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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3]안양9동(2) 담배촌 최경환성지, 돌석도예박물관, 창박골(2013.02.16)

안양똑딱이 2017. 5. 16. 00:29

 

03차(2013.2.16) 안양9동(2) 담배촌 최경환성지, 돌석도예박물관, 창박골

안양 탐사. 2013년 2월 16일 오늘은 제3 경기도립공원의 수리산의 안양쪽 관문격인 담배촌 끝자락 공군부대에서 부터 안양8경중 제5경인 최경환 성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돌석도예박물관, 작달막한 낮은집들이 다 없어지고 아파트와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 들어선 창박골까지 이어지는 계곡으로 한국관광공사는 수리산 담배촌 골짜기를 2009년 1월 '소원성취명소'란 테마로 희망을 주는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봄이 오는 자연에 취해서 들려 보아야 할 무당골짜기과 병목안시민공원에는 들려보지를 못해 다음 탐사를 기약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공기가 너무나 좋기만 합니다. 오늘의 두번째 탐사 지역 최경환 성지입니다.
이곳은 기해박해(1839년) 이후 최경환 성인을 비롯한 교우들이 들어와 신앙 공동체를 이뤘던 오래된 교우촌으로 조선시대에는 수리산 뒤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해서 '뒤띠미(뒷듬이)'로 불리웠지요.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이 곳은 한때 담배를 경작하며 교인들이 살던 곳으로 병목안 첩첩산중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의 은신처로 더 없이 좋은 자리였지요.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국인으로서는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로 충남 청양군 화성면이 고향인 그는 조선 후기 박해시대때 부인 이성례(마리아 1800~1840)와 담배촌에 정착해 천주교인들과 함께 이 곳에서 담배를 경작하며 숨어 살았지요.
1839년 천주교를 탄압하던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하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그 해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 온 포졸들에게 압송되어 배교하라는 고문과 회유속에서 신앙을 고수하며 모진 형벌을 받다가 1839년 9월 12일 포청옥에서 순교함으로 생을 마칩니다. 부인 이성례도 그 이듬해 1월 31일 용산 당고개에서 참수되고 말지요.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맞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에 의해 1984년 5월 6일에 성인의 반열에 오릅니다.
2000년 이곳은 천주교 순례성지로 지정되면서 전국 각지의 신자들이 찾는 곳으로 현재 순례자성당, 최경환 생가, 이성례(최경환의 처) 마리아의집 등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성당 앞 하천을 건너 산기슭으로 올라가면 최경환 성인의 묘소가 있습니다.
안양시민들은 이곳은 안양8경중 제5경으로 선정해 그분의 순교정신을 높이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