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규]정봉수 회장님
[2007/08/24]시인
[2007/08/24]시인
정봉수 회장님
지극히 사적인 글을 쓰려고 한다. 사적이라고는 해도, 이 글의 제목에서 이미 대상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아는 분들에게는 글의 방향이 드러난 셈이다.
엊그제(8월20일) 한림대병원으로 정봉수 회장님 문병을 다녀왔다. 작년 말에 팔순잔치를 치르시고는 벌써 여러 차례의 병원생활이시다. 그러나 바로 얼마 전에 군포의 노인병원에서 요양 중이실 때와는 전혀 딴 모습이었다. 그때는 웃으며 농담도 하셨는데, 이번엔 시선도 초점을 잃고 말씀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당신께서도 무슨 말씀인가를 하고자 하셨지만 뜻대로 되지가 않자, 손짓으로 무엇인가 쓰시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셨다. 함께 간 박원용 동안구청장이 볼펜과 메모장을 쥐어드렸으나, 어린아이 낙서같이 글자의 형태도 갖추지 못한 몇 획을 끄적거리시는 것으로 끝났다. 나는 박 청장에게 이것을 ‘기념물’로 잘 간직하라고 했다.
‘아, 얼마 남지 않으셨구나’ 문병을 간 일행들의 공통된 느낌이었다. 안양의 ‘명물’이 드디어 인생 대단원의 장막 너머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명물’이라는 말은 역사적인 족적의 위대성이나 문화적인 유산으로서의 의미에서가 아니다. 안양이라고 하는 지역사회의 많은 앞 세대 가운데서 시종일관 ‘안양사랑’의 순수한 애향일념으로 나이나 분야를 불문하고 궂은 일일수록 앞장서서 일생을 불사른 유일한 분이기에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정 회장님은 지역사회에서는 ‘왕회장님’으로 통칭되지만, ‘형님’이라는 호칭에는 만면에 희색이셨다. 그만큼 애향과 직결되는 선후배간의 형제애를 갈구하셨다.
또한 성격이 불같으셔서 혹자들은 허물로 꼽을지는 몰라도, 그 단순성이야말로 불의를 묵과하지 못하는 의협심의 원천이었으니, 이재에 밝지 못하시고, 말보다는 행동, 나보다는 우리라는 신념, 더구나 가사에는 무관심하셨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터이다. 생각해 보면, 정 회장님은 풍운아적 기질이 강하시다. 소년기에는 한학을, 청년기에는 스포츠, 더구나 대학은 서울대 농대, 그리고 직장생활은 기업체 임원과 안양상공회의소 초대 사무국장이요, 유려한 필체와 일어·영어가 혼합된 유머감각 넘치는 화술, 그렇지만 ‘돈’과는 인연이 먼 활동들이었으니, 그러함으로써 더욱 풍운아적 명물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 회장님의 지역사회 활동 가운데서 안양시 한일친선협회의 공로도 평가해야겠지만, ‘새안양회’ 창립자로서의 업적은 당신의 삶에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애향의 유산이 될 것이다.
이제 와서 실감할 수밖에 없는 일화가 있다. 몇 해 전이었던가, 가까운 선후배들이 만나는 술자리에서 서로 건강 걱정을 하다가, “우리 큰형님께서 돌아가신다면 반드시 ‘새안양회장’으로 모셔야 한다”고 발설한 일이 있다. 그 후 당신께서 건강이 악화되시자, 새안양회에서도 그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젠가는 맞으시게 될 임종, 당신께서야 이 글을 읽으실 수도, ‘새안양회장’에 대해서도 알 수 없으실 터이지만, ‘마음’은 이미 이심전심으로 상통했으려니, 영혼만은 지금부터라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기를.
나는 근래 아버님이나 조병화 선생님의 임종 과정에서 사람이 죽음의 입구에 가까이 갈수록 의식이 점점 쇠잔해져 가는 현상을 조물주의 배려로 받아들이게 됐다. 평소와 다름없는 의식상태라면 그 누가 죽음의 고통과 불안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
인생은 흔히 ‘생노병사(生老病死)’로 축약된다. 그 말 자체가 나는 싫다. 인생이 ‘태어남(生)’만 있고, 나머지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老病死)’는 것이라면 너무 허무하기 때문이다. 그 허무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도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정 회장님은 열심으로 안양을 사랑하셨다.
이 글은 문병 직후의 감상이기에 적잖은 사정(私情)이 개입됐을 것이다. 정봉수 회장님을 오래 기억에 남기는 길은 안양을 더욱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너, 임마 무슨 그런 글을 썼어!” 하는 정 회장님의 꾸중을 듣게 됐으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지극히 사적인 글을 쓰려고 한다. 사적이라고는 해도, 이 글의 제목에서 이미 대상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아는 분들에게는 글의 방향이 드러난 셈이다.
