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805

[기억-조성원]1960-70년대 그 시절 안양의 기억

[조성원]1960-70년대 그 시절 안양의 기억 (그 시절의 안양) 오늘 새벽도 추적추적 늦은 여름비를 뿌렸지만 가는 세월은 이정표 없이 무작정 달리는 기차와도 같이 한 계절의 끝을 알리는 정거장을 이미 통과하였습니다. 창문 틈에 서린 기운이 어제 같지가 않습니다. 그 가는 속도는 얼마쯤 되는 것일까요. 덜 여문 창밖의 그림 속엔 어느새 추석이란 명절이 다가섭니다. 이때쯤이면 자연 마음은 고향을 향합니다. 나 역시도 안양을 떠난 지 햇수로 25년이 넘습니다. 흘러간 세월만큼 너무도 변한 안양! 동구 밖에 포도밭 고추밭 냇가가 그대로 있는 정감어린 안양도 아닌데 지금도 여전히 애착을 느끼는 것은 내 삶의 깊이만큼이나 골 패인 마음을 고향의 흙냄새로 치유 받고 싶은 단순한 동심의 발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기억-조성원]안양 병목안행 기찻길옆 '길모퉁이 카페' 추억

[조성원]안양 병목안행 기찻길옆 '길모퉁이 카페' 추억 (지금도 여전히) 고유란 본디부터 지니고 있거나 그 사물에만 특별히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느껴지는 소중함이다. 고유하여 드물 것 같지만 어느 것이든 또 누구나 다 그런 특별의 것을 최소 하나씩은 지녔다. 요즘은 어느 것에 쓰던 알리는 이름들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길가에 펼쳐진 간판은 참으로 다채롭다. 어느 것은 구수하고 어느 것은 산뜻하여 날아가는 새가 연상되고 또 어느 것은 파란하늘에 우수를 자아내어 지닌 고유함을 느낌으로 전한다. 얼마 전 보았던 횟집 간판 하나가 상큼하게 떠오른다.‘푸른 바다 세상’. 그럴듯한 간판 하나로 길가에 그리움이 생기고 사랑이 넘치고 아련한 추억이 낙엽처럼 뒹군다. 그 간판에 취해 서성이는 나그네도 있을 법하다...

[기억-조성원]1960년대 안양읍내 중심에 놓인 '신작로'

[조성원]1960년대 안양읍내 중심에 놓인 '신작로' (신작로 길) 언덕너머에 신작로 길이 생겼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신작로라 불러서 나는 그 길 이름이 신작로인 줄 알고 지냈다. 신작로는 필요해 의해 새로 만든 길이다. 문명의 길 실크로드와도 같이. 문명세계에서 필요는 빠른 시간을 전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그 길은 미루나무 마냥 시원스럽게 쭉 뻗어 있으며 문명에 편리하도록 반듯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 길은 새로운 사물이나 새로운 사람들을 대동한다. 마을길이 끊기면 마음의 길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첩첩산중에 갇힌 마을의 적막함을 이를 때 하는 말이고 문명 길에서는 길이 끊기면 황량함 내지 황당함이 되고 말 것이다. 촌로들은 바깥세상을 기웃이라도 할 양으로 으레 신작로 길 초입..

[기억-조성원]60년대 안양에서는 이런 놀이를 했다

[조성원]60년대 안양에서는 이런 놀이를 했다 ( 노는 것이라면 ) 아이들은 놀기 위해 태어난다. 해 저무는 쯤은 걱정도 아니다. 배고픈 것도 일도 아니다. 댓 끼는 건너 띄어도 그냥 참을 만하다. 그 무엇이든 노는 것에 앞서가랴. 놀기는 그래도 긴 방학이 낀 겨울철이 제일이다. 그 쯤 시간은 노는 편이니까. 긴 겨울 철 아랫목을 차지한 누구는 토끼털 귀마개에 벙어리장갑에 한 겨울밤을 맴돌던 메밀묵, 찹쌀떡을 연상할 것이지만 성산한 아이들은 바람결이 서늘할 그 무렵부터서 손이 쩍쩍 갈라져도 늘 행선지는 골목길이었다. 고추밭이 텅텅 비면 휑하니 북풍은 분다. 그쯤엔 연을 푼다. 곳은 미루나무도 비켜서 저 멀리 벌 터 동네 까지 하늘이 신작로처럼 확 뚫려 있다. 가오리연은 만들기도 쉽다. 밀가루포대나 지나간..

