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신문읽기 17

[20260710]1946년, 안양에서 일본군 보관 포탄 50만톤 발견

2026.07.10/ #아카이브 #안양 #옛신문 #기록 #자유신문/ 광복후 안양에서 일본군이 보관한 포탄 50만톤 발견 및 처리 추진 이야기제목: 포탄 50만 톤 安養에서 발견발행년월일: 1946년 02월 18일1945년 광복이후 일본군이 안양비행장 인근(박달군용지 추정)에 보관한 포탄 50만톤을 발견. 이를 서해바다에 버리려고 추전중인데 트,럭으로 옮기는대만 6개월이 걸린다는 기사.

[20260709]안양여고 개교(1960.4.10) 동아일보 게제 단신

2026.07.09/ #아카이브 #안양 #기록 #옛신문 #동아일보 #since1960/ 1960년 3월29일자 동아일보(석간) 4면에 실린 안양여고 개교 뉴스 단신.안양여자중·고등학교(安養女子中·高等學校)는 1960년 3월 8일 3학급으로 설립인가(초대교장 김완종 취임)를 받아 1960년 4월 10일에 개교하였으며 4월 11일에 제1회 입학식을 치렀다.

[20251123]1945년 연합신문 지면에 실린 안양양조장 광고

2025.11.23/ #아카이브 #엣신문 #기록 #광고 #안양양조장/ 1949년 6월21일 연합신문(聯合新聞) 지방종합판 광고 지면에 실린 안양양조장 광고 연합신문 [ 聯合新聞 ]발행처 聯合新聞발행일 1949년 06월 21일관련 키워드 安養釀造場,南一商會,香泉기사위치 4면 11단기사유형 광고기사주제 문화주기사항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2014檀紀四千二百八十二年六月二十一日, 火曜日

[20250321]원태우지사 의거 기사 공립신보 '投石被捉'(1906.07.30)

2025.03.21./ #아카이브 #옛신문 #공립신보 #대한제국 #원태우지사 #이등박문 #이만여 신문명 공립신보 기사제목 投石被捉 기사형식 일반기사 발행년월일 1906년 07월 30일색인어이름 : 이등박문(통감), 이만여지명 : 경기도 안양주제분류정치,행정 > 정치,행정,외교(대한제국기) > 통감부 > 통감민족해방운동,대중운동 > * 무장,의열투쟁 > 무장의열투쟁 > 암살처단 공립신보 1906년 07월 30일자에 실린 원태우지사의 이등박문을 향한 돌 투석 항일운동 사건 기사로 기사 제목이 投石被捉(투석피착)이다. "投石被捉"는 한자로 "돌을 던졌다가 붙잡히다"라는 뜻이다. "투석(投石)"은 돌을 던지는 행동을 의미하고, "피착(被捉)"은 붙잡히거나 잡히는 상황을 뜻한다. 이 표현은 어떤 행동이 결과적으로..

[20250309]1919년 3월 시흥보통학교 동맹휴교 만세운동 보도

2025.03.09/ #아카이브 #옛신문 #기록 #역사 #since1919 #만세운동 #시흥보통학교/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문 1919년 3월10일자에 실렸던 시흥보통학교 만세운동 관련기사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시작된 후 일주일 후인 3월 7일 11시경 경기 시흥군에 자리한 시흥공립보통학교(현 시흥초등학학교)에서 120명의 학생들이 동맹휴교를 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고, 주모자 다섯 명이 연행됐다. 이 소식은 1919년 3월 10일 매일신보를 통해 보도됐다.연행된 학생은 훈계를 받고 풀려났지만 동맹휴교는 4월까지 계속 된 것으로 보인다. 4월1일 보통학교의 입학생은 1명이었으며, 전체 출석률을 50%에 불과했는데 당시 안양에는 6년제 학교가 없어 이 학교로 다니는 안양학생들이..

[20241114]1935년 4월 안양 망해암 탐방 기록(조선일보)

2024.11.14/ #아카이브 #기록 #옛신문 #망해암 #안양역 #관악산/ 춘교명상-관악산편[조선일보]1935.04.20조간2면 기사 (문화) ※ 원본 데이터가 손상된 경우 글자가 ㅁ 또는 공란으로 표기됩니다.춘교명산(春郊名山)삼박자행각(三拍子行脚)관악산편(冠岳山篇)동천(洞天)은암벽(岩壁)에고현(孤懸)유곡(幽谷)엔간수자명(澗水自鳴)=청허감(淸虛感)에일행(一行)은잠시자신(暫時自身)도망각(忘却)="망해(望海)"부득(不得)"망해(望海)"암점경(庵點景) 【십(十)】문(文)…촌석(村石)화(畵)…웅초(熊超)사(寫)…종옥(鍾玉)떠나기전에 관악(관악(冠岳))에 대한 전설과 사적이라도 들추어보라는 권고도 잇섯스나 나는 차라리 한 장의 생생한 홉지(흡지(吸紙))가 되어서 전연 백지(백지(白紙))의 상태에서 관악이 주는 ..

[20241107]백범 김구선생 안양 방문(자유신문 1947. 8.19일자)

2024.11.07/ #아카이브 #옛신문 #기록/ 1947.08.19일자 자유신문에 게제된 뱍범 김구 선생 안양 방문 단신. 김구 선생이 1947년 8월 16일 정오경 비서를 대동하여 경성기독보육원(현 안양2동 좋은집)을 방문하여 100여 원아들의 양육상황을 살펴보고 오후5시경 귀경했다고 한다.한편 김구 선생은 광복 직후인 1946년 4월 5일 한식일에 안양 관양1동 329-1에 안동김씨 대종친회 문영공(휘 恂:충렬공 3째 아드님) 산소에 참배하러 방문했다. 현재 관양동 문영공파 묘역에는 김구선생이 다녀가신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20240202]1988년 안양전자 위장이전 철회 투쟁 사건

2024.02.02/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전자 #노동 #여성 #since1988/ 1988년 안양을 뜨겁게 안양전자 위장이전 철회 투쟁 사건. 안양전자 여성노동자들이 안양 삼원극장옆 삼원빌딩에 있던 안양전자 사무실을 장기 점거하는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극한의 삶을 살았고 안양잔다 농성은 지역노동계의 지지와 연대 투쟁을 이끌어냈다. 1987년 “흩어지면 노예 되고 뭉치면 인간 된다”고 외치면서 근로자도 인간임을 선언했던 노동자들은 88년 접어들면서 놀라운 의식의 각성을 보인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던 절규에서 “노동자가 주인이다. 주인답게 살아보자”는 구호로 바뀐다. 1987년 8월에 안양지역 최초로 총파업을 전개했던 19개 택시노동자들은 88년 4월 4일 노조탄압에 맞서 다시 총파업을 실시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