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동네탐사

[탐사75-1]의왕 성라자로마을에 가다(2015.08.01)

안양똑딱이 2018. 9. 4. 16:12

 

[탐사75-1]성라자로마을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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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환우들이 살고 있고, 기도하는 공간이라 평소 일반인들의 출입이 쉽지 않은 성라자로마을을 마을 관계자의 협조로 이곳 저곳을 탐방했습니다 .
라자로 마을은 지난 반세기동안 나환자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음을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현장 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나환자와 일반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평가는 라자로 마을을 다녀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듯 그림같은 집과 주변 경관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한센병 환우의 치료와 사회 자립을 위해 지어진 숙소와 병원 등 외적인 미를 살려 건립한 여러 건물들은 울창한 나무와 잘 다듬어진 조경 등 주변의 경관과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흔히 생각하기 쉬운 복지시설과는 다른 모습이지요. 1970년대 지어진 건물임에도 미적, 예술적 조형미를 감안한 설계뿐 아니라 나무와 숲에 파묻힌 듯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이는 2008년 의왕시가 선정한 도시경관 8경에 이름을 올린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의왕시는 건축물, 공원, 도로 등 시설물 위주의 도시경관 8경을 선정했는데 자연학습공원, 중앙도서관, 도깨비도로, 철도박물관 등이 성 라자로 마을과 함께 선정됐지요.

라자로마을은 쉼게 들어갈 수 곳이 아닙니다. 정문 수위실에 도착하면 “어떻게 오셨나요?”하는 질문을 거친 후에 통과할 수 있지요. 간혹 있을지 모를 엉뚱한 외부인들로부터 마을 주민을 보호해야 하고, 일반인에게 스스로를 보이기 꺼려하는 주민들의 심리 등등 여러 민감한 사안들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을의 공간 구조는 크게 주민들의 주거 공간, 치료 공간, 신부와 수녀들을 위한 공간, 성당과 사무실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마을 입구의 정문과 수위실을 지나면 마을 사무실, 모세의 집(통나무집), 라자로마을 설립 50주년 기념관, 라자로마을 설립 50주년 홍보관, 라자로의 집(교육관), 아록의 집(불구 노약자 환우 숙소), 엘리아의 집(여환우 숙소), 반석의 집(남환우 숙소), 삼손의 집(부부환우 숙소, 식당), 마리안 수녀의 집(수녀원), 치유의 집(마을 병원), 아론의 집(피정의 집), 마을 성당, 정결의 집(이발, 목욕시설), 기쁨의 집(세탁소), 고마움의 집(간호사 숙소), 라자로의 무덤(납골당), 요셉의 집(직원 숙소), 우리의 집(봉사자 휴게실), 사제 마을(7개 동의 건물 포함), 차고 및 창고 등이 넓게 포진하여 있지요. 그리고 곳곳에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예수, 십자가, 천주교의 성인들, 캐롤 신부, 노기남 대주교, 이경재 신부 등의 석조상이 서 있습니다.
사제마을은 은퇴한 사제들과 요양이 필요한 사제들이 머무는 곳으로 5채의 단독주택, 성당, 식당, 그리고 엘리아의 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통나무성당은 예수님의 집으로 이름을 지었으며, 5채의 단독주택은 한국 순교성인의 본명을 따서 범세형(라우렌시오)의 집, 김대건(안드레아)의 집, 이승훈(베드로)의 집, 최양업(토마스)의 집, 주문모(야고보)의 집으로 불리고, 사제마을 공동식당의 이름은 강완숙(골롬바)의 집입니다. 납골당인 라자로의 무덤은 한국천주교회에서 최초로 화장 후 유골을 안치해두는 납골당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1987년 준공하였답니다.
마을병원인 치유의 집에는 책임 간호수녀 1명, 간호사 2명이 상주하며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돌보고, 각과의 의사진료는 무료봉사자들의 도움을 얻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가톨릭의대 교수가 한센병주치의로 월 1회, 아주대학병원 의사가 정형외과의로 월 2회, 세란치과 의사와 송산보건소 치위생사가 주 1회, 이오스안과 의사가 안과의로 필요할 때 간호사가 월 1회 창상치료, 한의과 월 1회, 수지침 봉사자가 주 2회 자원봉사하고 있다. 이외에 보조기, 이용사, 미용사, 주방봉사, 세탁 및 재봉, 환우목욕, 가재접기, 청소봉사 등의 일에 정기적으로 또는 필요에 따라 봉사가 이루어지며, 연세대동문회가 생일잔치 봉사를, 가톨릭 기사사도회(騎士使徒會)가 환우들의 단체외출 봉사를 하고 있다.
이날 찾아간 라자로마을은 찌는듯한 무더위속에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벤치, 은은한 성가가 흘러나올 것 같은 성당, 예쁘게 채색된 유리창...하늘도 구름도 나무도 묵상에 잠긴 듯 이곳에 오면 누구나 조금은 경건해집니다.
언덕길을 따라 멋지고 이름답게 지어진 건물과 조형물을 보면서 햇빛과 그늘의 경계를 따라 걷다보면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자신을 돌아보며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자연치유의 내면적 가능성, '사색'이라는 단어를 저절로 떠올리게 합니다.

