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김대규]‘구 서이면사무소’

안양똑딱이 2016. 7. 1. 16:33
[김대규]‘구 서이면사무소’

[2006/09/08]시인
‘구 서이면사무소’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항상 ‘문제’를 떠안고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 망정 몸 안에는 다소간에 병원체(病原體)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뜻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요는 그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석하고, 어떻게 최상의 해결책을 마련하느냐가 관건일 터이다.

근래 우리 안양시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안의 하나가 ‘구 서이면사무소’ 활용방안이다.
주지하듯 ‘구 서이면사무소’는 1895년(고종 32년)의 ‘하서면’ 시기부터 일제 치하를 거쳐 1945년 8·15 광복 이후, 1949년 안양읍 탄생시까지 근대 안양행정의 역사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조금 덧붙이자면, 과천군 소속의 상서면과 하서면이 시흥군 서이면으로 통합된 것이 1914년 4월1일이고, 서이면사무소가 현 위치(안양1동)로 이전한 것이 1917년 7월6일이요, 안양면사무소로 개칭된 것이 1941년 10월1일이니까, 현재의 소재지에서 32년간 안양의 행정을 관장한 것이다.

안양시민의 날이 10월1일인 까닭도 ‘안양면사무소’라는 공식 명칙을 얻게 된 날을 기리기 위해서인데, 개인에게 매각된 건물을 50여년이 지나 안양시에서 매입·복원키로 한 것은, 위에서 말한 안양행정사의 현장적인 상징성도 있겠지만 더 유의해야 할 점은 6·25의 참화 속에서도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적인 한옥으로서의 문화재적 가치라고 생각한다(2001.1.22 경기도문화제자료 제100호로 지정됨).

이와같은 ‘구 서이면사무소’ 복원사업에 대해 시민단체로부터 제기된 이의가 바로 ‘일제수탈’에 관한 사항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구 서이면사무소 운영위원회’를 결성, 여러 차례 회의를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자상한 협의내용은 알 수 없지만, 현 상태의 운영방법으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의견은 다르다. ‘구 서이면사무소’ 관련자료를 중심으로 하되, 일제 강점기의 전국 공통적인 면사무소의 수탈자료를 포함하는 ‘안양일제수탈사전시관으로 만들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김수섭·안양일제수탈사전시관의 활용= 안양시민신문 9월1일자).

이 시민단체들 간의 ‘합의’ 내용에 대한 나의 소견은 이러하다.
국권을 찬탈당한 터에 나라 전체가 수탈과 만행의 현장이었음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고, 이에 울분하고 민족혼을 되살려 애국심을 고취시키자는 데 그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그래서 ‘독립기념관’을 건립했고, 현정부도 ‘친일반민족행위규명위원회’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구 서이면사무소’를 “일제 강점기의 전국 공통적인 면사무소의 수탈자료를 포함하는 ‘안양일제수탈사전시관’으로 만들자”는 것은 최적지(最適地) 여부·비용·명분·시민적 합의 등에서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전국의 면사무소가 일제치하의 주민 행정 담당처라 해서, 수탈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에는 논리적 비약과 정신적 증폭이 엿보인다.

따라서 ‘구 서이면사무소’ (사실 그 명칭도 ‘구 안양면사무소’로 해야 합당하다) 내에 우리 안양지역의 독립운동가·유공자들과 일제의 ‘수탈·만행’에 관계되는 자료들을 범시민적으로 홍보·수집하여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그 명칭을 ‘안양일제수탈만행자료전시실’이라 한다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어느 때보다도 일본과 중국에 대한 국민적·국가적 경각심이 절실한 때에 ‘일제 수탈·만행’에 대한 논의는 후세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떤 일에서거나 편향성·일방성은 위험하다. 돈·권력·이념·종교·인권·환경·여성·노사 등 사회 전반에서 오로지 ‘이것만’이어야 한다는 사고·의식은 이제 불식되어야 한다. 이는 내 생각이 아니라 역사의 교훈이다.

2006-09-08 16:5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