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주접동(지금의 안양6동)이었지요.
집 주변에는 수리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고 임업시험장이 있었습니다.
고만고만했던 네 자매의 놀이터는 임업시험장이었고 그곳에서 찍었던 사진들은 흑백의 시절이었습니다.
임업 시험장 앞으로는 국도가 있었고 그 너머에는 기찻길이 있었지요.
우리는 낮은 동산에 않아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매일매일 보았습니다.
기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적을 울리며 우리들 앞으로 지나갑니다.
화물칸이 대부분이었던 기차는 길게는 삼십 량을 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기차구경을 하다가 심심하면 수영할 채비를 해가지고 냇가로 갑니다.
그 시절엔 검은 사각 빤쓰와 나닝구라고 부르는 것이 수영복의 전부였습니다.
갈아입을 옷 한 벌을 가지고 안양천으로 무리지어 달려가면 깨끗한 물이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물에 햇살이 일렁이던 모습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개울가에는 허리까지 차는 풀이 자라고 그 사이로는 작은 물고기들이 빠르게 숨었다 나타나곤 하였습니다.
우리는 신발을 벗어서 물고기를 잡느라 정신없이 물을 튕깁니다.
남자애들은 물속으로 들어와 여자애들의 사각 팬티를 벗겨 내리고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을 피해 이리저리 뛰어 다니다 미끄러져서 넘어지면 악을 쓰며 울기도 합니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땅을 짚고 헤엄을 치거나 발 만 담근 채 흘러가는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가끔은 떠내려가는 운동화를 건지러 깊은 곳 까지 갔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지요.
여름을 그렇게 보내고 논에는 곡식들이 익어가고 포도 알이 까맣게 익어갑니다.
추석이 가까우면 어른들은 가을걷이를 조금씩 시작합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으로 몰려간 우리들은 강아지풀에 메뚜기를 잡아서 줄줄이 끼워 허리춤에 차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갈에 남자애들이 불을 피워 메뚜기를 굽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앞을 지나오다가 잡은 메뚜기를 모두 빼앗기고 엉엉 울기도 하였지요.
어쩌다 메뚜기를 팬에 볶아서 소금을 살짝 뿌려서 먹으면 그 맛은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지요.
드디어 명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십리정도 떨어진 호계동 (그 때는 신말 이라고 했다) 큰댁으로 갑니다.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서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저수지가 있고 오래된 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그 곳엔 낮에도 도깨비가 나온다고 할 정도로 숲이 우거져 어두운 곳입니다.
저수지 앞에서부터 그 숲을 벗어 날 때까지 우리는 숨도 쉬지 않고 달리기를 합니다.
달리면서도 어른들이 들려주셨던 그 곳 전설 때문에 등골이 오싹 헸던 기억은 지금도 여름밤이면 나의 등골을 서늘하게 합니다.
대부분 친척으로 이루어진 마을에서 나는 항렬이 높아서 마을로 들어서면 점잖은 걸음걸이를 해야 했어요.
머리에 갓을 쓰고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머리를 조아리며 어린 내게 절을 합니다.
"할머님 오셨습니까? 그동안 기체후 일향만강 하셨는지요? "
" 아 자네도 잘 지냈는가? 몸은 건강 하시구? "
이런 인사는 내 고향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었답니다.
그런 나의 고향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헤엄치며 놀던 안양천을 산업의 물결이 밀려오며 시커먼 오폐수가 악취를 풍기며 흘러갔고
메뚜기를 잡던 들판엔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졌습니다.
신말 이라는 내 어릴 적 추억의 마을은 새마을이라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내게 머리 조아려 인사하시던 어른들은 이제 한 분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내 고향은 사라졌습니다.
우리가족은 산업화 되어가는 고향을 떠나 수원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안양은 내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는 고향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고향은 가슴속에 있습니다.
인터넷 다음카페에서 발췌(글쓴이 플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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