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593

[20240131]1972년에 찍은 안양소년원 모습

2024,01,31/ #아카이브 #안양소년원 #since1972 #법무부 #석수동/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자리한 안양소년원서의 1972년 사진으로 국가기록원에 보존돼 있는 기록이다. 국가기록원에 보존된 안양 관련 사진중 1972년의 공공시설과 공장 등 사진이 많은걸 볼때 당시 정부차원에서 기록을 집중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안양소년원은 비행청소년의 재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대한민국 법무부 산하에 설치된 여자 청소년 전용 기관으로 공식 명칭은 정심여자중고등학교이며 안양시 만안구 삼막로96길 11에 있다.

[20240129]안양읍사무소 직원 청계저수지 야유회(1963년)

2024.01.29/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청계저수지 #백운호수 #since1963/ 안양읍사무소직원(공무원)들의 1963년 청계저수지 야유회 기념사진으로 안양시사(공공기관 제5장)에 수록된 기록이다. 사진 설명으로 표기된 청계저수지는 현재의 백운호수를 말한다. 청계저수지는 1956년 준공되었으며 시흥군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1973년)할 무렵인 1970년때까지만 하더라도 안양 청계저수지라 불리웠고 신문 등에도 표기되었다. 청계저수지는 시흥군 남면이 의왕읍이 된 이후부터 의왕 백운저수지로 불리웠으며 평촌신도시가 조성되고 저수지 기능이 사라진 90년대 이후부터는 백운호수라 불리웠다.

[20240129]의왕 백운저수지 통수식 장면(1956년)

2024.01.29./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역사 #의왕 #백운호수 #백운저수지 #since1956/ 백운저수지(현 백운호수) 물을 처음 내보내는 통수식 장면이다. 백운호수는 1951년부터 만들기 시작해 1956년 완공(일부 기록에 1953년 준공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1956년이 맞다)한 저수지다. 동네 주민들이 청계저수지라 불렀던 백운저수지는 1990년대 무렵부터는 백운호수라 불리웠다. 사진에 외국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백운저수지가 유엔한국재건단(UNKRA), 미 경제조정관실(OEC), 농림부가 합동으로 지원하여 준공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백운저수지는 원래 농어촌정비법에 의한 농업기반시설로 안양과 평촌 지역의 농업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안양 평촌 지역의 산업화 도시화로 농지가 사라져 지금은 ..

[20240127]1966년 안양읍내 모습 기록된 항공사진

2014.01.27/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항공사진 #안양 #기억 #역사 #안양읍 #원도심 #동네 #골목 #수리산 #장내동성당 #중앙교회 #고려석면 #시흥군청 #시흥군도서관 #시흥군청 #읍민관 #snce1966년/ 1966년 1월에 찍은 안양 원도심(현 안양4동과 3동 일대)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안양시가 2009년 10월에 개최했던 안양시옛사진전에 전시했던 사진으로 펴낸 사집에 실린 기록이다. 과거 안양읍 시절의 옛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으로 안양 최초의 항공사진이 아닐까 싶다. 멀리 흰눈에 덮인 수리산을 배경으로 한 사진속에는 시흥군청사거리(현 벽산사거리)과 중앙로를 중심으로 안양4동(읍민관, 시흥군도서관, 고려석면, 장내동성당. 중앙교회) 안양1동(시흥군청과 시훙군교욱청), 안양3..

[20240126]1970년 안양을 방문한 육영수와 안양시민들

2024.01.26/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 #육영수 #since1970/ 양지회 지원으로 마련한 안양어린이도서관 현판식에 참석하기 위해 안양을 찾은 육영수여사와 안양시민들의 모습이다. 국가기록원인 성남나라기록원에 영구보존돼 있는 기록물로 정부 공보처 홍보국에서 1970.04.29일 촬영했다. 국가기록원이 명기한 사진 설명에 양지회 어린이도서관 앞이라 명기되어 있는데 생각했던 안양4동 읍민관앞이 아니다. 뒤에 보이는 산이 망해암 산자락이고, 오른쪽 뒤로 공장 굴뚝(한국제지)이 보이는걸 볼때 사진 중간집들뒤로 경부선 철길과 1번국도가 지나가는 안양2동(현 안양역세권 재개발지역)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양지회 안양어린이도서관이 들어선 건물은 과거 시흥군도서관과 안양문화원이 자리했던 공간(안양2동..