 

성 라자로 마을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에 있는 가톨릭 사회사업시설인 라자로마을은 한국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 2일에 메리놀회 소속으로 당시 가톨릭구제회(NCWC)와 미국 종교단체구제사업협회(LARA) 한국 책임자로 활동하던 조지 캐롤 안(George Carroll, 安) 주교가 설립해 광명시에서 시작한 구라사업기관인 성라자로원이 모태라 할수 있다.
안 주교는 1945년 광복 후 서울 근교에 떠돌아다니는 많은 나환자들을 보고는 이들을 위한 구호 및 의료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수십여 명의 한센병 환우를 이끌고 광명리 신기촌에 정착촌을 마련했다. 새 보금자리의 이름은 ‘성라자로요양원’.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연명하다 끝내 아브라함 품에 안긴 라자로의 이야기에서 따왔다.
업치락 뒷치락 파던 전쟁의 와중에 성라자로요양원은 경기도 화성군 일왕면 오전리 모락산 기슭 20만평의 임야 및 대지를 구입하여 1951년 7월 5일 새 정착촌에 자리를 잡았다. 성라자로마을의 제2의 창설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있으며 땔나무가 많고 골짜기에 흐르는 물과 지하수가 있어 용수 해결이 용이했다. 민가와도 떨어져 있어 한센인들의 요양지로는 안성맞춤이었다.
1955년에는 가톨릭의대 부속 성나자로의원을 개원하고 재가(在家)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이동진료를 시작하였는데 이동진료에 따른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1962년 정착촌을 마련하고 나환자들을 이곳에 모여 살도록 하였으며 1969년에는 서울교구에 소속되어 있던 성 나자로마을이 수원교구로 이양되었다.
라자로마을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고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52년 초대원장으로 부임했던 이경재 신부가 1970년 12월 제7대 원장으로 다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일본, 미국, 구라파 등지를 돌며 나환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려 모금한 돈으로 나환자들이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투자했고 라자로 돕기회도 발족해 나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발판과 라자로마을내 각종 시설들을 마련하는 등 발전하는 초석을 마련한다.
현재는 무의탁 한센병 환자 치료와 치료된 환자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만들어져 정착촌과 함께 병동, 진료소, 교육관, 수녀원 등이 있으며 라자로 돕기회는 현재 2만여명의 후원회원을 두고 있다.
특히 나환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는 나환자들의 보금자리에 피정의 집인 아론의 집과 은퇴사제들을 위한 사제마을도 건립해 일반 사람들이 나환자 마을을 손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한 점도 라자로 마을이 일군 성과의 하나다.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납골당 제도도 도입해 1987년 납골당 라자로의 무덤 을 준공하기도 했다.
성 라자로마을은 자선음악회, 벚꽃축제, 나환자 공동 생일 및 회갑·고희 잔치, 라자로의 날 행사 등을 열어 나환자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도 큰 몫을 했다. 특히 매년 여는 자선음악회 '그대 있음에'는 어려웠던 시절에 도움을 받아온 것에 감사와 보답하는 마음으로 91년부터 수익금을 모두 국내 나환자 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등 해외 나환자를 돕는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이 음악회는 1975년 12월 20일 처음으로 열렸고, 열리지 못한 해도 있었으나 꾸준히 게속되어 오면서 올해로 28회째 맞았으며 음악회의 수익금은 한센인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성 라자로 마을의 운영에도 작은 도움을 주고 세계보건기구(WHO) 에서도 알고있다.
성 라자로마을이 정착하고 국내외에 알려지는데 있어 초대 원장이자 7대 원장으로 재임하셨던 고 이경재 신부님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신부님은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 몽골, 루마니아, 러시아 등 한센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든지 달려가고, 나환자 요양원과 정착촌, 나병 연구기관을 직접 방문하여 구라사업 기금이나 약품, 의료기기 및 미감아들의 교육 장학금을 지원했다.
"사랑이 없는 나눔은 있어도 나눔이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던 8대 원장 김화태 신부도 이경재 신부의 뜻을 이어 아시아 각국은 물론 2001년에는 독일 푸랑크푸르트에서 유럽 라자로 돕기회 법인을 설립하는 등 세계 한센인들을 돕기위해 나섰다.
9대 원장으로 부임한 조욱현 신부는 미국에 별도 법인을 설립하여 후원금과 자금의 운용을 수월하게 하였으며, 미국의 후원자들에게 세금공제 혜택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대 있음에' 음악회는 국내뿐 아니라 유럽 라자로돕기회에 의해 독일에서도 열리고 있다. 유럽의 '그대 있음에'는 지난 2003년부터 격년제로 독일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독일의 주교회의 의장인 칼레만 추기경께서 총재로 후원하며 세계 보건기구(WHO)와 독일연방 정부는 물론 헤센 주정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고 있는 음악회로 자리 잡았다.
성 라자로마을은 이제 60여년의 시간이 지나며 전 세계적으로 우리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한센인들에게,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과거 우리가 받았던 사랑과 은혜를 갚고 나아가 보다 넓은 사랑의 뜻을 실천하고 있어 그 위상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또 미래를 지향하는 마을을 위해 2014년에는 수목원 '화수원'을 개원했으며, 지형적 조건에 의해 활성화 되지 못했지만 실버 홈을 만드는 등 마을 전체를 복지단지화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성 라자로마을내 성당은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대다수 건축물들이 마치 에술작품을 연상케 한다. 특히 마을내 건물들은 조선시대의 건물양식과 비슷하게 최대한 자연경관을 살려 마치 숲속에 잠긴 건물처럼 보인다. 때로는 모락산자락의 커다란 바위도 그대로 조경에 이용했다.
성 라자로마을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도 톡특하다. 한센환우들을 위해 마련된 곳인 만큼 색의 상징과 작가가 의도한 내용이 조화를 이루며 담겨있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주를 이루며 강렬한 느낌을 전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 사이에서 푸른색과 노랑 계열의 색들이 어우러져 있는 이 작품은 여느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