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자료 337

[20221210]1940년대 안양 시대상을 담은 채만식의 '안양복거기' 전문

소설 『탁류(濁流)』로 유명한 채만식의 수필 ‘안양복거기’에는 1940년대 안양의 모습이 세밀하게 담겨져 있다. 저작권 보호만료로 전문이 공개된 안양복거기를 통해 과거 안양속으로 들어가볼까 한다. 이 ‘안양복거기’ 전문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것이 문학작품이어서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특히 안양과 관련된 생활사 연구의 자료적 가치와 더불어 문화 유산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채민식은 1940년에 인천 송도에서 ‘양지말’(현 안양 3동)로 이사를 와 작품활동을 하다가 1946년에 낙향(이리)하여 4년간의 폐결핵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안양복거기’는 그가 새롭게 삶의 터전으로 삼게 된 ‘안양의 인상기’라 할 수 있는데, 아주 긴 편지 형식의 글로 매일신보에 연재한바 있다. ‘P형’에게 보내는 ‘..

[20221121]2021년 안양천 생태모니터링 자료(안양군포의왕환경련)

안양군포의왕환경운동연합에서 2021년 안양천 생태모니터링 보고서 ‘안양천을 걸어요’ 책자와 모바일용 전자책을 발간했습니다. 1990년대 오염된 하천으로 알려진 안양천을 살리려고 1999년에 인근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이 모여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식물과 곤충, 새, 물고기 등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형 하천으로 변화했습니다. 깨끗해진 안양천이 되어 흐른 지 2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안양천은 도시의 녹지공간으로, 생태통로로, 또한 시민들에게는 충분한 휴식처로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종 시설물의 설치, 하천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 기후변화에 의한 생물종의 변화가 있어 모니터링의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안양군포의왕환경운동연합은 안양천이 흐르는 상류와 중류 그리..

[20221117]안양6동 옛 검역원 정원에 있던 축혼비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중앙로변에 자리했던 농림축산검역본부. 안양지역민들에게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란 명칭으로 더 친숙한 곳으로 지금은 안양시 땅이지만 시가 어떤 공간으로 활용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아 빈 공간이다. 이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물의 앞마당 화단에 세워져 있던 축혼비(농림축산검역본부가 김천으로 이전하면서 가져갔다) 부터 이해해야 한다. “열 목숨 얻기 위해 한 목숨 바친 그대 희생 빛내리. 넋이여 고히 잠드소서. 1969년 10월 20일” 인간의 안전한 식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동물을 대상으로 갖가지 실험을 한다. 결국 이 동물들의 생명을 끊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시설에서 희생된 동물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 꽃 피는 철에는 붉은꽃으로 에워싸이는 화단은 어찌..

[최병렬]기록으로 안양천 톺아보기-PDF파일(2022.11.06)

2022.10.04/ #안양천 #문화도시 #안양문화예재단/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안양의 문화도시 사업으로 ‘내가 만들고 가꾸는 PLAY CITY’를 실현하기 위해 마련한 ‘안양천, 요즘 어때요?’ ‘안양천, 요즘 어때요?’는 안양천 유역 생태계와 역사-문화를 함께 알아보고 시민 개개인의 경험을 공유하며 안양천의 놀이 문화 조성을 함께 모색하는 활동으로 총 7회에 걸쳐 ▶안양천의 역사와 문화 ▶수변문화 활성화 사례 공유특강 ▶안양천의 다양한 활동조사 발표 ▶활동 제안 워크숍 등 교육과 라운드 테이블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중 안양천 톺아보기는 안양천의 약사와 문화 등 이해를 돕기위해 지난 10월 4일 실시한 한 강의로 PPT내용을 PDF로 변환한 자료다.

[최승원]1824년 채제공이 쓴 時文 안양교행/安養橋行(20221025)

채제공(蔡濟恭1720-1799)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 인물이다. 이황(李滉), 정구(鄭逑), 허목(許穆), 이익(李瀷)을 이은 청남(淸南)의 영수로서, 노소론 당쟁의 와중에서 탕평을 표방한 영조와 정조의 신임을 받았다. 특히 사도세자의 보호에 앞장선 것이 인정되어 정조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오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신해통공, 이조 전랑 통청권(通淸權) 혁파, 수원 성역(城役) 등 개혁 정책을 실행하였다. 안양교행(安養橋行)은 조선 후기의 문신 채제공(蔡濟恭)이 1824년 쓴 시문집인 《번암집》에 실린 글로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에 전배할 때 건너기 편리하게 하고자 197..