[기억-조성원]1960년대 안양 영화관의 추억

[조성원]1960년대 안양 영화관의 추억 ( 그 시절 영화) 이윤복 학생은 살 길이 아득했다. 온 집안이 그의 구두 통에 목숨을 기대어 살아야 했다. 하루도 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손엔 책가방 또 한 손엔 구두 통. 비오는 날엔 껌팔이. 여름내 보리 이삭을 줍던 동생 순나는 집을 나갔다. 배고파 눈이 휭휭 할 땐 아버지 약 살돈을 참지 못하여 수제비를 사먹고 울곤 하였다. 그래도 그의 가슴엔 질긴 삶의 예울 소리가 한없이 퍼진다. “ 껌 사이소 , 마 예 껌.” ‘저 하늘에도 슬픔이’ 아마도 이 영화가 내가 본 최초의 영화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너무도 많은 눈물을 짜 낸 덕분으로 여전히 기억이 생생한 무연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애처롭고 불쌍하여 울었고 엄마를 찾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팠다. 나를..

[기억-조성원]안양에는 예쁜 동네 이름 있었다

[조성원]안양에는 예쁜 동네 이름 있었다 (안양 지명은) 안양은 어디에서 유래된 지명일까. 글을 다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그간 무심했다는 생각도 든다. 양산의 통도사에서 안양암이란 암자를 본 적이 있다. 安養이란 한자가 똑 같아 혹여 불교에서 유래된 지명은 아닐까 싶었다. 요즘은 동네 인터넷에 접속하면 사는 동네에 대한 현황이 조근 조근 잘 설명되어 있다. 곳에서 발췌한 사항이다. 안양(安養)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安養寺)에서 유래되었다. 신라 효공왕 4년(900)에 궁예의 후예인 왕건이 금주(시흥)와 과주(과천)등의 지역을 징벌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산꼭대기의 구름이 5가지 빛으로 채색을 이룬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살피게 했다. 구름 밑..

[기억-조성원]안양역 연탄공장 있던 그때 그시절

[조성원]연탄역 연탄공장 있던 그때 그시절 (연탄) 그 시절은 계절 변화가 뚜렷하였고 한 겨울은 삼한사온이라 하여 삼일은 춥고 사일은 비교적 따뜻했다. 하지만 따뜻하다고 해서 지금의 날씨를 연상해서는 안 된다. 중부지방의 한 겨울 추위가 영하 15도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가 꽤 많았다. 한 겨울은 먹는 식량도 식량이었지만 무사히 잘 넘기느냐는 추위를 어찌 견디느냐에 달려 있었다. 메리야스 내복에 벙어리장갑 ,토끼털 귀마개가 당연하였던 그 무렵에 돈이 있다는 사람들이 겨울나기로 겨우 장만을 한 것이 연탄이다. 없는 사람들한테는 불쏘시게 라는 게 정해져 있지 않고, 어디서든 땔 만한 걸 구하다 아궁이에 채워 넣다. 그 바람에 수리산은 그 많던 떡갈나무, 굴참나무는 모두 베어지고 벌거숭이산이 되고 말았다. 19..

조영남이 찾은 문화휴식공간 '안양예술공원'(2015.06.30)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APAP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동영상.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이 찾은 문화휴식공간 '안양예술공원'_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시즌2, 8회(2015.06.30 방송) 영상보기 https://tv.skylife.co.kr/skyanc/program/clip_view/624/5655 http://nstore.naver.com/broadcasting/detail.nhn?productNo=1810711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위치한 안양 예술 공원 과거 서울 인근의 대표적 휴양지 안양 유원지에서 탈바꿈한 복합문화 휴식공간이다. 안양유원지는 1950년대 수영장과 각종 오락시설이 들어서면서 여름철이면 하루 4만명이상의 피서객이 찾았지만 방문객이 증가하면서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

[空間사람]김중업박물관 리모델링/박제유(2015.0716)

#안양 #김중업박물관 #건축물 #유유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중초사 #안양사/ [空間사람] 김중업 박물관 리모델링 (박제유)/ 2015.07.16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공간, 소박하고 절제된 선, 그러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공간, 이야기들은 긴 시간을 들려주고 싶어한다. 시간과 공간의 공존, 우주를 가로지르는 숨은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영상보기 http://tvcast.naver.com/v/456202 시간에게 되돌려 받은 공간 '김중업 박물관' * 위 치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예술공원로 103번길 * 개 관 : 2014.3 * 용 도 : 문화시설 * 설 계 : 박제유 (제이유건축사사무소) * 수상 : 2014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