엊그제(8월20일) 한림대병원으로 정봉수 회장님 문병을 다녀왔다. 작년 말에 팔순잔치를 치르시고는 벌써 여러 차례의 병원생활이시다. 그러나 바로 얼마 전에 군포의 노인병원에서 요양 중이실 때와는 전혀 딴 모습이었다. 그때는 웃으며 농담도 하셨는데, 이번엔 시선도 초점을 잃고 말씀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당신께서도 무슨 말씀인가를 하고자 하셨지만 뜻대로 되지가 않자, 손짓으로 무엇인가 쓰시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셨다. 함께 간 박원용 동안구청장이 볼펜과 메모장을 쥐어드렸으나, 어린아이 낙서같이 글자의 형태도 갖추지 못한 몇 획을 끄적거리시는 것으로 끝났다. 나는 박 청장에게 이것을 ‘기념물’로 잘 간직하라고 했다.
‘아, 얼마 남지 않으셨구나’ 문병을 간 일행들의 공통된 느낌이었다. 안양의 ‘명물’이 드디어 인생 대단원의 장막 너머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명물’이라는 말은 역사적인 족적의 위대성이나 문화적인 유산으로서의 의미에서가 아니다. 안양이라고 하는 지역사회의 많은 앞 세대 가운데서 시종일관 ‘안양사랑’의 순수한 애향일념으로 나이나 분야를 불문하고 궂은 일일수록 앞장서서 일생을 불사른 유일한 분이기에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정 회장님은 지역사회에서는 ‘왕회장님’으로 통칭되지만, ‘형님’이라는 호칭에는 만면에 희색이셨다. 그만큼 애향과 직결되는 선후배간의 형제애를 갈구하셨다.
또한 성격이 불같으셔서 혹자들은 허물로 꼽을지는 몰라도, 그 단순성이야말로 불의를 묵과하지 못하는 의협심의 원천이었으니, 이재에 밝지 못하시고, 말보다는 행동, 나보다는 우리라는 신념, 더구나 가사에는 무관심하셨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터이다. 생각해 보면, 정 회장님은 풍운아적 기질이 강하시다. 소년기에는 한학을, 청년기에는 스포츠, 더구나 대학은 서울대 농대, 그리고 직장생활은 기업체 임원과 안양상공회의소 초대 사무국장이요, 유려한 필체와 일어·영어가 혼합된 유머감각 넘치는 화술, 그렇지만 ‘돈’과는 인연이 먼 활동들이었으니, 그러함으로써 더욱 풍운아적 명물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 회장님의 지역사회 활동 가운데서 안양시 한일친선협회의 공로도 평가해야겠지만, ‘새안양회’ 창립자로서의 업적은 당신의 삶에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애향의 유산이 될 것이다.
이제 와서 실감할 수밖에 없는 일화가 있다. 몇 해 전이었던가, 가까운 선후배들이 만나는 술자리에서 서로 건강 걱정을 하다가, “우리 큰형님께서 돌아가신다면 반드시 ‘새안양회장’으로 모셔야 한다”고 발설한 일이 있다. 그 후 당신께서 건강이 악화되시자, 새안양회에서도 그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젠가는 맞으시게 될 임종, 당신께서야 이 글을 읽으실 수도, ‘새안양회장’에 대해서도 알 수 없으실 터이지만, ‘마음’은 이미 이심전심으로 상통했으려니, 영혼만은 지금부터라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기를.
나는 근래 아버님이나 조병화 선생님의 임종 과정에서 사람이 죽음의 입구에 가까이 갈수록 의식이 점점 쇠잔해져 가는 현상을 조물주의 배려로 받아들이게 됐다. 평소와 다름없는 의식상태라면 그 누가 죽음의 고통과 불안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
인생은 흔히 ‘생노병사(生老病死)’로 축약된다. 그 말 자체가 나는 싫다. 인생이 ‘태어남(生)’만 있고, 나머지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老病死)’는 것이라면 너무 허무하기 때문이다. 그 허무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도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정 회장님은 열심으로 안양을 사랑하셨다.
이 글은 문병 직후의 감상이기에 적잖은 사정(私情)이 개입됐을 것이다. 정봉수 회장님을 오래 기억에 남기는 길은 안양을 더욱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너, 임마 무슨 그런 글을 썼어!” 하는 정 회장님의 꾸중을 듣게 됐으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2007-08-25 0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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