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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훈도]중초사, 안양사, 김중업과 유유산업(인천일보 2026.10.19)

안양똑딱이 2026. 10. 21. 03:05

 

[썰물밀물] 중초사, 안양사, 김중업과 유유산업

기자명 양훈도 논설위원 입력 2026.10.19 15:17 수정 2026.10.19 15:29 지면 19면 댓글 0 

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4484&fbclid=IwY2xjawVEitRleHRuA2FlbQIxMQBwZG9mBXNydGMGYXBwX2lkEDIyMjAzOTE3ODgyMDA4OTIAAR6fM91zSJC9miNERvfK2DePOspNLciJSzECkEKMb8suORiMcNjKzgvw7bN66w_aem_GyPgpRcPKe_9pe6dUnhw3w

 

유한양행 창립자 유일한의 막냇동생 유특한은 1953년 유한양행을 떠나 독립적으로 제약회사 경영을 시작했다. 유특한은 1959년 안양 석수동(당시 시흥군 동면 안양리)에 유유산업 새 공장을 지었다. 공장설계는 막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건축가 김중업에게 맡겼다. 김중업은 빠르고 값싼 공장건물만 짓던 당시 풍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설계를 내놓았다. 파격적으로 내부 기둥을 없애고 밖으로 빼낸 외곽라멘구조 연구동, 모서리마다 벽감을 설치해 조각작품을 설치한 공장동, 360도 원통형에 예술감각을 살려 지은 수위실이 대표적이다.

 

국가유산청이 최근 옛 유유산업 연구동, 공장동, 수위실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약 70년 전 당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가 공장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다. 자신을 “시인이면서 건축가”라고 소개했다는 김중업이 '현대 건축은 세계와 지역을 동시에 말해야 한다'는 한국적 모더니즘 건축의 신념을 최초로 구현해본 설계가 아닐까 싶다.

 

유유산업은 2006년 충북 제천으로 공장을 옮겼다. 그런데, 공장 이전 과정에서 연구동 아래쪽에서 고려 시대 큰 절터가 발견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명에 따라 지어졌다는 안양사였다. 안양이라는 지명을 낳은, 바로 그 절이다. 승려 1000명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인 대가람이어서 발굴에 시간이 꽤 걸렸다. 전탑지, 금당지, 강당지, 회랑지 등 주요 시설 발굴은 이뤄졌으나 아직 정밀발굴이 남았다. 그 사이 2014년 옛 연구동 등은 김중업건축박물관이 되었다.

 

사실 유유산업이 1950년대 말 공장을 지을 때도 이곳에 큰 절이 있었다는 건 알려져 있었다. 절 이름은 안양사가 아닌 중초사. 왜냐하면, 1934년에 이곳 당간지주에서 신라 흥덕왕 때 것이라는 명문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당간지주는 후일 보물로 지정됐다. 당간지주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서 무너진 삼층석탑도 발견되었는데, 공장 지을 때 복원 이전했다. 이때부터 중초사지 삼층석탑이라 불려 왔으나, 탑은 고려 중기 양식이다. 즉, 안양사 석탑이라 해야 정확하다.

 

중초사 터에 안양사, 안양사 사라진 자리에 수백 년 지나 유유산업이 들어서고, 거기서 또 근대문화유산이 탄생한 사연이 '문화 지질학' 표본 같다. 불교에서 '안양(安養)'은 영원히 평안한 이상세계를 가리킨다. 문화유산 위에 문화유산이 거듭 쌓이는 축복이 이어지기를 삼가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