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70년대 안양 구시장과 태평방직 정문앞 풍경

안양똑딱이 2016. 7. 14. 18:47

 

#안양 #동네 #골목 #옛사진 #안양1동 #구시장 #수푸루지 #임곡교 #안양천 #시대동 #태평방직/ 1920~1960년대 말까지 안양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구시장이라 불리우던 시대동(市垈洞) - 현 안양1동의 1970년대 풍경으로 사진 중앙 리어카(두사람) 우측으로 태평방직 정문이 있고 담벼락을 따라 이어진 도로끝에는 비산동으로 연결되는 수푸루지 다리(현 임곡교)가 있지요.
태평방직은 안양3동의 금성방직(대농)의 자회사로 어렷을적 공장내에 연못과 대형온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구시장(안양시장)은 1926년 1월 28일로 개시됐는데 호계동에 있던 군포장이 쇠퇴하면서 활기를 뛰기 시작했지요. 즉 1905년 안양역이 문을 연 이후 안양이 근대도시로 서서히 꿈틀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기록을 보면 군포, 의왕, 과천, 광명, 수암, 군자등에서 이곳으로 장을 보려 올 정도로 농산물, 축산물, 포목, 일용잡화까지 거래되는 품목이 아주 다양했다고 합니다.
1929년에는 안양지방에서 전기가 최초로 송전된 곳이 이곳이며. 내년 안양씨름대회가 열려 1등에 황소1頭, 2등에 광목 1疋이 상품으로 수여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구시장은 1961년 11월 6일 안양4동에 새시장(현 중앙시장)이 조성된 이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역이 가깝고, 당시에는 과천과 말죽거리까지 가는 버스들이 이곳을 지나가 1960년대 말까지는 유동인구가 꽤 많았던 곳이지요. 
엣 지번으로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시대동 92번지 일대인 이 곳은 1997년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돼 당시 주택공사에 의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20∼25층 1천1백여가구가 입주하는 주공뜨란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과거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공장 담벼락 끝에 있던 수푸루지 다리는 당시 안양 시내에서 구시장-비산동-관양동-인덕원-청계-과천을 지나 서울 말죽거리로 연결되던 유일한 다리였지요. 현재의 다리는 매우 넓지만 과거에는 버스가 겨우 한대 지나갈 정도에 다리 난간도 없어 다리를 건너다 버스가 오면 다리 아래 하천(그때는 물이 참 많았음)로 떨어져 물에 빠지기도 했지요. 
수푸루지 다리 뒷쪽 산자락과 계곡에 보이는 마을이 수푸루지마을입니다. 수푸루지 마을 뒷산에는 현재 대림대학교가 들어섰으며 임곡1.2지구에 이어 남아 있는 동네에 대해서도 재개발사업이 추진중입니다.

태평방직에 대해 알아볼까요. 태평방직은 1953년에 자본금 1억환으로 안양읍 안양리 97번지 일대에 설립된 삼흥방직이 전신으로 당시 방기 1만추, 직기 50대를 구비하고 1954년 10월부터 생산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자금사정을 겪자 안양3동에 있는 금성방직이 1956년 5월 15일 인수하면서 안양사람들의 기억에는 태평방직을 떠올립니다.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은 1960-70년대 안양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웁니다. 당시 두 공장에만 3천여명의 여성근로자들이 일해 월급날에는 안양시내 식당과 술집이 호황을 누릴 정도로 봉급 특수가 안양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지요. 특히 충청,전라,경상도에서 상경한 여성 근로자들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형제 친척들까지 안양으로 올라오는 배경으로 인해 현재 안양에 팔도민이 골고루 분포돼 있고 타 위성도시와 달리 팔도향우회가 매우 활성화 된 것도 하나의 배경이 아닐가 싶습니다.
태평방직은 1967년 10월 금성방직과 함께 대한농산(대농)에 매각되고 한국토지금고에 의해 택지개발을 통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