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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5]100년전 영국 여성이 본 한국 설날 풍경

안양똑딱이 2025. 1. 25. 18:39

새해나들이 New Year's Shopping, Seoul, 1921 ◁ 아침수다, 함흥 A Morning Gassip, Hamheung , Korea, 1921

 

1887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에서 태어난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5년부터 일본, 한국, 중국, 필리핀 등을 여행하면서 동방을 소재로 한 수채화와 판화를 그렸고, 서양화가로는 최초로 1921년과 1934년 한양에서 두 차례에 걸처 개인전까지 열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5년 도쿄에서 근무를 하던 형부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일본 방문을 계기로 이후 일본에서 터전을 잡게 된다. 그녀는 일본 목판화에 경도되어 와타나베 소사부로의 문하에서 2년간 목판화 수업을 받았다. 한국에는 1919년 3.1 민족해방운동 직후 처음으로 방문하였는데 3개월간 머물면서 수많은 한국의 인상을 작품으로 담았다.

 

그녀는 서울, 원산, 함흥, 평양, 금강산 등지를 여행하며 본 조선의 풍경과 결혼식, 장례식, 무당의 굿판 등 조선의 풍속적인 소재를 통해 개항 이후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라져갔던 한국의 전통 문화와 풍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다양한 인물과 풍경을 담고 있는 그녀의 그림들은 마치 관광사진첩을 보는 것 같은 현장감을 재현한다. 사실적이면서도 단순화된 형태에 절제된 원색이 사용되고, 장식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것이 특징적이며 여성적 섬세함을 기초로 하여 짜임새 있는 구성과 농축된 주제의식이 돋보인다.

 

1915년부터 일본, 한국,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를 여행하면서 동양을 소재로 한 수채화와 판화 작품 활동을 했던 그녀인데, 한국에 대해 조금 더 남다른 애정을 가졌기에 1921년과 1934년에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었다.

 

키스는 경성(서울)에 머물렀다. 당시 경성의 인구는 30만 명 정도였고, 서양인을 포함한 외국인의 숫자도 극히 적어서 이들끼리는 꽤나 친하게 소통했다. 그녀는 제임스 게일 James Gale 박사와 교류하며 비교적 빠르게 조선사회에 스며들었다.

 

제임스 게일 박사는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1890년대에 한영사전을 만들기도 한 당시의 '조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키스는 게일 박사를 통해서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소개받고, 그들의 초상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게일 박사 덕분에 그녀는 평민들의 생활 모습과 더불어 조선 상류층의 모습도 직접 그려낼 수 있었다낯선 이방인 여성에게 조선사회가 친절하지 않았을 텐데도.

 

그녀는 일본이나 중국, 필리핀 등지도 여행했지만 조선에서 만큼 친밀하게 그 사회와 교류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게일 박사의 도움으로 김윤식의 초상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그녀가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방금 그 유명한 귀족 노인 김윤식 자작의 초상화를 그렸다! 주선은 게일 박사님이 해주셨다. 한 번은 제가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에는 저 노인이 궁중 복장을 입고 모델을 서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박사님께서 '만약 영국에 온 어떤 인도 화가가 저 공작부인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니 꽉 끼는 바지에 번쩍이는 장식을 달고 모델을 서주시겠습니까'라고 한다면 어떻겠소?라고 하시더군요.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결국 노령의 자작은 궁중 복장 차림으로 제 모델을 서주셨다<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 인용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의 작품들은 2006년에 와서 재미동포 송영달 선생의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연 날리는 아이들'.
엘리자베스 키스의 '아기를 업은 여인'.
일본 화가 이토 신수이가 그린 엘리자베스 키스의 초상화.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저자: 리자베스 키스,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번역: 송영달

출판: 책과함께

발행: 2020.06.10.

 

한국을 사랑한 목판화의 대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시선으로 100년 전 옛 한국(Old Korea)’을 들여다보다

 

최상의 색과 화질로 되살아난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세계적 미술관들 소장품까지 85점 총망라한 완전 복원판’. 세계적인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림을 그리고 언니 엘스펫 키스가 주로 글을 쓴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누구보다 섬세하고 진솔하게 20세기 초반 한국 사람들의 일상과 풍속을 담아냈다. 특히 그들이 처음 한국을 방문한 때는 1919 31운동이 일어난 직후로, 일제에 핍박받으면서도 가열차게 일어나 만세를 부르던 한국인들의 뜨거운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또한 여성으로서의 감수성이 그림과 그 해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번 완전 복원판은 이 올드 코리아를 완역하면서, 동시에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 수집가이자 연구자인 옮긴이 송영달 선생이 삼십여 년간 발굴한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일체와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85점을 초고화질로 디지털화하고, 작품 도록용 종이에 인쇄하여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구현했다. 또 천으로 두른 양장은 책의 품격을 한층 높인다. 특히 299쪽에 실린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는 추정한 바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초상화이자 실제 이순신 장군에 가장 가까운, 역사적인 발굴 작품이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완전 복원판) 표지

 

[출판사 서평]

 

19193월 한국 방문한 서양인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일제 감시 속에서도 한국 사람들의 일상과 풍속 진솔하게 그려

