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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황영화]내고향 안양 '양지말'

이야기보따리/기억

[황영화]내고향 안양 '양지말'

우리집은 안양공고옆 남향으로 있는 아담한 한옥집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때 아버지와 먼 외삼촌 되시는 분이 직접지으시고  상량식때 높다란 너까래에 아버지께서 붓으로 글을 써 넣으셨다. 대문도 기와로 덮은 작은 나무문이었고 담따라 장미넝쿨이 예뻤고 장독대옆으론 포도나무가 있어 여름에 늘 시원한 그늘을 선사했었을 뿐더러 마당엔 펌프가 있어  누나나 엄니가 시원하게 찬물로 등목을 시켜 주곤했다.
마루 뒷문을 열면 김대영이네 앞마당이 그대로 나왔고 뒷동네엔 김재록, 원명희, 박일권, 최우광 등이 앞동네엔 이원재, 김선규 등이 살았다. 뒷동네애들과는 대농뒷산에서 해 저물도록 공차고 늦게 들어와  야단을 들어야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약삭골, 지금 서 초등학교 자리 논에 물을 대서 겨울엔 솔방울로 얼음 축구하고 썰매 타다가 어둑해지면 노적봉 쓰리바위 전설이 떠올라 겁에 질려 넘어지면서 뛰어 내려오곤했다.
아버지께서 막걸리 받아 오라고 시키시면 노란 주전자를 들고 3동 동사무소까지가 술독에서 퍼서 가지고 오면서  입대고 먹다가 너무 많이 먹은것 같아 다라에 받아논 펌프물로 슬쩍 채워놓고 툇마루에 쭈구리고 앉아 아버지가 괜찬으신가 하고 슬슬 눈치봐야 했다.
누런 코를 흘리며 책상을 넘나들며 싸우던 김재록이는 박달리에서 힘 깨나 쓰던 김재윤, 서경석이도 쩔쩔매게 했지만  머나먼 곳에 혼자 두고 올때는 정말 펑펑 울었다. 예비군 중대장이 재록이한테 통지서를 안보내도 어뗗케든 알고 와선 훈련장을 시끄럽게 만들곤 했었다.
봄엔 동네형들 쫓아 담배촌으로 칡캐러 다니고 여름엔 쫓아 오지 말라고 돌 던져도 옷들고 다니겠다고 애원(?) 하면서 쌍개울로 고기잡으로 졸졸 따라 다녔었고,  지금은 복개 했지만  동네 앞엔 개울이 있어 여름에 멱감고 오면서 호기심에 감자몇뿌리 캤다가 주인 할머니가 우리집까지 오셔서 혼내시는 바람에 울며 집에서 쫓겨나 고자질한 친구를 원망하기도 했다.
만안학교 1회시고 전임 동문회장인 정권이 형이 예쁜 아가씨 데리고 대농 뒷산쪽으로 가면 우린 그냥 지나가나보다 했지만  뒷동네 애들은 호기심으로 몰래 쫓아다니곤 했었다.
안양의 시인 김대규선생님과는 내방 창문과 골목하나를 두고 있어 바튼 기침소리에 아침잠이 깼지만  늘 어려워 했었다. 오래전  1동 동사무소옆 재즈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예전엔 우리 아버지하고 술먹었지만 이제는 나하고 마주 앉아 마신다 하시며 노래 부르라기에 무대에 올라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무아지경으로 부르고 내려 온뒤론 술을 자주 주셨다.
공고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아카시아 향내를 맡으며 아니 도열을 받으며 군대 입대 하던날, 대문 밖에 나와  뒤돌아 남몰래 눈물 흠치시던 울 어머니가  그립다.
내 살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곳도 이젠 많이 변했으리라. 아  언제나  다시 가서  보고픈 그리운  내고향 양지마을, 그리고 보고픈  내 친구들.
 
이 글을 쓴 횡영화씨는 안양 만안초교 6회 졸업생(1956년생) 으로 지난 2007년 5월 30일에 만안초 동창카페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