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에 게제된 제1회 전국 부녀자밤줍기대회(습률대회)의 참관 후기.
일제강점기 이전 안양 담안(4동)과 율목동(3.9동)은 밤나무밭으로 1933년과 1934년에는 동아일보사와 그 자매지인 신가정(현재의 여성동아 전신) 주최로 전국부녀자 밤줍기대회가 열릴만큼 밤의 명산지로 유 명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된 밤줍기대회 관련기사 중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아래 글은 습률대회에 다녀온 기자가 쓴 참관 후기로 보인다.
금물결 치는가을들에 전개된 호화판 제1회 습률대회 후기-k생
동아일보 | 1933.10.04 기사텍스트)
새벽 하늘에 별이 채 살아지지도 않은 듯 싶은
기차가 떠나려면 아직도 한시간 반은 있어야 되는때부터 용산역은 히끗히끗한 부인네들로 차지되엇다.
하루의 해방!
하후의 즐거움이 저러케나 반가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의 여름내 피로해진 얼굴들을 바라보앗다.
삽시간동에 젊은부인 노인 학생 처녀들도 용산역은 꽃밭을 일구어놓고 하나식엄 어앞섭에 꽂은 꽃은 노라코 붉은휘장이 유난히 회의 기분을 독가주었다.
여덟시 십분 |장사의 열을 지여 책보꾸렘이 빠스겔들을 들고 기차에 홀낫을때는 동쪽하늘이 구름속에 해를 가려놓고 이백명 회원들의 가슴을 조려주고 잇엇다. 한강을 지나고 누라케익은 벼 단풍저가는 숱을 지나가는 동안에 기차안은 오래간만에 서로 만난 부인네들의 이야기소리 우슴소리로 꽉차잇엇다.
"앙요"라는 일홈때문에 무식한 부인네들이 하차를 못한다는 안양역을 무사히 네려서논 두럭길을 지나고 밤밭을 걸어 회장까지 갖슬때는 미리 설비해 대회장의 붉은 기빨이 맑은바람에 펄덕 그리며 하로향락에 즐거움을 안은 부인들을 맞엿다 입을 딱 벌린 아람진 밤송이속에서 금시에라도 주먹만큼씩한 밤이 떨어질 것 같어도 시속에 무첫든 부인들은 그것이 그러케도 신기한지 우두커니 처다보고 서서 세월가는줄 몰라한다 풀밭을 방석삼어 떼를 지어 앉어서 있다금 뚝에 떨어지는 밥알을 재빠른 사람만 골라나가 집군한다.
열시부터 재미잇는 경기를 시작했다 세살난 어린애들이 채 거름마도 못하는 발자욱으로 다름질치는 앙장스런 모양은 말할수없이 귀여웠다.
점심뒤부터는 어른들의 경기 |
허구한날 문밖 출입도 변변이 못하는 부인들이 그런 활기와 그런힘이 어디서 났는지 한사람도 서슴지않고 경기를 했다. 눈을감고 열아문거름 나아거는 장대로 대야를처서 마치는 허리가 부러지게 우서운 경기로 부터 추첨경주 스푼경주 잡보(步(잡보) 경주 공넘기기경주 등 십여 종류를 하는 동안에 그들은 마음껏 웃고 마음에 싸든 왼갖 서름을 씨서버리는 듯했다.
늙은 할머니 한분 |
"나같이 늙은것도 하도 조?" 하면서도 백발이 날리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손벽을 치고 수건을 벗고 엠기고하는 얄궂은 경기를 하면서 그허 연머리를 얼굴까지 네려덮고 우스면서 "늙으막에 이게 웬일이요 "한다.
뚱뚱한 마나님네들이 깃대를 하나식 들고 와서는 허리를 굽으려절을하고 상을 받어가는것 도 습률대회가 아니고는 보지 못하는 광경이엿다 한사람도 빠지는이 없이 한사람도 시러하는 기색도 없이 뛰고 질기고 서로 응원하고 경쟁하는데서 그들의 단체 훈련과 사교성이 들어갈것을 무엇보다도 기뻐했다.
세시부터는 기다리든 습률이 시작되엇다 굵다란밤을 풀밭우에 쫙 뿌리고 탐스러운 밤송이들을장대로 따내려서 하나가뜩 펴놓고 따거운가시에 찔려가며 밤줍는 모양은 가장 흥미잇는 광경이였다.
"많이 주으면 상받는다는 것이 그러케나 애착이 즈을리는 것인가하고 내혼자 물어보도록 습률은 열광적이엿다" 일등 세루치마 한감"이 머리를 시치고 채처 나가기도 전에 벌써 밤은 한알도 없어젓다
옆에서 "부인들이 저러케 알뜰하니까 살해나가지" 하는 어떤 위원의말을 무조건으로 긍정해버렷다.
황흔의 빛깔이 잘근잘근 조그한 동리를 찾어오기 시작할때 우리 일행을 하루의 노리를 다 끝내고 차에 올랐다.
야국 갈대 감나무가지를 손이 버러지게 들고도 라오는 그들의 얼굴에서 명당한우슴을 발견할때 하로종일 마조대고 피로하든것이 자최도 없이 사러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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