세계적 미술관들 소장 작품까지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85점 총망라

미국서 진행된 초고화질 디지털 작업으로 원본에 가까운 색과 품질 구현

 

한국을 사랑하고 존중한 두 영국인 자매의 시선으로

100년 전 옛 한국(Old Korea)’을 들여다보다

 

서양인에게 조선은 오랫동안 미지와 은둔, 금단의 나라였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시작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나서야 많은 서양인이 들어왔다. 반면 일본은 발 빠르게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했다. 서양인들은 주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를 알게 되었기에 한국은 일본보다 미개하고, 문화 후진국이며, 자치 능력도 없고, 차라리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한국인을 위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서양인 작가가 한국을 묘사한 책들도 이런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와 달리, 영국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림을 그리고 언니 엘스펫 키스가 주로 글을 쓴 책 올드 코리아(Old Korea)는 누구보다 섬세하고 진솔하게 20세기 초반 한국인의 생활 모습을 담아냈다. 특히 그들이 처음 한국을 방문한 때는 191931운동이 일어난 직후로, 일제에 핍박받으면서도 가열차게 일어나 만세를 부르던 한국인들의 뜨거운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또한 여성으로서의 감수성이 그림과 그 해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번에 도서출판 책과함께에서 선보이는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은 이 올드 코리아를 완역하면서, 동시에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 수집가이자 연구자인 옮긴이 송영달 선생이 삼십여 년간 발굴한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일체와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한국을 그린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목판화의 대가, 엘리자베스 키스

 

스코틀랜드 출생의 엘리자베스 키스(이하 키스’)는 일본에서 잡지사를 운영하던 언니 엘스펫을 따라 1915년 일본으로 가서 계속 머물다가 한국을 여행하기로 마음먹는다. 1919328일 부산에 도착한 키스는 경부선 기차 창밖으로 펼쳐진 한국의 산하, 커다란 황소에 땔감을 잔뜩 싣고 걸어가는 농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과 기와집을 보며 강렬한 창작욕을 느꼈다. 동시에 총칼을 차고 승객을 검문하는 일본 경찰의 모습에서, 한국이 일본에 점령당한 현실을 느꼈다. 이때 느낀 두 감정은 키스의 그림과 글에 고스란히 담기게 되었다.

석 달이 지나 언니 엘스펫이 일본에 돌아간 뒤에도 키스는 혼자 남아 한국의 풍경과 한국인을 쉬지 않고 그렸다. 1919년 가을 도쿄로 돌아간 키스는 미스코시 백화점 화랑에서 전시를 했는데,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그린 작품으로 전시회가 열린 것이었다. 이 전시회에 신판화 운동을 주도한 와타나베 쇼자부로(?庄三?)가 왔는데, 그는 키스에게 수채화를 일본식 목판화로 만들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며 강력히 권했다. 그 후 키스는 와타나베의 공방 장인들과 작업하면서 한국을 소재로 한 목판화를 다수 남겼고, 나중에 영국으로 돌아가서는 에칭 기법을 배워 판화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기도 했다.

19219월에는 서울은행집회소에서 키스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이는 한국 미술사상 처음으로 열린 외국인 화가의 개인 전시회였다. 1934년 서울 미쓰코시 백화점 화랑에서 두 번째 전시를 했는데 조선일보영국 여류 화가의 손으로 재현되는 조선의 향토색이라 보도했다. 이 전시회에는 서양인은 물론 일본 총독의 부인 등 일본인 고위층도 관람하러 왔다. 키스는 한국 사람도 많이 왔는데 그림 속 자신들의 모습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았으며, 한국의 노신사들이 그림을 하나하나 음미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라고 회고했다.

192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을 돌며 전시회를 연 키스는 세계적 목판화가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조지 브로크너는 주제의 선택, 접근하는 시각, 밤낮에 관계없이 현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정확히 포착해내는 힘은 오로지 키스만의 독특한 점이라고 극찬했다. 1933년 스튜디오(Studio) 미술잡지사가 판화의 대가시리즈를 출간할 때 키스를 선정하기도 했으며, 영국 박물관의 시드니 콜든은 “18세기 이후의 판화 가운데 키스의 작품에 비할 만한 작품이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오리건 대학 미술관의 바버라 젠트너는 키스가 특히 한국을 잘 그렸고, 그런 그림을 볼 때 여느 화가와는 달랐다고 평했다. 이처럼 한국 소재 그림을 가장 많이 남기고 그 작품들로 화가로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키스와 한국은 특별한 관계라 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한국의 아름다움에만 빠진 것이 아니라, 3·1 운동 당시 조선인의 저항과 일제의 탄압을 생생히 기록했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책의 가치다. 언니인 엘스펫 스콧과 함께 책의 본문을 쓴 키스는 이런 기록도 남겼다. “한국인의 자질 중에서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일본 경찰들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 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들은 초라해 보였다…. 3·1 만세운동은 놀라운 발상이었고 영웅적인 거사였다.”

