제’를 준비하자.
지금이 지난 세월의 안양을 발전적 의미로 정리할 시점이다. 100년 잔치의 식단을 준비하면서, 현재 우리가 서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자기발견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안양시지(安養市誌)가 이미 발간되어 있지만, 초기 안양의 발전과정에 대한 역동성을 담아내고 그 시대 민초들의 삶을 그리는 데는 부족한 점을 느끼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향토 100년의 살아 있는 역사를 정치·행정사, 산업·경제사, 문화·예술·풍속사 등으로 망라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불충분한 기록들은 일본의 박물관과 도서관을 뒤져서라도 정리하고 메꾸어 넣어야 할 것이다.
초기 안양의 모습을 전해 줄 80대 후반의 몇 분 남지 않은 어르신들이 병석에 눕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그분들이 건강을 잃기 전에 1920년대와 30년대의 안양의 모습이나 인물 및 풍속을 녹취해서 정리해야 한다.
지난 100년, 안양발전을 위해 노력한 각 분야의 이름 없는 작은 영웅들을 찾아내어 우리 어린 새싹들이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지역사회의 신화도 만들어야 하겠다.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지 않은가.
지난 100년이 주어진 조건에 의한 양적인 성장위주의 발전을 해 왔다면, 앞으로의 백년은 우리 안양이 자기발견을 통해 스스로의 미래를 선택하는 주체적이고 질적인 발전을 이룩하길 소망한다.

2003-06-07 13:3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