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770

[20260912]1959년 준공 안양성당과 성토마스아퀴나스학생회

2026.09.12/ #아카이브 #기록 #옛사진 #안양 #중앙성당 #안양천주교회 #since1959/ 천주교수원교구 안양교구(안양대리구)에 속한 안양성당(중앙성당)의 성토마스아퀴나스학생회 기념사진으로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찾아낸 기록이다.사진 찍은 날이 1959년 11월29일로 중앙에 구천우(요셉) 초대주임신부님과 신부남이 키우셨던 쉐퍼드견이 함께했다.안양시 원도심 한복판인 안양4동에 자리한 안양 중앙성당은 1954년 설립된 오랜 역사를 지닌 공간으로 시진속 고딕식 형태의 목조성당은 1959년 새롭게 완공된 두번째 성당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의 노후화로 안전문제가 생기자 1991년 아름답던 성당을 철거하고 세번째의 새 성당을 2004년 완공했다,안양지역 신앙의 역사는 박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60911]안양 만안구 중앙로에 1970년대 있던 홍보용 아치

2026.02.07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 #since1970/ 안양 원도심인 만안구 안양4동(도로 좌측)과 안양1동(도로 우측) 주변의 1970년대 모습으로 시정 홍보용 아치를 중심으로 중앙로 주변이 풍광이 담겨있는 이 사진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찾아낸 기록물로 안양상공회의서가 제공한 사료다.(원본보기 https://archive.history.go.kr/image/viewer.do?gid=DKI012_06_01&catalogId=DKI012_06_01V0000_040)사진 위쪽이 석수동 방향이고 사진 아래쪽이 안양우체국 사거리 방향이다. 홍보용 아치 왼쪽이 중앙시장 방향이고, 오른쪽이 일번가방향이다. 사진 왼쪽 아치 아래 중앙지하도상가 출입구가 보이고 만옆 건물에 서울치과, 양산부..

[20260911]한국전쟁, 안양을 통과해 북진하는 미군(1950.09.19)

2026.09.10/ #아카이브 #기록 #역사 #안양 #한국전쟁 #since1950/ 1950년 9월19일 경기 안양을 지나는 1번국도 길을 걷는 미군병사들.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중인 기록물로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발견함.한국전쟁사를 들여다보면 1950년 9월의 안양은 유엔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의 주도로 감행된 인천상륙작전(9월 15일) 성공 이후 유엔군과 미군이 서울 수복(9월 28일)과 북진을 위해 통과하고 진격했던 주요 이동로였기에 사진속 장면은 1번국도를 따라 안양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미군 병사들로 추정된다.

[20260908]1970년대 유일했던 안양목욕탕앞 골목 포장공사

2026.09.08./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since1970/1970년대 안양시 안양1동 뒷 골목 포장공사 모습으로 현재 지도로 볼 때 장내로 139번길 입구이다. 이 사진은 안야시청 홍보실에 근무하며 행사및 도시 모습을 기록했던 이정범 선생이 보관해온 기록으로 원본에는 시선이 흔란스러울 정도의 전깃줄 등과 함께 간판 글씨들이 불명확하기에 AI 도움을 받아 이를 선명하게 보정했다. 대동문고가 지하에 자리한 안양 본빌딩(미륵당-용화사-본백화점)에서 안양일번가 들어가는 골목인 장내로 139번길에는 안양읍내에 하나밖에 없던 안양목욕탕이 있었는데 사진 우측에 목욕탕 굴뚝이 보인다. 당시 안양목욕탕은 남녀 탕을 벽으로 구한 단층이었다. 천장은 욕탕의 수증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구멍이 숭숭 뚫린 격자무..

