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시회(詩會)자료
일제강점기에도 전통적인 의미의 시회(詩會)는 지속되고 있었다. 지역사회에서의 詩會는 일제강점기 전통적인 식자층의 지식인으로서의 위상을 사회를 통해 확인하는 기제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전주류씨가 소장자료에는 [관양음사욕란첩冠陽吟社浴蘭帖](6-137, 8-4)이라는 25장으로 된 시집이 남아있다. 이 자료는 일제강점기의 안양의 詩會를 조명할 수 있는 중요 자료로 평가된다.
이 시집은 관양음사(冠陽吟社)에서 펴낸 것이다. 서문은 1925년 단오(端午) 5일전 즉4월30일에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1858~1936)가 지었다. 이왕직(李王職) 전사 (典祀)로 재임하던 정만조는 서문에서 “나 또한 관양인(冠陽人)으로 선묘(先墓)가 있고 병사(丙舍:산소 곁에 지어놓은 齋室)가 있다.”고 관양(冠陽)즉 관악산의 남조 동네와의 인연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이번 시회를 관양이라 명명하고 시회를 연다고 하였다. 이 시집은 이어 회원록이라 하여 42명의 명단을 수록하였는데, 기재방식은 회원명, 거주지, 본관, 자, 호, 생년 순으로 기록하였다. 회원명단에는 하리, 즉 오늘날 남태령 아래 위치한 한내(寒溪)에 살았던 우산(愚山) 신종묵(愼宗黙):1856~1949)도 포함되어있다. 이어 시집은 절구(絶句)의 시를 수록하고 그 아래에 작자의 호를 기록하였다.
서문은 이어 “청관(淸冠): 청계산과 관악산)의 남쪽은 산수(山水)가 빼여나고, 한양에서 관직으로 있던 자가(관직을) 파하면 곧 돌아갈 곳이므로 사대부의 제택(第宅)과 원림(園林)이 서로 마주 본다. 창상(滄桑: 덧없이 변하는 세태)으로 인하여 벌열가(閥閱家)가 어초(漁樵:어부와 나무꾼)가 되어 강피(崗陂:언덕 전원)의 그루터기를 지키며 뜻을 잃고 스스로 고요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정만조의 서술은 오늘날 관악산과 청계산의 남쪽, 즉 과천과 안양시 동안구 지역을 지칭 하는것으로 평가된다. 이른바 청관지남(淸冠之南: 청계산과 관악산의 남쪽)‘은 서울과 연접한 경기남부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함께 그에 대한 서술은 조선시대 이래 이 지역의 지리적 성격을 규정하는데 중요한 언급이라고 하겠다. 이른바 안양지역 사대부의 (향제)鄕第와 별서(別墅)적 성격을 실증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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