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47년 나혜석이 머물렀던 안양 기독보육원 농막

안양똑딱이 2016. 7. 14. 18:56

 

#안양 #나혜석 #경성기독보육원 #안양기독보육원 #좋은집/ 여류화가 나혜석은 말년에 시흥군 안양읍에 있던 경성기독보육원에 머물렀다. 그녀가 안양에 살았던 흔적을 찾고 있는 안양출신의 원로건축사 최승원 선생님은 2015년 11월 안양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마련한 '원로에게 듣는다-안양지역근대건축' 편에서 대부분의 기록을 보면 나혜석이 말년에 행려병자 처럼 살다 죽었다고 되어있으나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승원]
보육원이 있는 경기도시흥군 안양은 혜석의 부친이 2번군수를 지낸지역이라 부친의 영향이 남어있고, 나경석의 친구 이운형이 경성보육원에서 중요직을 하고 있었다.
보육원농장 주변에 만주에서 나경석이 경영하던 민청공사일원으로 만주에 농사지으러갔던 노인의 아들 김서방이 살고있어 혜석이 마음 놓이는 편안한 장소 安養이다.
6.25전쟁시에는 경석의 두딸 사위가 다락있는 농가에서 피난생활을 한다. 보육원에서 농사짓는 일을 하던 김서방집 건너방이 나혜석이 머물던 집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이 시기 오빠의 친구이며 지인인 춘원이광수가 서울근교에 들어가 땅을사고 소를 사서 농사를 짖는 생활에 영향을 받었을 것이다.
보육원에서 안양초교까지는 멀어서 초급과정은 원에서 교육하였기에 미술지도에 울타리가 되었을 거이다.
경성보육원설립자 오긍선박사는 보육원에 농업학교 설립을 하려고 하였다.
1945년 해방전 안양경성보육원에서 자원봉사 하였던 박인경은 1947년 농막에서 혜석을 보고 반듯했다고 ...그림도 가지고 있었고, 원고도 쓰고 있었다고 한다.
말년을 지나치게 비참하게 몰고가는 사례를 지향하고 밤나무와 포도나무가 즐비한 이것이 최적의 요양지로 보아야한다.
그녀가 중년에 생각한대로 옛일을 반추하고 정리하면서 글을쓰면서 기차로 서울다녀오기 편하여 공기좋은 한유閑遊한 농막에서 노후를 지낸곳이다.
사진후면 미루나무 아래집이 경성보육원 농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