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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중초사-안양사-유유공장-김중업건축물, 천년의 역사

이야기보따리/자료

중초사-안양사-김중업건축물-천년문화관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1번지 옛 유유 부지는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2년인 827년 세워진 중초사(中初寺) 절터로 알려져 왔으나 고려 태조 왕건(877~943)이 900년에 지은 안양사 터가 1100년만에 발굴돼 경기서남부에서 보기드문 대규모 사찰로 밝혀졌다.
재단법인 한울문화재연구원이 유유 안양공장 부지에 대한 1.2차 발굴조사를 통해 안양사 명문기와 발굴에 어어 문헌속 안양사 7층 전탑 터를 찾아내는 등 고대가람 안양사 흔적이 드러나 문화재청이 2010년 현장에서 지도위원회에서 열고 실체를 확인함으로 안양이란 지명이 고려시대 안양사에서 유래했다는 역사적 정체성까지 찾게됐다.
안양(安養)이란 불가에서 아미타불부처님이 상주하는 청정(淸淨)하여 맑고 깨끗한 안양세계(安養世界),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말하며 불가에서의 안양(安養)은 내가 사는 고장의 이름과 일치한다. 불교용어이지만 도시 ‘안양’은 불교의 극락, 기독교의 천당 등 유토피아적 이상향의 살기 좋고 행복한 곳이란 철학적 의미가 지명 속에 담겨져 있다.
'안양(安養)' 지명의 유래가 된 '안양사(安養寺)'는 '동국여지승람' 금천불우조(衿川佛宇條)에 삼성산에 '안양사(安養寺)가 있어 남쪽에 고려태조가 세운 7층 전탑(벽돌탑)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는 '승려 천명이 불사를 올렸다'고 기록돼 있으나 그동안 위치를 확인할 수 없던 안양사가 이번 조사를 통해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기록 속 안양지역 고려 불교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운 ‘안양사’는 신라 효공왕 4년(900년)에 고려태조 왕건(王建, 877~943)이 지방을 정벌하러가다가 삼성산에 오색구름이 피어오르자 살피던 중 신라계 능정(能正, 승직을 갖은 실존인물)이라는 스님을 만나 세워진 사찰로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려 최영(崔瑩)장군(1316~1388)이 7층 전탑(塼塔, 벽돌로 만든 탑)을 세우고 왕이 환관(내시)인 박원계(朴元桂)를 시켜 향(香)을 보냈으며, 당시 승려 1,000명이 성대하게 불사(佛事)를 올렸고 시주를 바친 각계의 인사가 무려 삼천명이라는 기록이 존재하고 있어, 당대 고려 안양사는 사세(寺勢)가 만만치 않은 대규모 사찰로서 고려 중앙정부와 긴밀히 연동되는 국가 중요사찰로 여겨진다.
이는 태조왕건, 조선태종, 최영장군과 같이 국왕, 신하 등 지배계층을 비롯하여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등 승려들이 스쳐 지나갔으며 관료인 과천현감 윤돈이 교대되어 서울로 올라갈 때 안양사에서 전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안양사는 관료들이 즐겨 찾는 특별한 장소로 보이며, 특히 고려 명종때 문신 김극기(金克己) 등 많은 풍류객들이 ‘안양사’ 관련 아름다운 한시들을 남기는 등 안양사는 한시에 등장할 정도로 당대 명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명종때의 문신 김극기(金克己)의 옛 시문 속에 “걸어서 아름다운 다리를 지나 안양사에 이르면, 푸른 못(벽담,碧潭)이 있다"고 하는 고려 안양사는 행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지역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태조 왕건이 세운 안양사 실체 1100년만에 확인안양사 터는 역사적으로 중초사지로 불리우며 유유 안양공장이 자리했던 곳으로 안양시가 2007년 매입했으며 한울문화재연구원이 지난 2009년 6월부터 발굴을 실시하여 왔다.
2009년 6월-10월까지 3개월간 실시된 1차 발굴에서 정면 9칸(41.4m) 측면 3칸(14m)의 대형 강당지와 승방지, 동.서 회랑지 등이 발굴되고 '안양사명문와편'(安養寺銘文瓦)이 출토되자 향토사학자들을 흥분케 하면서 '중초사'와 문헌속 '안양사'의 의문이 제기됐다.
이는 발굴 현장에서 약 700미터 정도 떨어진 인근에 있는 현재 '안양사'라는 자그마한 사찰이 존재하고 있으며, 유유 공장 부지인 같은 절터에 통일신라시대의 중초사와 고려시대의 안양사가 각각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풀어야 할 수수께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에는 국내 현존하는 당간지주 중 유일하게 조성연대를 확인시키는 명문이 새겨진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 제4호)와 중초사지삼층석탑(보물 제5호에서 지방문화화재로 격하)이 존재해 중초사지로 인식돼 왔으나 향토사학자들은 문헌속 '안양사' 일 것이라고 추정해 왔다.
이에 2010년 6월-8월까지 33일간 진행된 2차 발굴 조사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등 기록속의 안양사 7층 전탑(塼塔)의 터와 흔적들이 1100년만에 그 실체를 드러냄으로 고려시대 태조 왕건이 세운 '안양사' 였음을 확인시키며 역사문화의 보고임을 증명하고 있다.
발굴된 안양사 7층 전탑지는 공장 사무동과 공장동 건물 중간으로, 남쪽 방향으로 쓰러진 형태로 벽돌-기와-벽돌 순으로 쌓여있어 옥개석(屋蓋石·지붕처럼 덮는 돌) 위에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추정돼 전탑의 구조와 축조방식도 어느 정도 파악됐다. 또한 금당지와 전탑지, 답도, 중문지 등을 추가로 조사해 고려시대 가람배치와 관련 중심사역의 건물배치를 추정할 수 중요한 단서를 얻었으며, 전, 막새류, 청자연봉, 청자상감 뚜껑편 청자 접시편, 청자 저부편 등을 무수히 발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안양사 가람 경주 황룡사와 같은 규모로 상당했다"
 
