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30-1960년대 안양유원지로 피서온 사람들

안양똑딱이 2016. 8. 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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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찾아 나서지요. 피서 풍습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지만 일상을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다는 의미는 변함이 없답니다.
근래에는 해외여행이나 시설 좋은 물놀이 공원에서의 피서가 흔한 풍경이 되었지만, 삶이 궁핍했던 1950~1960년대에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달려가 더위를 식혔다. 당시 서울에서 멀리는 대천·송도로 피서를 떠나기도 했지만 가까운 시냇가, 계곡, 한강, 뚝섬 등에서 물놀이를 했으며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는 인파가 몰리는 피서지중 한곳이었지요.
안양유원지 계곡에는 물이 참 많았답니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말에는 관료들의 피서지였고,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는 계곡을 돌로 막아 안양풀이라 명명하고 유원지입구 철길에는 임시역이 만들어지고 열차가 정차할 정도로 역사도 참 오래되었으며, 1970년대 초에는 한해 여름 100만 인파가 안양유원지로 피서올 정도로 수도권의 대표적인 피서지였지요.
사진속 1968년 무렵 안양유원지 계곡 초입에는 제1풀, 제2풀 공짜풀장이 현 주차장에서 100여 미터 올라가면 있었고, 그 위쪽으로 유료풀장이 대영풀장이 있었지요. 가족들이 피서를 오면 풀장에 가지 않다라도 너럭바위가 좌악 깔린 계곡옆 천막을 빌려 바리바리 싸온 음식과 수박에 칠성사이다를 마시고 아이들은 물가에서 물장구 치기도 했지요.
공짜풀장의 제1풀은 수심이 꽤 깊어 어른들이 이용했는데 매년 1-2명의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지요. 풀장 좌우측 스탠드는 엉덩이를 드러 낸채 수영복을 갈아입거나, 옷을 보관하기도 하고, 차디찬 계곡물에 몸이 추우면 햇빛에 달구어진 돌 계단에 누워 휴식을 취하기도 했던 곳이었지요.
돌계단을 올라가면 뒤족으로 상점들이 쭈욱 있었는데 수영복과 자동차 타이어에 바람을 넣은 고무 쥬브를 빌려주기도 했고 사이다를 파는 가게에 활쏘기, 총쏘기 게임과 도깨비굴도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