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시 청계동에 한재굴이란 동네가 있다. 지금은 고가도로가 얼기설기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을이 되었지만 우리 어릴 적에는 덕장초등학교에서 남쪽으로 개울 건너에 한재굴이란 마을이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동네였다. 판교ㆍ성남으로 나가는 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안양에서 가끔씩 들어오는 버스의 종점이었다. 당시에는 대단한 터미널이었다.
한재굴에서 청계ㆍ 청계사, 학현ㆍ원터, 백운호수ㆍ능안 방면 등의 세 길이 만나서 안양 쪽 한길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한재굴’이라 했었다.
그것을 어떤 근거에선지 ‘한직동’이란 조금 딱딱한 한자 이름으로 고쳐 썼다. 마음이름, 특히 그 작명 이유를 살펴보는 데 다음과 같은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대부분의 마을이름은 순수한 우리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억지 한자(漢字)로 둔갑한 것이 많으므로 한자 지명에 매달려서 마을이름의 본뜻을 캘려고 하면 아주 동떨어진 데로 빠질 위험이 있다.
둘째는 발음하기 쉽게, 소리 나는 대로 굳어진 것을 그대로 보아야 하고, 지방의 어투로 된 것도 그대로 두고 마을이름의 원형에 가까이 가야 한다.
이때에도 어떻게든 왜곡 한자화된 것에 주의해야 한다. 셋째 주변의 지형, 동식물에서 따온 마을이름이 많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한재굴도 한자로 한직동(漢直洞)으로 표기한 다음, 그 한자명을 가지고 여러 가지 설명을 붙이려는 것은 본말이 뒤집힌 엉뚱한 결과를 낼 수 있다.
어떤 분은 한재굴 일대가 한재(旱災)가 심했던 데서 나온 이름이라 하는데, 그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한재굴은 크다는 뜻의 ‘한’, 고개 ‘재’에서 ‘한재’하면 큰고개를 뜻하게 되고, 그것은 아마도 하우고개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말하자면 한재굴은 하우고개, 즉 큰고개(한재)가 시작되는 초입에 만들어진 동네라는 뜻일 것이다.
서산시 지곡면에 ‘한잿말’이란 마을이 있다. 그 한잿말도 큰 고개 밑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수필가이자 문학박사인 정진원 선생은 의왕시 포일리 출신(1945년생)으로 덕장초등학교(10회), 서울대문리대 지리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지리학,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박사학위논문으로 ‘한국의 자연촌락에 관한 연구’가 있다. 성남고등학교 교사,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오류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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