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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식]안양의 성장과 철도

안양똑딱이 2016. 6. 11. 07:55
조선시대 역마와 물자이동의 중심축이었던 과천공로는 남태령고개를 넘어 과천, 인덕원, 귀인마을, 호계동, 고천을 경유하여 수원으로 연결되어 현재의 안양을 비껴가고 있었다.

1795년 정조가 비운에 간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찾던 제 6 차 현륭원행(顯隆園幸)이 시흥을 경유하여 안양지역을 통과한 것이 이 지역 공로개척의 효시였을 정도로 안양지역은 발전의 변경(邊境)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한 사실은 과천과 시흥에는 각기 오늘날의 공교육기관에 해당하는 향교가 있었지만 이 지역에는 향교가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또한 과천 및 시흥과 안양지역과의 격차를 산술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자료는 초등학교의 개교 년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시흥초등학교가 1911년, 과천초등학교가 1912년에 개교한 것에 비하여 안양초등학교가 1929년 12월에 가서야 설립된 점이 당시 이 지역의 상대적 낙후성을 말해주고 있다.

낙후된 지역이었던 안양이 발전의 전기를 맞이한 것은 노량진에서 출발하여 시흥, 안양, 당말, 부곡을 경유하여 수원으로 연결되던 경부선 철도가 1905년에 개통되면서 안양역사가 개설되고 부터이다.

안양역사의 개설은 급격한 물동량의 증가와 인구유입을 가져왔다. 1911년 6,202명에 불과하던 안양역 승차인원이 1921년에는 43,718명에 이를 정도로 7배 가까운 급격한 성장을 하고 있다.

인구변화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바, 1900년대 초 약 3,000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1912년 3,462명, 1936년 9,234명, 1940년 1만을 돌파하고, 1949년 2만에 이르는 급격한 성장을 하고 있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더불어 행정명칭의 변화도 이루어 졌다. 1914년 서이면 사무소 개소, 1917년 서이면사무소의 안양리 이전, 1941년 안양면으로의 행정명칭 변경, 1949년 안양읍, 이어 마침내 1973년 소망하던 안양시로 승격하는 이른 바, 60년 만에 주변의 조그마한 리(里)가 성장·발전하여 시(市)로 변모하는 국내 초유의 변화가 안양에서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서이면사무소의 안양리 이전은 과천공로에 인접한 역마교통의 경유지인 호계리에서 정치, 경제 및 교통의 중심축이 새로운 교통수단인 철도교통의 안양리로 이전해 온 것을 의미한다. 즉, 안양리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중심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을 말한다.

역사 개설로 안양리는 급격한 변모를 겪게 되는 바, 역전을 중심으로 신시가지가 형성되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거리기 시작했으며 시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마침 1925년에 있었던 대홍수로 군포 구시장이 물에 떠내려가자 자연히 안양리의 신시장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안양리 사람들의 정치의식도 성장하게 되었는데, 1926년 ‘안양소년척후대’에 이어 1927년에는 ‘안양수양단’과 같은 소년들의 지식계발과 일반민중 계몽운동이 국권회복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지고, 1929년 ‘안양청년회’, 1933년에는 조기회의 설치 및 무산아동을 위한 학술강습회의 개최를 목적으로 하는 ‘안양청년단’의 창립·발기총회가 있었다.

이와 같은 소년 및 청년단체는 지방문화의 중추기관이 되어서 교육열을 왕성하게 했고, 신사상을 확립하게 하여 경제적 권리를 회복케 하는 등 모든 지역사회운동의 중추가 되었다.

이러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드디어 1933년에는 안양-과천 정기축구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안양리 사람들의 자부심과 정치의식은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또한 정치의식의 결집은 1936년 시흥군청이 소재했던 영등포읍이 서울로 편입되자 군청이전기성회(郡廳移轉期成會)를 조직한 안양사람들이 서울로 몰려가 “이제는 남되었으니, 군청을 돌려주오”란 예스러운 구호 하에 군청이전 데모를 해서,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1945년 군청사를 안양으로 이전·유치하게 된다.

오늘날의 안양 만안지구가 경기도의 정치 1 번지로 불리는 것이나, 우스겟 소리로 안양에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안양당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을 듣게 되는 것도 이러한 지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2003-06-07 12: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