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13

[20220215]안양천 대보름축제의 일탈과 재미와 낭만 모두 사라졌다.

2022.02.15/ #안양 #대보름축제 #응답하라 #안양천/ 불장난이 유일하게 허용된 대보름의 일탈과 흥겨움과 재미, 낭만이 사라졌다. 안양천에서는 15여년전부터 수도권 최대 규모의 대보름축제가 매년 열렸다. 사진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안양천 박석교 다리밑에서 열린 대보름축제 행사장의 모습들이다. 아래 링크시킨 사진첩과 기사에는 당시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이젠 추억이 되고 있다. 안양천대보름축제는 안양의 구도심 만안구에 자리한 안양천을 통해 잃어버린 전통과 사라져 가는 공동체 문화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문화예술단체인 안양민예총 주최로 처음 시작된 대보름축제는 '어린이들과 아빠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 도시민이 정주의식을 갖는 전통문화 축제'로 입소문나면서 해마다 5천~1만여명..

[20220212]1960년대 안양 평촌에서 가장 컷던 귀인마을

2022.02.12/ #기록 #기억 #아카이브 #옛사진 #안양 #평촌 #귀인 #응답하라1960/ 1960년대의 안양 귀인(貴仁) 지금은 거대한 아파트 군락이 들어선 평촌신도시, 과거 넓은 들판에서 농사를 짓던 70-80년대 이전에는 평촌벌에 농사용 물을 대주던 저수지(방축)도 있었고, 벌말과 중간 간 야산자락에는 마을들이 있었다. 현 평촌동(坪村洞)에는 민배기와 벌말 현 평안동(達安洞)에는 달안이 현 귀인동(貴仁洞)에는 귀인 현 신촌동(新村洞)에는 신말 현 갈산동(葛山洞)에는 당살미와 뒷말 그리고 갈미가 있었다. 귀인동 : 귀인(貴仁) 신말(新村) 동쪽으로 온양 정씨가 배판한 마을이다. 조선시대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갈 때 이 마을에 들려 머물다 갔다고 하여 귀인(貴仁)이란 지..

[20220209]1960년대 안양 평촌_ 초가집이 대부분이던 민배기와 벌말

2022.02.09/ #기록 #기억 #아카이브 #옛사진 #안양 #평촌 #벌말 #민배기 #응답하라1960/ 1960년대의 안양 평촌동_벌말(坪村)과 민배기(禿朴只, 民伯洞). 안양 평촌동은 인덕원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과거 민배기와 벌말 지역이다. 평촌동 : 민배기(禿朴只, 民伯洞) 삼태기처럼 오목하게 생긴 마을로 벌말과 갈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 과천.인덕원. 갈미 등은 관아와 원(院)이 있어 지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데 반해, 이곳은 좀 외진 곳이다. 서울과 삼남지방을 왕래하는 행려자들이 날이 저물면 민박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부터 이 마을을 민박이(民伯洞)라 했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민배기(民伯洞)로 불리웠다.. 정조의 에는 독박지(朴只)로 기술되어 잇는데, 이는 민배기를 한자 화한..

[20220121]1920년대 안양4동에 있던 안양우편소 건물

2022.01.20/ #안양 #기록 #sine1920 #안양우체국 #안양우편소 #응답하라/192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안양우체국 최초의 건물로 현재의 안양4동우체국 자리 또는 그 주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촬영자가 불분명한 1920년대 찍은 이 엽서 사진은 안양시청 공보실에서 사진을 담당했던 이정범 선생이 현재 갖고 있다. 기록을 보면 일제 강점기때인 1915년 7월1일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에 있던 안산우편소를 1920년대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로 이전하면서 안양우편소로 업무를 시작하였는데 그때의 안양우편소 위치가 지금의 안양4동우체국 주변이 아닐까 추정된다는것. 그후 안양우체국(현 서안양우체국)은 안양5동으로 이전하여 업무를 지속하다 1990년대 평촌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동안구 달안동에 우체국..