발굴을 주도한 연구원은 "이번 2차 발굴을 통해 안양사는 황룡사에 버금가는 대규모 사찰로, 경기서남부에 이 같은 규모의 사찰이 발굴되기는 처음이다"고 강조하며 "150미터 떨어진 안양예솔공원 주차장옆에 있는 마애종도 안양사와 연관된 것으로 보여 안양사 경내가 옛 유유산업 부지 경계를 넘어 인근 지역까지 포함되는 대규모 사찰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또한 "고려시대인 900년에 창건된 것으로 기록된 안양사와 통일신라시대인 제42대 흥덕왕(興德王) 2년인 827년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중초사(中初寺)와의 관계를 알아내는 것도 과제로 정확한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 발굴조사를 확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양사 터 인근에 있는 마애종은 국내에 유일하게 현존(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하는 것으로 암벽(535×505cm)을 다듬어 '승려가 범종을 치는 장면'을 음각과 양각을 활용하여 새긴 암각화로 당시 사찰 경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돼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절터 위에 세워진 ㈜유유 안양공장 건물은 건축가 (故) 김중업(金重業,1922∼1988) 선생이 설계하여 1959년 5월 준공한 산업건축물로 보일러실, 경비실, 사무동, 생산동, 굴뚝 5개 작품이며 특히 생산동 공장 2층 건물외벽 모퉁이에는 파이오니아상(Pioneer像)과 모자상(母子像)이 설치되어 있어 이색적이다.
특히 어려운 시대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국전작가 박종배씨의 모자상, 파이오니아상과 1961년 제10회 국전공예에서 문교부장과상을 수상한 김광배의 작품 등 예술작품들이 건물 외벽에 설치돼 높은 안목이 엿보여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 가치를 평가를 받아 왔다.특히 사무동 지붕은 역보로 되어 있고 생산동은 캔트리버로 형성하여 삼성천의 시야를 확보하고자 한 디자인과 대문장식, 철창 등이 쌍Y자를 모티브로 일관된 장식으로 가미된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건물이며 2층 원형의 수위실 역시 톡특한 형태로 건축됐다.
특히 (주)유유 안양공장 건설당시 유적조사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청동용두와 사자향로발 등 유물들이 발굴돼 현재 유유 본사 현관 홀에 전시돼 있다.
에피소드로는 과거 유원지시절 공장건립 후 술에 취한 행락객들이 제약공장을 숙박시설인 호텔인줄 잘못 알고 투숙을 요구하며 경비실에서 걸핏하면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던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안양시는 통일신라중초사지이면서 동시에 고려안양사지로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폐사지를 예술성이 돋보이는 공장건물을 재활용하여 ‘안양천년문화관’으로 조성하고 있다. 안양천년문화관이 들어설 유유산업부지는 대지 16,243㎡에 리모델링될 6개 동은 연면적 4,634㎡으로, 시는 지난 2007년 5월 첫 사업에 착수해 총 사업비 104억2천5백만원을 들여 올 연말에 공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유유 부지에는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 제4호), 고려 삼층석탑(경기도유형문화재 제164호)등의 사찰유적이 남아 있다. 인접 안양사권에는 통일신라말~고려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수동마애종(경기도유형문화재 제92호) 및 고려시대 문화유산인 안양사귀부, 안양사부도, 안양사석실분 등이 남아있어 안양시 석수동지역은 조상들의 얼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곳이다.
또 매년 음력 10월 3일 마을제인 ‘석수동쌍산신제’가 지금도 삼성산 경로당의 어르신을 중심으로 제한적이나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