[20240125]안양어린이도서관 현판식과 육영수 여사(1970)

2024.01.25/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 #육영수 #since1970/ 양지회 지원으로 마련한 안양어린이도서관 현판식에 참석한 육영수여사, 국가기록원인 성남나라기록원에 영구보존돼 있는 기록물로 정부 공보처 홍보국에서 1970.04.29일 촬영했다. 사진을 보면 건물 외벽에 읍민관이라 적혀 있다, 또 현관앞에는 재건국민운동시흥군위원회라 적힌 나무 현판도 보인다. 어린이도서관이 마련된곳이 안양 장래동(현 안양4동)에 있던 읍민관(현 얀양빌딩.1층에 다이소 자리)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욱영수 여사가 안양시민들과 함께 있는 동네풍경이 보이는 다른 사진을 분석한 결과 아니었다. 최초의 안양 읍민관은 1950년대 안양 장내동(현 안양4동)에 생겼다. 이곳에서는 8.15광복절, 궐기대회 등 당시 시흥군과..

[20240124]의왕에 있는 한국나병연구원과 오전리(1976년)

2024.01.24/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의왕 #한국나병연구원 #since1976/ 성라자로마을 입구인 경기도 시흥군 의왕면 오전리 산87)에 세워진 한국나병연구원의 초창기 모습이다. 한국나병연구원은 1928년 4월 6일 조선나병근절책 연구회 발족을 시작으로 그 첫발을 내딛은 사단법인 대한나협회를 모태로 하여 1976년 6월 22일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 한센병에 대한 완전한 퇴치와 한센병 환자의 재활을 위한 진료 및 연구를 확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본 연구소는 신환자 조기 발견과 한센인에 대한 양질의 전문의료서비스, 한센병 진단 및 최신 치료방법 개발 등을 주 임무로 하고 있으며, 1982년 4월 1일에는 대한나협회로 흡수 통합되어 한센인에 대한 보다 전인적인 보건복지의료서비스를 제공하..

[20240122]의왕 고천공립심상소학교 조회광경(1939.03)

2024.01.22./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역사 #의왕 since1939/ 일제강점기 당시 고천공립심상소학교(현 고천초등학교) 조회광경으로 이 사진은 의왕문화원 발행한 [고천동.오전동 사진으로 기륵하다] 15페이지에 실린 기록이다. 고천공립심상소학교(현 고천초등학교)는 의왕 최초의 공립학교로 일제강점기 의왕지역 초등 교육기관 가운데 유일한 정규학교였다. 1930년대에 들어와 조선총독부는 ‘일면일교제(一面一校制)' 정책을 펼쳤다. 의왕면 주민들은 1935년부터 공립보통학교를 설치하고자 보통학교 기성회를 조직하 고 기부금을 모집하였다. 기성회의 요청에 따라 조선총독부(경기도)는 1936년 10월 30일자로 고천공립보통학교 설립을 인가했다. 1936년 11월 15일 개교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12월 ..

[20240120]육영수여사, 성라자로마을 예수상 제막(1971)

2024.01.18/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성라자로마을 #의왕 #since1971/ 의왕에 자리한 성라자로마을에서 1971년 7월23일에 있었던 예수상 제막식으로 육영수여사가 노기남 대주교와 함께 제막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육영수 여사는 성라자로마을의 정결의 집 건축비를 지원하는 는 등 큰 후원자였다. ‘정결의 집’은 70년대 초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 집은 육영수 여사가 보낸 성금 450만 원으로 지어졌다. 육 여사는 성 라자로 마을 환우들이 이발과 목욕 한 번 제대로 해보는 게 소원이라는 신문 기사를 읽고 건축비를 지원했다고 한다. 단층(건평 12평)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이경재 신부가 제7대 원장으로 재 부임하여 지은 첫 현대식 건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정결의집’은 ..

[20240119]성라자로마을 의무부 라자니신부와 아이들(1950년대)

2024.01.18/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성라자로마을 #의왕 #since1950/ 의왕에 자리한 성라자로마을의 10950년대 사진으로 의무부 라자니 신부님과 아이들 모습이 담겨있다. 성 라자로마을은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원골로 66)에 위치한 천주교 최초의 구라사업 기관으로 1950년 6월 2일에 설립되었다. 1945년 광복 후 서울 근교의 유랑 나환자들에 대한 구호 및 의료사업의 필요성을 느낀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의 캐롤(Carroll,G.) 주교가 1950년 6월 부천군 오류동에 성라자로원을 개원하였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그 활동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으로 약 8,000명에 달하던 나환자들이 수용소에서 풀려나 극도의 빈곤과 질병에 버려지자, 캐롤 주교는 1951년 경기도 화성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