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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73]안양 호계3동 삼신6차아파트 주변(2015.07.11)

안양똑딱이 2018. 9. 4. 14:29

 

[탐사73]호계3동 삼신6차아파트 주변
2015.07.11/ #안양 #도시 #동네 #골목 #안양기억찾기탐사대 #73차 #호계3동 #호계삼거리 #구군포사거리 재건축을 추진하다 시공사 선정을 둘러싸고 난항을 겪고 있는 삼신6차아파트. 그리고 재개발이 추진중인 구군포사거리지역은 1970-80년대 풍경을 보여주는 아파트와 빌라 등 주거지와 주택가 한복판 그린슈퍼를 중심으로 육거리가 생길 정도의 오밀조밀한 골목이 있는데 지난 71차 탐사에 이어 다시 찾았습니다.
[탐사71차]호계3동 구군포사거리 주변 사진첩 보기 https://www.facebook.com/coreachoi/media_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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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흥군 시절의 땅이 이리저리 쪼개지면서 지금도 호계3동이지만 토박이들과 이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는 아직도 구군포사거리라 부르고 있을 정도로 군포와 안양의 경계지역이기도 한 이 곳 인근에는 조선시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아주 큰 시장이었던 군포장이 있었고, 근대에 들아와서도 평촌신도시가 개발되기 전인 1970-80년대 안양 일번가 다음으로 잘 나가던 유흥의 중심지이기도 했지요. 당시 안양에서 방석집 하면 안양역 뒷쪽의 철길변과 구군포사거리 언덕골목길 두곳밖에 없었고, 성인나이트콜럽하면 이곳 군포사거리로 택시들이 새벽까지 줄지어 섰으니까요.
이 지역은 한양에서 해남까지 이어지는 삼남길(해남대로)이자 정조대왕이 능행차로 길이 넓어진 시흥로(한양-노량진-시흥-안양-수원)로 만나는 교통 요충지로 예로부터 길손들이 오가는 길목으로 군포장(軍浦場)이 섰던 것이지요. 군포장은 과거 인근 충청도에까지 입소문이 흘러 장돌뱅이들과 장꾼들을 불러 모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하며 웬만한 장꾼들이라면 <군포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겠지요.
막걸리 주전자와 장터 국밥, 무쇠 소리가 오가는 군포장의 얘기는 당시 서울에 낙향해 궁촌마을(현 군포1동)에 살던 소설가 이무영이 1938년 동아일보에 <군포장 깍두기>를 연재하면서 장터의 애환과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전하기도 했지요.
군포장은 1905년 구군포사거리에서 약 3킬로 정도 떨어진 시흥군 남면 당리에 경부선이 지나가면서 역사가 생기고 그 이름을 <군포장역>이라고 하는 등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1920년대 안양천의 범람으로 시장이 피해를 입은 이후 안양역 뒷편 안양1동(구시장)에 상권을 빼앗기기 시작하고 1938년 경부선 복선화가 되면서 군포장역이 군포역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군포장의 화려했던 명성은 빛을 잃지요,
이후 구군포사거리는 1960-70년대 인근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제2의 부흥기를 맞지요. 19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구군포에는 나이트클럽에 니나노 방석집, 다양한 술집과 여관, 모텔 등 불야성을 이루었지요. 그러나 대로변 상업지역에는 고층의 오피스텔과 생활형고층주택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고, 수십개 방석집이 자리했던 골목에는 단 2곳 만이 맥주집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는지 마는지 할 정도로 변모했지요.
그래도 최근 이 일대에 다소마나 활기가 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옵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저녁 무렵 술집과 움식점에 손님들이 몰리면서 활기가 있네요. 또 과거 대형 나이트콜럽이었던 곳은 콜라텍이란 곳으로 바뀌었는데 춤추러 어는 중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네요. 실제로 지난 72차 탐사시 뒷 골목에서 보니 직업이 뭔지 모르지만 벤츠, 아우디 차량을 몰고 오는 손님까지 있을 정도네요. 하지만 상업지역 뒷곯목과 삼신아파트 주변 안양천변 골목 주택가의 풍경은 마치 회색빛처럼 음울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