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3128]안양읍민 폐탄 탄약고 수리산 이전 반대 궐기대회(1969년)

안양똑딱이 2023. 12. 28. 22:15

 
경기시흥군 안양읍 시절인 1969년에 큰 사건이 있었다. 수원에 있던 폐탄 탄약고를 안양 수리산으로 옮기려 한것. 이에 안양읍민들이 폐탄 탄약고 수리산 이전 반대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가두시위를 전개하는등 데모를 크게 펼쳤다. 당시 귈기대회 모습이 담긴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되어 있는 기록물을 확인했는데 안양읍 시절의 중앙동과 안양역, 행정거리의 풍경을 엿볼수 있다. 또 사진과 함께 관련 문건도 확인했다. 당시 시흥군청 또는 경찰에서 작성한것으로 보이는 문건에는 당시 사건을 기록한 안양읍민총궐기대회 기록과 안양읍민 대표단(장배근 안양번영회장/투쟁위원장, 송영호 금성방직 공장장/총무, 김성식 한일나일론 상무/섭외)이 수리산 미군 탄약고를 관리하던 미 83병기대대를 방문해 면담한 기록물도 있다.
사진 기록을 보면 수천여명의 안양음민들은 읍민관에서 궐기대회를 마친후 시흥군청과 안양역 광장까지 거리를 행진하며 시위를 펼쳤고, 경찰서장이 직접 나서 플랜카드를 빼앗는 등 당시 데모가 격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도한 조선(폐탄처리장 설치말라),동아일보(미군 탄약처리장 시가지 접근 반대 안양읍민대회) 기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일보.동아일보 신문기사]
1969년 11월 18일 오전 10시 안양읍민 약3천명이 안양 읍민관에서 폐탄처리장 설치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시흥군청앞까지 가두데모, 긴급출동한 30여명의 경찰에 의해 2시간만에 해산했다. 주민들은 경기도당국이 수원시 파장동의 폐탄처리장을 안양읍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수리산 중턱에 이전설치키로 확정짓자 지난 3일부터 관계 요로에 진정하는 등 설치반대운동을 벌여왔다. 이날 읍민들은 9시를 기해 모든 상점을 철시했는데 이들은 지난 1964년 3월 안양동쪽 지점 몰압산 중턱에서 일어난 탄약폭발사고로 98명의 사상자를 낸 사실과 안양유원지가 불과 3km내에 있는 점 등을 들어 도 당국에 이같은 처사를 시정하도록 강력히 요구했다. 
사진 설명으로 읍내에서 읍외로 산발하는 시위대라 적혀있다.
 

사진 설명으로 안양극장으로 운집하는 읍민으로 기록돼있는데 사진 왼쪽에원앙예식장 간핀이 있는 것을 볼때 안양역 광장으로 몰려드는 읍민들이 맞다.
사진 설명에 국도로 시위하지 않도록 제지하는 경찰관이라 적혀있다. 사진 윗쪽이 현 벽산사거리로 위 오른쪽 건물에 예식장과 다방, 도서실, 시흥군문화원이 있었다.(지금도 건물 현존). 사진 왼쪽에는 제일의원이 보인다. 데모대가 운집한 곳은 현 장내로 도로위로 읍민관에서 궐기대회를 하고 나선 읍민들이 1번 국도(만안로) 쯕으로 가려고 몰려들고 있다, 사진 왼쪽에는 신도예식장, 오른쪽으로는 시흥군청이 있었다.
사진 설명에 군청으로 몰려드는 데모대 읍민이라 적혀있다.
사진 설명에는 거리로 행진하는 데모대라 적혀있다. 사진 우측에 문화예식장 건물이 보이는걸 볼때 사진 왼쪽이 읍민관이고 오른쯕으로 시흥군청과 읍사무소, 경찰서 가는길 중간의 흙바닥 광장이다.(현 중앙로)당시에는 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의 공터로 각종 행사와 집회들이 개최되던 곳이다.
사진 설명으로 경찰서장이 플랜카드를 뺏고 있다고 적혀있다.
사진속 배경은 원앙에식장앞으로 경찰이 국도에서 시위하는 것을 제지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뾰족 종탑이 있는 고딕식 형태의 성당이 당시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이다. 군중이 운집한 곳이 현 벽산사거리다. 왼쪽에 고려석면 안양공장(현 2001아을렛)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예식장, 다방, 도서관, 시흥군문화원이 있던 건물(현존)이 보인다. 당시에는 중앙로 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으로 시흥군청(현 삼원프라자호텔) 및 읍민관(현 안양빌딩.1층 다이소) 연결되는 이곳에서는 광복절 행사, LAL기납북규탄집회, 궐기대회 등 다양한 군중 집회와 행사들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