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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조성원]60년대 안양에서는 이런 놀이를 했다

안양똑딱이 2017. 3. 15. 15:58

[조성원]60년대 안양에서는 이런 놀이를 했다

( 노는 것이라면 )

아이들은 놀기 위해 태어난다. 해 저무는 쯤은 걱정도 아니다. 배고픈 것도 일도 아니다. 댓 끼는 건너 띄어도 그냥 참을 만하다. 그 무엇이든 노는 것에 앞서가랴. 놀기는 그래도 긴 방학이 낀 겨울철이 제일이다. 그 쯤 시간은 노는 편이니까. 긴 겨울 철 아랫목을 차지한 누구는 토끼털 귀마개에 벙어리장갑에 한 겨울밤을 맴돌던 메밀묵, 찹쌀떡을 연상할 것이지만 성산한 아이들은 바람결이 서늘할 그 무렵부터서 손이 쩍쩍 갈라져도 늘 행선지는 골목길이었다.
고추밭이 텅텅 비면 휑하니 북풍은 분다. 그쯤엔 연을 푼다. 곳은 미루나무도 비켜서 저 멀리 벌 터 동네 까지 하늘이 신작로처럼 확 뚫려 있다. 가오리연은 만들기도 쉽다. 밀가루포대나 지나간 달력 문종이(창호지)라면 안성맞춤이다. 그 종이를 마름모꼴로 만들고 윗부분에 우산대를 잘라 가느다랗게 뼈대를 만들어서 밥풀로 떨어지지 않게 잘 이겨서 부치면 몸체는 완성이다.
이때 대나무 마디가 아래에 위치하여 무게중심이 아래로 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양 가랑이에 신문지나 책을 찢어 붙이면 방향을 잡아주는 귀부분이 완성되고 꼬리를 달면 훌륭한 가오리연이 만들어진다. 연줄은 대나무 댓살 양옆으로 연결해서 묶는다. 줄은 위편에 매듭 중심이 서서 바람을 차고 오르도록 한다.
이따금 연이 균형이 맞지 않거나 바람을 잘못타면 뱅글뱅글 돌다가 곤두박질을 친다. 그때는 지푸라기를 한 쪽에 더 매단다. 형들은 방패연도 잘 만들었고 줄에 풀을 매겨 연싸움도 곧잘 했다. 연줄을 풀면 허공중에서 비틀비틀 대며 자지러지지만 딱 멈춰서면 가오리가 물결치고 차고 오르듯 금세 활기가 넘친다.
풀리고 풀려 실패에 감긴 처음 매듭이 보일 때까지 치솟는 연. 한 점이 되어 까마득한 하늘 꼭대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을 보노라면 내가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든다. 형들 실패는 물레처럼 한 가운데 철사가 들어있어 술술 잘도 풀리고 잘도 감겼다. 잘못해서 줄이 끊어지는 날이면 날아가는 연을 찾기 위해 저 멀리 벌 터 동네까지 치달았다.
찬바람을 뚫고 싱싱 달리는 썰매 타기도 뱅글뱅글 도는 팽이치기도 빼놓을 수 없는 겨울 놀이였다. 그래도 제일 많이 한 놀이는 구슬치기다. 구슬치기 판은 마른 땅에 가운데 구멍 하나에 사방 4군데에 구슬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구멍을 뚫고 가운데서 시작을 한다. 먼저 왕초구멍에다 한 눈 지그시 감고 구슬을 튕긴 다음 제일 가깝게 던진 아이가 1등이 되어 왕초 구멍에다 넣은 다음에 다음 순서로 향하든지 상대방이 구슬을 못 넣게 맞추어 멀리 밀어 내며 진행을 한다.
잘 맞춘다는 구슬은 따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더욱이 쇠구슬인 경우는 묵직한 무게만큼 구멍 안에든 구슬들을 다 밀쳐내는 놀라운 장기를 가졌으며 유리구슬은 아무리 예쁜 꽃 구슬이라도 금세 곰보가 되었다. 그밖에도 딱지치기와 자치기, 단방고라는 놀이도 무척 했다. 비석치기도 그렇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놀이는 여자아이들도 껴서 한 놀이이며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와 머리핀 따먹기가 유행 했다.