[최승원]일제강점기 안양시 시회(詩會)자료 관양음사욕란첩(20221024)

안양시 시회(詩會)자료 일제강점기에도 전통적인 의미의 시회(詩會)는 지속되고 있었다. 지역사회에서의 詩會는 일제강점기 전통적인 식자층의 지식인으로서의 위상을 사회를 통해 확인하는 기제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전주류씨가 소장자료에는 [관양음사욕란첩冠陽吟社浴蘭帖](6-137, 8-4)이라는 25장으로 된 시집이 남아있다. 이 자료는 일제강점기의 안양의 詩會를 조명할 수 있는 중요 자료로 평가된다. 이 시집은 관양음사(冠陽吟社)에서 펴낸 것이다. 서문은 1925년 단오(端午) 5일전 즉4월30일에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1858~1936)가 지었다. 이왕직(李王職) 전사 (典祀)로 재임하던 정만조는 서문에서 “나 또한 관양인(冠陽人)으로 선묘(先墓)가 있고 병사(丙舍:산소 곁에 지어놓은 齋..

[최병렬]서울-안양 잇던 1번 국도의 안양천 다리 안양교(20221023)

2022.10.23/ #도시기록 #안양천 #안양교 #교량/ 과거 서울에서 안양으로 진입하던 1번국도의 안양천을 건너던 교량이다 첫 다리가 놓여진 시점은 모르나 1960년대 사진에 나오는 안양교 다리를 보면 왕복 2차선으로 폭이 좁았다. 현재의 다리는 4차선으로 1986년 확장공사를 통해 다리를 새로 놓았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터넷에서 안양교 검색을 하면 이름과 달리 서울시 구로구와 광명시 철산동을 잇는 다리로 표시된다. 이 다리는 확장 전인 2016년부터 교량 명칭을 사성교로 변경했지만 2022년 현재도 교통정보 등을 통해 관습적으로 안양교로 부르고 있다.

[20220910]1960년대 명절에 최고 인기 선물은 설탕

2022.09.10/ #추석 #선물 #옛신문보기/ 1960년대 추석 선물로는 설탕이 인기 품목. 특히 설탕이 들은 케이스가 양철로 만든 쇠통이었는데 털실이나 반짓고리 등 생활속 물건들울 보관하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 내용물보다 케이스가 더 인기였음.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곧 다가옵니다. 설과 추석 같은 명절에는 가족 및 가까운 사람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이들에게 선물을 보내곤 하죠. 하다못해 회사에서는 ‘스팸’이나 ‘올리브유’라도 받고요. 그런데 이런 선물들, 언제부터 시작됐으며, 예전에는 어떤 선물들을 주고받았을까요?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설이면 그림을 담당하는 관청인 도화서에서 부적 역할을 하는 그림 세화(歲畵)를 임금..

[20220820]경기도 도시이야기 안양편-최병렬(경기문화재단)

지난 2월 어느날 인천일보에 근무했던 이동화기자로 부터 연락이 왔다. 경기문화재단이 빌행한 책(경기도 도시이야기 경기그레이트북스 30)에 내 이야기도 실려있다면서 책자와 관련 내용의 페이지를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이 책을의 글을 쓴 사람은 세사람(양훈도, 이동화, 김예옥)인데 그중 한명과 인터뷰한 기억이 없어 안양지역정보뱅크(지금은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에 올린 글들을 편집해 안양에 대한 이야기를 게제한듯 싶었으나 2020년 가을 무렵 2시간 여 인터뷰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당시 저를 인터뷰한 김예옥님이 2022.08.25일 전화를 걸어 알려주어서 알게됐다. 또한 책자를 보내려 했으나 연락이 안돼 보내지 못했다며 보내준다고하여 주소를 알려드렸다. 왜 인터뷰했던 기억이 없지 의아해 했던..

[최병렬]광복절 77주년에 꺼내본 조선동립 버클(20220815)

2022.08.15/ #광복 #골동품 #동립만세 #버클/ 광복절 77주년을 맞아 다시 꺼내보는 옛 물건. 1945년 조선독립을 기념해 만든 허리띠 버클인 듯. 독립의 기쁨을 전부 담아도 부족한듯 그 크기가 무척이나 크답니다. 크기를 재보니 가로 69mmm 세로 44mm, 허리띠 통과 지름 38mm이네요. 물론 제가 사용한 것은 아니고,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줏어놓은(수집) 물건이랍니다. 언제 제작한 것인지 궁금.. 아시는 분 계세요? 특이한 것은 조선 독립을 동립으로 표현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