3·1 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3월 28일 한국을 방문했던 키스는 1921년 서울은행집회소에서 목판화 작품을 전시했고, 1934년에는 서울 미쓰코시 백화점(지금의 신세계 본점)에서 두 번째 전시를 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영국 여류 화가의 손으로 재현되는 조선의 향토색”이라고 보도했다. 키스는 “한국인들은 그림 속 자신들의 모습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다가 하나하나 음미하기도 했다”며 “무척 기분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키스를 한국에 알린 주역 송영달 선생,

키스 작품 수집과 연구에 바친 삼십여 년을 집대성하다

 

키스가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소재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그 세계적 명성에 비해 오히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키스와 그의 작품이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키스의 작품 수집가이자 연구자인 송영달 선생의 노력이 컸다.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살아가던 그는, 미국의 어느 고서점에서 키스의 책과 작품을 발견한 뒤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우리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화폭에 아름답게 담아낸 키스에 대한 고마움과, 그럼에도 한국에 키스의 그림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안타까움이 그의 마음에 함께 자리했다.

키스를 한국에 알리려는 그의 노력은 2006올드 코리아한국어 초판(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을 펴내면서 시작되었다. 출간 직후 큰 호응과 더불어 전북도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에서 푸른 눈에 비친 옛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키스 단독 전시회를 각기 두어 달씩 열었고, KBSEBS 등에서도 특별 프로그램으로 키스와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키스의 또 다른 책 동양의 창(Eastern Windows)을 우리말로 옮겨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그 결과 지금도 SNS와 칼럼 등에서 키스의 작품이 계속 공유되며 회자되고 있고, 2016년에는 키스의 한국 방문기가 웹툰화되기도 했다(키스 앤 코리아, 김나임 작). 송영달 선생의 각고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특히 2019년에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로 추정되는 키스의 그림을 발굴해 국내에 알렸다. 이순신 장군의 원래 모습이 담긴 초상화는 현재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작품은 옮긴이의 삼십여 년에 걸친 키스 작품 수집에 있어 결정적 발굴이다. 이 그림은 이순신 장군의 원래 모습에 가장 가깝고, 작품 연도를 추정한 결과로는 현존하는 여러 초상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번 책 6쪽과 299쪽에 이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가 실려 있는데, 우리가 알던 온화한 문인의 이미지와 달리 강인하고 다부진 풍채가 압도적이다. 이 작품의 발견 및 입수 경위와 추정의 구체적인 근거 등을 송영달 선생이 상세히 밝혀두었으니 참고 바란다(300). 이 글에서 그는 언제고 이 작품을 한국에서 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의 발굴과 국내 공개를 계기로, 송영달 선생은 그의 오랜 키스 작품 수집 및 연구 인생을 집대성하고자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을 펴내게 되었다. 이번 완전 복원판의 가치는 다음과 같다.

 

1. 엘리자베스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총망라

키스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수채화와 판화를 빠짐없이 실었다. 올드 코리아원서에는 40점이 실려 있었고, 한국어 초판에는 총 66점이 실렸다. 이번에는 키스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작품 85점을 모두 소개하게 되었다. 판화 35, 수채화 46, 드로잉 4점이다. 같은 소재를 수채화와 판화 등 서로 다른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이 있는 경우는 그를 모두 실었다.

 

2. 원본에 가까운 색감과 화질

독자가 원본 작품을 직접 감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송영달 선생은 소장한 모든 그림을 미국에서 전문 사진작가를 통해 초고화질로 디지털화했고,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의 경우 미술관에 고비용을 지불하여 디지털화 작업을 청탁했다. 또한 작품 도록에 사용되는 종이를 사용해 키스 그림의 색감을 최대한 온전히 살렸다.

 

3. ‘작품 목록수록과 알찬 해제

책의 뒷부분에 엘리자베스 키스의 한국 소재 작품 목록을 실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키스의 한국 그림 전체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 또한 송영달 선생의 수십 년에 걸친 키스 연구가 집대성된 해제는 독자의 작품 감상과 이해를 돕는다.

 

4. 올드 코리아원서에 가깝게 구성과 글을 복원

한국어 초판은 한국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구성 등을 바꾸는 조정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온전히 원서 그대로를 담아내고자 구성과 장의 제목 등을 원서 그대로 고쳤다.

 

5. 올드 코리아원서 복원판 제작

진정한 완전 복원을 위해 원서 자체를 별도의 책으로 복원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을 읽고 키스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그 글과 그림이 당시에 어떻게 출판되었는지 궁금한 독자는 이 원서 복원판을 열어보기 바란다(본책과 세트로만 판매).

 

마음으로 만든 책

 

이처럼 이번 완전 복원판10여 년간 한국어 초판과 키스의 그림을 사랑해준 많은 이에 대한 고마움과, 한국 사람들을 사랑한 키스 자매를 향한 경애심, 그리고 키스의 그림을 한국에 알리고자 고군분투한 송영달 선생의 집념이 모여 만들어진 책이다. 즉 그 모든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완전한 복원으로 구현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의 품격에 걸맞도록 장정을 꾸미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아무쪼록 지은이와 옮긴이, 출판사가 이 책에 담은 마음이 독자들의 마음에도 가닿아 공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