[20260905]일제강점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수록 안양사 귀부

2026.09.05/ #문화재 #안양사귀부 #삼성산/ 일제강점기 조사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수록된 삼성산 능선에 있을 당시의 귀부 기록이다, 현재 안양사 대웅전 앞에 있어 안양사 귀부로 불리우며 높이 1m, 길이 3m, 너비 2.18m. 1980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본래는 안양사 뒷산의 일명 거북골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었으나, 지금은 안양사 법당 앞에 옮겨져 있는 이 탑비는 비신(碑身)과 이수(螭首)가 없어지고 귀부만이 남아 있는데, 지대(地臺)는 몇 개의 장대석(長臺石)으로 구축되어 있고, 굄대와 귀부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안양사 귀부는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귀부 주변으로 돌난간을 둘렀으며, 비좌 상부에는 빗물이 비신..

[20260905]1960년대 관악산 정상과 아래로 보이는 한강 유역

2026.09.05./ #항공사진 #기록 #관악산/ 1960년대 관악산 정상(1967.04.27)모습까지 기록한 항공사진으로 관악구청 보관 사료로 추정된다. 멀리 한강이 조망되고 산 아래로 국립현충원, 동작동, 사당동, 방배동 시가지 모습이 보인다, 출처: 관악산,삼성산 기암괴석카페(우락산)https://m.cafe.daum.net/yoo9146/cazi/14?listURI=%2Fyoo9146%2Fcazi

[20260905]1950년대 고무신에 흰저고리 여성들 관악산 탐승

2026.09.05/ #아카이브 #기록 #옛사진 #since1950 #연주암/ 30-40대로 추정되는 여성 8명이 고무신에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관악산 탐승길에 올라 절벽 끝자락에 있는 연주암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단한 여성들이다.관악산은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五岳)에 속했던 산으로,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고 했다. 관악산은 빼어난 수십 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고, 오래 된 나무와 온갖 풍이 바위와 어우려서 철따라 변하는 산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西..

[20260904]1960년대 재봉틀 선물받은 안양여고 운동장 풍경

2026.09.04/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여고 #재봉틀 #since1960/ 재봉톨 1960년대 어느날 재봉틀을 선물 받은듯 안양여고 운동장에 선생님(재봉틀 왼쪽의 남성이 김완종 초대 교장선생님이디)과 학생들이 모여 기념사진을찍었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발견한 기록물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원본: https://archive.history.go.kr/image/viewer.do?catalogId=DKI012_02_01V0000_013)안양여고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면 주식회사 대림산업을 모기업으로 하고 있는 학교법인 대림대학 산하 명문 사립학교로 1960년 4월 11일 개교한 안양지역 여성교육의 효시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졸업생중에는 3회 김명자(안양시 최초 여성국장), 9회 김영..

[20260902]1967년 겨울 안양여고 난로의 양은도시락과 뜨게질

2026.09.03./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since1967 #추억 #안양여고 #난로 #양은도시락/ 1967년 겨울철 안양여고 교실 모습으로 난로 위에 양은도시락을 올려 따뜻하게 데우고 난로 주변에서 뜨게질을 하는 연출된 장면이 담겼지만 지금은 불수 없는 과거의 정겨운 풍경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발견한 기록물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원본: https://archive.history.go.kr/image/viewer.do?catalogId=DKI012_02_01V0000_015)교실 한가운데 놓여있는 난로는 추운 겨울에 교실을 따뜻하게도 했지만, 차가워진 도시락을 데워 먹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조개탄으로 난로를 피우고 2교시쯤 되면 난로가 뜨겁게 달궈지고 학생들은 집에서 가져온..

[20260902]시흥군 축구대회 제일회 우승기념(1960.10.27)

2026.09.02/ #아카이브 #옛사진 #안양 #축구 #since1960/ 시흥군 축구대회 제일회 우승 기념사진으로 안양시문인협회 장호수 사무국장이 故 김대규시인이 남긴 책과 기록들을 정리하던중 발견한 사료다. 김대규시인의 모습을 사진속에서 발견할수 있는데 앞줄 좌측에서 세번째 인물이다.사진 하단에 단기 "4290년 10월27일 시흥군 축구대회 제일회 우승기념"으로 표기돼 있으나 제일회가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며 유니폼의 안양과 함께 쓰인 영문 B이니셜도 궁금한 사안이다.한편 정확히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지만 안양은 축구로 유명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안양 축구의 역사는 무려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저력을 과시할 만한 도시였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이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