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역사 #기록 #기억 #연탄/ 1960년대 초반 소달구지(우마차)로 연탄 배달을 하던 안양시내의 풍경으로 안양시사료관에서 찾은 자료 사진입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60년대 서민들에겐 겨우 내 쓸 연탄을 빈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 중요한 월동준비였지요.
또 연탄은 난방용으로 겨울철에만 사용한는 것이 아니라 LPG가스가 없던 당시에는 각 가정과 식당에서 움식조리도 해야 했기에 서민들에게 그야말로 사계절 내낸 필수불가결한 연료였지요.
연탄을 주문하면 연탄광이 커 보관할 공간이 큰 집의 경우 트럭으로 날랐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연탄가게에서 사진처럼 달구지나 리어카로 날랐지요.
너도 나도 연탄을 때던 시절 전국에 연탄공장은 400여 개에 달했고 동네마다 연탄가게 하나씩은 꼭 있었고 안양의 경우 화물차에서 석탄을 하차히가 쉬운 안양역(현 롯데백화점 주차장 자리)에 연탄공장이 있었지요.
저렴한 가격에 두 세장이면 하루종일 아랫목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연탄은 당시 국민 연료이자 겨울필수품이었으나 또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맞지 않아 겨울엔 늘 연탄파동을 겪어 웃돈을 주고 연탄을 쟁여놓는 경우도 적지않았지요.
특히 연탄을 갈때 나는 열기와 까스는 정말로 참기 힘들었으며 자주 연탄까스로 중독을 일으켜 숨지는 사건이 많았지요.
연탄을 때면 이산화탄소가 나오는데 이 까스가 집 방안으로 스며들면 밤에 수면을 취하면서 질식사를 하는 일이 다반사였죠. 운이 좋아서 빨리 발견되면 병원으로 옮겨서 고압산소치료를 받으면 깨어나는데 그렇지 못하고 늦게 발견되면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건이 당시는 다반사였지요.
당시 신문에는 연탄까스 사망기사가 자주 실렸고 각 가정에ㅎ서는 연탄까스에서 깨어나도록 하기 위해 동치미 국물을 담가놓는 겻은 기본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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