장깨이~쉿(가위 바위 보)을 해서 진편이 말이 되는 말뚝 박기. 한 친구가 마부가 돼 담벼락이나 나무에 기대 가랑이를 벌리면 나머지 아이들은 앞사람 가랑이에 줄줄이 고개를 처박아 말(馬)을 만들었다. 이긴 편은 차례대로 말 등에 올라타 두 편이 가위 바위 보를 겨뤘다. 말이 된 편은 서로서로 힘이 안 드는 마부를 하겠다고 다퉜다. 마부는 힘이 덜 드는 만큼 가위바위보에 지면 아이들한테 또 비난과 몰매를 맞았다.
탕! 탕! 탕! 하고 입으로 총알을 쐈던 총싸움, 빈총을 맞아 죽은 친구는 친구들 끼리 정한 숫자까지 세기만 하면 되살아나기도 했지만 죽은 것 자체를 누구든 싫어했다. 그렇게 놀이를 하다 총을 맞았느니 안 맞았느니 입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요즘은 그 놀이들을 볼 수가 없다. 엄마 놀아줘! 가 아이들 입버릇이 된 요즘은 취미가 각자라서가 아니고 놀 시간이 없으며 같이 놀 아이들이 모이지도 않는다.
혼자서는 아무 재미가 없으며 엄한 규칙대로 어울려서야 만이 제 맛이 났던 그 시절의 놀이들. 요즘은 혼자 책상에 앉아 전자게임과 겨루고 전자게임 룰에 승복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들은 잘 어울릴 줄 모르고 승복하는 묘미도 잘 모르고 별 재미도 없다. 별 일이 많아야 할 세대인데 별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늘 바쁘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 뛰어 놀아야 한다. 놀기 위해 태어나기 때문이다. 나이들어서는 노는 것도 힘이 든다. 다 커서는 힘도 없고 어울린다 해도 재미가 적다. 다 커서는 신나는 것으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신나게 놀아야 힘도 생기고 재주도 생긴다. 놀면서 싸우고 동화되고 깨치는 이 보다 더한 교육은 앞으로는 없지 싶다.
하늘이 맑은 11월 오후 한나절, 샐쭉한 바람이 그 시절처럼 불어온다. 건물사이 빈 공간이 허하기만 하다. 연을 날려보면 어떨까. 술술 풀어 하늘에 날려 보낼 것들이 많은 요즘이다. 묶이거나 감기거나 얽히거나 합쳐진 것 따위를 그렇지 아니한 상태로 되게 하는 것이 술술 푸는 것이 아닌가. 술술 푼다면 더 높은 곳을 향하고 보다 많이 알고 보게 될 것이다. 이 세상 창공은 너무 얕다. 나도 그렇지만 모두들 마음의 연 하나씩 갖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조성원의 수필 '나 어릴적' 초고에서 발췌. 이 글을 쓴 조성원(어릴적 이름 조형곤) 수필가는 1957년 안양에서 태어난 안양초교 38회, 안양중학교 23회 졸업생으로, 저하고 동창으로 오랜 기간 대덕 모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지요. 블랙죠라는 이름을 글을 쓰다가 수필가로 등단해 현재는 한국수필가협회와 수필문학가협회에서 이사직으로 적극적인 문단 활동을 해오며 제2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과 수필문학사가 주관한 제1회 소운문학상을 수상도 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수필집인 ‘빈 가슴에 머무는 바람 1&2’이외에도 ‘송사리 떼의 다른 느낌’, ‘작게 사는 행복이지만’, '‘오후 다섯 시 반’ 등 7권의 수필집을 내놓었으며 ‘2천 년 로마 이야기’와 ‘스페인 이야기’ 등 여행 에세이집도 발표했습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