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시대 때만 해도 안양에는 학교가 없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먼 거리에 위치한 군포보통학교나 과천, 안산까지 등교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학교 건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안양 유지들과 주민들이 기성회를 조직하고 학교 설립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안양산업사 엄기승 사장과 당시 초대 서이면장인 조한구 씨도 학교 건립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자금은 제대로 모이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안 동아일보에서 전국에 대대적인 홍보를 해줬다. 전국에 있는 많은 국민들이 성금 모금에 동참했고, 일본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모금운동은 성공리에 이뤄졌다.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1927년 12월 20일 안양공립보통학교가 개교했다. 현재 안양초등학교의 전신이다. 처음에는 4년제로 유지되다가 후에 6년제로 바뀌면서 안양 교육 발전에 초석을 다졌다. 학교 정문이 당초에는 만안로변에 있었으나 현재는 서쪽에 정문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 때 안양5동이 교하동으로 불린 배경도 이 때문이다.
-안양시민신문
해방 전부터 현재까지 옛 어른들은 안양5동을 찬우물, 냉천동이라고 칭했다. 어느 농부의 지성에 샘물이 솟았다는 의미인 찬우물은 현재 아파트와 현대식 주택이 가득하다.
안양6동의 옛날 이름은 주접동이었다. 유래는 정조대왕이 부왕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천장하고 능행을 위해 지금의 안양경찰서 뒤에 정각을 짓고 잠시 쉬었다는 연유로 마을명이 붙여졌다.
1938년 밤나무 밭 자리에 안양식림묘포(경기도 임업시험장)를 설치한 후 수의과학연구소, 국립식물검사소, 시흥군 임업협동조합, 농수산물 검사소, 한국담배인삼공사 안양지점, 국립종자공급소, 안양세관, 안양시 의료보험조합과 안양 상공회의소가 들어섰다.
일제 때만 해도 부산에 있던 수의과학본부가 국립수의과학연구소로 바뀌면서 안양6동으로 이전해 안양6동은 관가의 중심지가 됐다. 현재 안양세무서 자리가 그 당시 국립수의과학연구소 사택이었다.
안양5동 역시 주요기관이 많았다. 공공기관으로는 안양전화국, 안양우체국, 안양소방서, 안양등기소 등이 있었다. 50년대부터 60년대 사이에는 도살장도 이곳에 있었다. 주택지로는 동덕, 동명, 장미, 한남아파트가 들어섰고 주요기관과 각종 편의시설이 소재, 주요 도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편집자 주]안양시민신문의 기획 연재 및 지역 향토 기록에서 다뤄진 '그 시절 안양 이야기'는 해방 전후부터 1960~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 이전, 안양의 소박했던 동네 풍경과 삶의 애환을 담은 대표적인 지역사 콘텐츠로 작고하신 고 변원신 어르신께서 연재의 글을 쓰셨다.
고 변원신 선생은 1933년 현재 안양9동인 과천군 하서면 후두미(과거 안양3동에서 분리)에서 태어났으며 군 제대후 20대때 시흥군 안양읍 서기로 시작, 안양3리 이장과 초대 안양시의원, 새안양회 회장, 안양시새마을회 초대회장, 사랑의집수리 이사장, 고충처리위원장, 안양시한일친선협회 회장, 안양시 프로축구 LG연고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 안양권 4개시 행정구역 통합추진 안양시위원회 상임대표, 안양시공직자윤리위원장, 협심새마을금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행정과 시민사회 등 전 방위에 걸쳐 두루 소통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여 1960년부타 2000년대까지 안양읍 시절부터 안양시뿐 아니라 과거 시흥군 구역 전반에 걸쳐 지역사회 발전 방향에 대한 원로의 입장에서 고견을 제시하는 등 행정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안양시정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존경받았던 원로 인사로 2015년 9월 6일 오전 5시18분 82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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