[20220105]1970년대 중반의 안양역과 변천과정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응답하라 #안양 #안양역 #기차 #광장 #역전/ 전철역이 생긴 이후의 모습으로 보아 1970년대 후반 무렵의 안양역사와 그 앞의 풍경으로 보이는데 역사 출입문 앞 과정에 시계탑이 있네요. 80년대 후반까지 존재했던 이 시계탑은 누군가를 만나는 약속 장소로의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사진 등 과거 기록을 보면 안양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더불어 기와를 얹은 형태의 자그마한 역사가 설치된 이후 현재까지 서너차례 중개축 및 신축을 통해 현재의 대형 역사를 갖추었지요. 안양역은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자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합니다. 부연하면 경부선 1구간 역 중 하서면 안양리에 개설된 역사의 명칭이 공교롭게도 하서역도 명학역도 아닌 안양역으로 결정된 것이지요. ..

[20211020]1970년대 안양천 기독보육원앞 줄배

2021.10.20/ #응답하라 #1970년대 #안양 #양명고 #안양천 #줄배/ 1970년대 초 안양천 안양2동 만안초교앞 구도로에서 망해암(양명고쪽) 및 기독보육원(현 좋은집), 삼영농장, 안양유원지 지름길쪽으로 가기위해 건너던 줄배입니다. 당시 안양천에는 물이 많았답니다, 이 배가 운행되던 곳은 현재의 양명고앞인데 먼길을 돌아다녀야 했던 주민들과 여름철에는 안양유원지로 가고자 하는 이들이 이배를 타고 건너가기도 했지요. 이후 1970년대 중반에는 안양2동 토박이 김귀연 전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장 부친께서 나무다리를 놓아 양명고 학생들의 통학을 위해 애쓰셨지요. 평소에는 나무다리라도 건너 등하교를 할 수 있었지만 여름철 비라도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다리가 잠기거나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면 비산동 임곡..

[20211017]전술핵 보관했던 안양 박달 군용지의 1968년 풍경

2021.10.17/ 한국에 전술핵이 있던 안양 박달동 군용지의 1968년 풍경. #안양 #기록 #기억 #미군부대 #주한미군 #83병기대대 #역사 #전술핵 #닐미샬로프/ 안양시 박달2동 삼봉천을 따라 수리산 골짜기 안쪽은 그야말로 산에 둘러싸인 분지같은 곳으로 이곳을 군용지라 부르는데 사진들은 1968-69년 군용지를 관리랬던 석수동 미군 83병기대대에 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거 남긴 기록이다. 박달군용지는 산악 분지형에 보안 및 방호에 유리하고 시설 배치에 필요한 공간 확보는 물론 주둔지로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지역이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에 이곳에는 모두 12개의 자연 취락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평양육군병기차 안양분창' 시설을 조성하기 위해 1941년 일본 육군성에 의해 군용지로 ..

[20211014]1995년 안양역과 내고장 담배 구입 홍보전

2021.10.14/ #안양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역 #sine1995/ 안양역과 안양시 공무원들의 내고장 담배구입 홍보전/ 1995년의 안양역 풍경으로 안양시 공무원들의 내고장 담배를 구입해 달라는 홍보전이 이색적이다. 이는 담배 판매로 부과되는 ‘담배소비세’가 지방자치단체의 세수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담배소비세는 지방자치제 시행을 앞둔 지난 1989년부터 지방세로 이양됐다. 각 시·군의 ‘알짜’ 재정수입이다. 이 때문에 시·군마다 앞다퉈 내고장 담배사기 운동을 전개했다. ‘내고장에서 담배를 구입하면 시세(市稅) 460원이 내고장 발전을 위해 쓰여진다’는 '내가 산 안양담배 복지안양 꽃피운다' 등 담배소비 권장(?) 현수막까지 버젓이 내걸고 홍보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