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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최병렬]인기DJ를 스카웃했던 70년대 안양의 음악다방들

안양똑딱이 2017. 3. 23. 02:04

 

인기DJ를 스카웃했던 70년대 안양 음악다방 이야기

1970년대는 통기타, 장발, 나팔바지와 함께 LP음악을 들려주었던 DJ가 인기를 누리던 음악다방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다방의 추억이 유별났던 곳은 단지 차만 팔고 약속장소만이 아니라 그 시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믄화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뽀얀 담배 연기로 가득찬 다방은 유리창 속에 앉아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DJ'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카펜터스와 아바, 스모키 등의 팝송과 때로는 신나는 디스코 장단에 흥겨워하는 모습은 지난 70년대를 거쳐 80년대 중반까지 자리했던 '음악다방'속의 한 풍경이다.
음악다방의 얼굴마담은 단연 DJ였다. 유리창 너머 뮤직박스속의 DJ들은 왜 그리도 멋지고 경외스러웠던지. 그 시절 젊은이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화려해 보이는 DJ를 꿈꾸기도 했다.
당시 음악다방에는 정중앙 또는 한쪽 벽면에 유치 칸막이로 되어 있는 DJ석이 있었고, 두 개의 턴테이블이 연신 돌아가며 신청곡들을 들려주었다. 업주의 취향에 따라 음악 분위기가 달랐지만 당시 음악다방의 DJ는 연출가이며 진행자이자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1976년도 다방 커피값은 100원인가 120원인가 했다. 물론 쓰디쓴 원두커피만 있었던 것으로 아니다. 홍차에 계란반숙에 지금 같으면 먹지도 않을 싸구려 위스키도 판매했다. 단골손님이 아침에 들리면 노른자를 살짝 띄운 모닝커피가 나오고, 맥주도 팔았던 시절이다.
당시 인기 DJ 유치 경쟁도 치열했다. 수많은 LP판 속에서 신청곡이 들어있는 레코드판을 찾아 달콤하고 때로는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멘트를 날리니 여성 고객들이 인기 DJ를 따라 발고걸음을 옮기는 것은 당연지사 일 정도로 당시 DJ의 인기는 요즘 아이돌 부럽지 않았다.
신청곡을 꼭 듣고자 다방에서 내주는 종이 대신 집에서 가져간 고은 꽃종이에 신청곡과 들려줄 사연을 적어내기도 하고. 꽃다발과 선물을 들고 다방을 기웃거리다 슬그머니 DJ 신청곡 쪽지를 넘거주는 창구 앞에 놓고 나가는 소녀팬들의 모습도 있던 기억이 나는 그때다.
DJ는 단골 손님이 오거나 마음에 드는 여성 손님이 다방에 들어서면 자리에 앉고 차를 주문도 하기전에 그 손님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과 닭살 멘트를 날리기도 했던 여유가 있었다.
안양 토박이들이 기억하는 다방의 역사를 보면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 1950년대 쯤으로 기억한다. 안양1동 구도로에서 비산동 당시 구시장으로 넘어가는 땡땡땡 건널목(현재 육교)을 건너기전 우측에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가옥이었던 2층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는 구시장(안양시장)과 새시장(중앙시장)이 혼재하던 시기였는데 안양시장(구시장)은 우시장에 대장간도 있었고, 엄청 규모가 컸던 쌀 창고에 버스가 지나가던 길목이라 지역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무렵이라 광창라사, 유화사, 이발관, 중국집 등 상점들이 즐비했다.
1960년대 초 필자도 구시장 근처 시대동에 살았다. 부친께서 철길 건너에서 잡화상을 하셨고, 외갓집이 땡땡땡 건널목 옆에 있어 나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다방 누나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당시로서는 매우 귀했던 우유와 계란 반숙을 얻어먹곤 하던 기억이 생각난다.
그 당시 또다른 다방으로는 정 다방이 있었는데 언제 문을 열었는지 시기는 정확치 않다.
다방은 1970년대 접어들어 우아한 한복을 차려 입은 여주인이 운영하며 어른들이 드나들었던 속칭 노땅 다방과 젋은이들이 드나드는 새로운 유형의 음악다방으로 나누어진다.
음악다방의 원조은 중앙다방과 신신다방이다. 신신다방은 안양4동 중앙시장 입구 오른쪽에 건물 지하에 중앙다방은 도로쪽 건물 2층에 있었는데 이곳은 LP레코드판이 벽면을 꽉 채우고 인기 DJ로 경쟁이 치열했을뿐마 아니라 어느곳이 레크드판이 많는 가도 관심꺼리였다.
삼원극장(현 CGV) 지하에 있던 삼원다방은 극장 데이트를 앞둔 연인들의 약속장소였고, 지하에 있던 동굴다방은 실내를 진짜 동굴같이 꾸며놓았다. 80년대 생겨난 상아탑 다방에서는 지금 MBC라디오 MC로 일하는 강석씨가 DJ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안양시내에서 젊은이들이 갈 곳은 음악다방 밖에는 마땅한 곳이 없던 시절이라 낮이고 저녁이고 근처를 빙빙 돌다보면 마주친 친구를 한두번 다시 만나기는 예사였다. 지금처럼 핸드폰은 커녕 집 전화조차 백색전화는 거금을 주고도 못 살 정도였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안양 음악다방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이는 안양초등학교 41회 졸업생인 김종우씨다. 그는 다방의 이름이 새겨진 성냥갑들을 아직도 갖고 있어 그의 블로그에 올려놓을 정도다.
