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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안양문학의 효시이자, 안양동인문예집 청포도 제1호

안양똑딱이 2024. 1. 22. 14:27

 

안양문학의 효시이자, 안양동인문예집 청포도 제1호 

안양문학 창간 제30집 특집호에 실린 PDF파일 보기 

안양문학 제30집 본문 특집1-안양문학의 뿌리를 찾다(동인지 청포도)장지섭.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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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문학의 뿌리는 1947년 청록파 시인 박두진씨, 정귀영씨 등이 결성한 안양문학동인회로 <청포도>는 동인회에서 194785일 발행한 동인지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 실체를 찾을수 없었는데 2019년에 안성에 있는 박두진문학관 수장고에서 1부가 발견됐다.

안양문인협회 장지섭((구명 장호수) 부회장2019424일 박두진문학관을 방문해 기록한 <청포도> 표지와 속 내용을 살펴본다.

청포도 제1호에는 박두진, 설웅규, 박준석, 양순영, 송세영, 전재찬. 고의종, 서수옥 등 안양 최초의 안양문학동인회 창간 주역들이 쓴 시와 수필이 실려있다.

한편  안양문학동인회의 창간 주역은 청록파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혜산(兮山) 박두진 시인이다. 그는  1916년 안성 출생으로 1998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시인의 유명도에 비해 안양과의 연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박두진 시인은 1942년 8월에 일가족 5인이 안양으로 이주하고 금융조합의 사무원으로 취업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일가족은 안양중앙교회에서 1944년 8월에 세례를 받고, 1948년에 장로에 장립되었다.
“안양으로 온 뒤로 그간 이렁성 하는 중에 아직 아무 것도 착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악 못 미처의 풍광은 매우 가려하고 안정되어 있으나, 아직 주택 구하지 못하고 두어 간 세 얻어서 지냅니다.
한 30분이면 도보로 통근되오며, 저녁이면 석유불 밑에서 겨우 눈을 밝히고 있습니다.
(중략) 벗이 그리움에 관악산 <연주암>을 고쳐 나의 <연우암>이라 불러야겠습니다” 위는 박두진 시인이 ‘소향(素鄕·이상로 시인)’에게 1942년 9월25일자로 보낸 편지의 일부다.
박두진 시인은 1947년 말부터 구 삼덕제지의 서무과장으로 근무했지만, 1950년 초 가족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중앙교회와 삼덕제지는 물론이요 안양과의 인연도 끊어진다.
박두진 시인이 8년 동안 안양에 거주하면서 남긴 두 가지 문학적 업적이 있다.
그 하나가 한국시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청록집’의 출간이고, 또 하나는 ‘안양문학동인회’의 결성과 동인지 ‘청포도’의 간행이다.
박두진·박목원·조지훈 시인의 합동시집 ‘청록집’이 간행된 것은 1946년, 곧 박두진 시인이 안양에 기거하던 때다.
그러니까 시인은 ‘청록집’에 수록된 12편의 주옥같은 시들을 안양에서 탈고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안양은 박두진 시인을 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안양문학동인회’의 결성과 동인지 ‘청포도’의 발행에 대해서는 1947년 8월30일자의 동아일보 신간 소개란의 기사로 확인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인들의 면면이나 활동내용, 특히 ‘청포도’ 동인지가 남아 전해지지 않아 안양 최초의 동인회와 동인지의 창립·창간의 주역들을 알수 없었는데 청포도 제1호를 발견함에 따라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다.

 

청포도가 소개된 1947년 8월30일자 동아일보 신간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