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찬우물(냉천약수)은 냉천지구 재개발과 함께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다. 아파트단지 설계 과정에서 약수터가 있던 곳을 공원으로 만들고 찬우물공원으로 명명해 역사성이리도 이어갈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안양시와 재개발조합측은 물론 주민이나 시의원 누구하나 찬우물(냉천약수)의 보전에 대해 관심 갖는 이가 없었다.
찬우물의 전설
호랑이 젖줄에 해당하는 찬우물
찬우물의 물이 마르지 않는 것은 풍수적으로 수리산의 형상과도 관련이 있다. 수리산이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찬우물이 있는 곳이 바로 호랑이의 가슴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래서 호랑이의 젖줄처럼 찬우물의 물이 가물어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찬우물이 생기게 된 유래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찬우물 근처에 가난한 농부 내외가 살고 있었다. 농부 내외는 수리산 산등성이에 있는 논과 밭에 곡식을 심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워낙 농토가 적어 열심히 일해도 집안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항상 끼니 걱정으로 고달픈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해부터 가뭄이 들어 농사짓는 것마저 여의치가 않았다. 농사를 지어야 할 시기에 비가 오지 않아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해가 이어져 농사를 아예 지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비를 기다리기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농부 내외가, 남은 곡식으로 정성을 다해 제물을 준비해 수리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산신령에게 치성을 올렸다.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데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너의 농토 가운데 제일 높은 곳을 파보아라.”, “그 곳에서 물이 나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밭으로 올라가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땅을 파자 젖은 흙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어서 샘물이 솟아올랐다. 내외는 기뻐하며 산신령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 후 농부 내외는 산신령이 일러준 샘물로 농사를 지었으며, 샘물을 정성을 다해 관리하였다. 그 후부터 찬우물의 물은 마르지 않았고, 농사는 물론 마을 주민들의 식수로도 이용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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