그가 기억하는 음악다방의 흐름을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다. 1070년 다방은 주로 중앙시장 입구쪽과 길 건너편 안양1번가 중앙통 골목길 양쪽에 밀집 되어 있었다. 중앙시장 쪽에는 신신 다방, 중앙 다방, 약속 다방, 삼원 다방, 보리수 다방이 있었다면 일번가쪽에는 동굴 다방, 신도 다방, 금성 다방, 동산 다방, 전원 다방, 원 다방, 태양 다방, 심지 다방, 까치 다방 등이 있었다. 또 공작, 코스모스, 청궁, 태양(SUN), 초원 다방 등도 있다.
당시 다방은 연인들의 데이트장소이자 맞선을 보던 곳이기도 했다. 비산동 운동장앞 대관령 식당의 여주인은 “1970년 안양역앞의 초원다방에서 선을 보고 결혼을 했다“고 말한다.
1980년 이후 안양시내 다방업계는 커다란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 그 이름도 유명했던 상아탑 다방이 안양 1번가 입구쪽 건물 2층에 새로운 시설을 갖추고 개업했기 때문이다. 상아탑 다방은 넓은 실내와 최신 실내 장식, 기존의 다방들과는 차별화 된 깨끗한 분위기로 칙칙한 다방 분위기에 식상했던 젊은이 들을 하나둘씩 불러 모으기 시작하더니 언젠가 부터는 안양의 대표적인 다방의 대명사로 등극 하게된다.
개업 초기에는 음악실에서 강석 이라는 DJ가 최고의 인기 DJ로 많은 손님 들을 몰고 다녔는데 지금은 MBC방송국의 유명한 MC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상아탑 다방 건너편 건물 2층에도 다방이 개업을 하는데 현대 다방이다. 지금 생각 하면 개업을 한 상아탑 다방이나 현대 다방의 시설이나 분위기가 그다지 썩 훌륭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새로운 것 에 열광 하는 젊은이들의 욕구는 누가 뭐래도 막을수 없는 현실이었다.
상아탑 다방과 현대 다방이 개업한 후에도 계속해서 분수 다방, 참피온 다방, 크로바 다방이 개업을 하는데 다방 상권이 완전히 1번가쪽으로 넘어오면서 중앙 시장 쪽의 다방 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게 된다. 이후에도 안양의 다방 전성기는 4~5년간 계속되는데 1985년 이후 에는 그토록 번성 했었던 다방 사업도 서서히 사양길로 접어 들게 된다.
그 이유는. 이름도 고상한 COFFEE SHOP이 하나 둘 씩 생기면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는 손님들이 생겨나고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 하더니 시내의 다방 들도 하나 둘씩 문을 닫거나 COFFEE SHOP이라는 간판 으로 상호를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 다방에서 DJ를 채용하여 음악실을 관리 했는데 당시 안양에도 유선 방송국이 생기면서 약간의 유선비를 지불 하면 하루 종일 음악을 지원 받을수 있었기에 고임금을 받던 DJ들은 더이상 설자리가 없어지게 된 것도 음악다방이 사라진 계기라 할 수 있다.
김종우씨가 기억하는 안양의 마지막 음악 다방은 안양 1번가 중심가에 위치했던 클로버(CLOVER) 다방이다. 그는 1988년 폐업한 것 으로 기억한다. 물론 명 다방 등 시내중심가에 다방들이 계속 운영을 해왔지만 예전의 그런 다방의 모습은 더이상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후에 COFFEE SHOP은 성공을 했느냐? 그렇지 않다. HAMBERGER에 밀리고 PIZZA에 치이고 빵집에 꼬집히고, 수많은 FAST FOOD에 두들겨 맞더니 현재는 온갖 먹거리를 다파는 MULTI SHOP과 수입 BRAND COFFE 별 다방, 콩 다방에 밀려나 신세다.
김종우씨는 "30년전의 아련한 다방의 기억과 추억은 여전히 설레게 한다"며 "한시대 젊은이 들의 해방구 역활과 사랑방 역활을 톡톡히 해내며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아도 되었을 만한 시기에 사라졌다"면서 음악 다방의 사양길을 기억하며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이렇듯 70-80년대 음악다방은 하나의 문화이자 '추억'이었다. 신청하던 노래와 사연에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가 녹아있고 그 시절 연애, 청춘, 그리움 등 향수가 녹아있으니 말이다.
촤근 가요계에 불고 있는 복고 열풍속에 쎄시봉이 줏가를 날리는 것처럼 DJ가 신청곡을 LP레코드판을 틀어주는 음악다방이 부활하고 있다.
경기 남부권에서의 원조는 안양예술공원에 자리한 '세월이 가면'이다. 지난 2006년 카페 주인이 소장한 LP판 2만여 장으로 시작했는데 80년대 안양 1번가 '동굴다방', '상아탑다방' 등에서 DJ를 했던 성시훈이 뮤직박스에 앉아 손님들의 사연과 신청곡을 전해주었다.

카펜터스와 아바, 스모키 등 올드 팝송이 자주 들리는 이곳에서는 영화 ‘여고시절’의 빛바랜 포스터, 줄이 끊긴 통기타, 낡은 교복 등을 보면서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있었지만 운영이 신통치 않았다는데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