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사람

[20200215]‘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권윤덕 작가(경기일보)

안양똑딱이 2020. 3. 26. 12:22

 

1.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권윤덕 작가


한국 현대사에서 1980년대만큼 뜨거웠던 시대가 있을까. 부당한 권력과 억압에 적극적으로 맞섰고 노동자, 여성 해방을 꿈꿨다. 우리 것을 지키자는 정체성 찾기 운동도 일어났다. 경인지역에서 활동하던 소집단 미술그룹은 그 중심이었다. 특정 계층을 위한 예술이 아닌, 시민과 함께 삶을 변화시켰고, 사회 변혁을 이끌었다. 경기도미술관이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오는 2월 2일까지 선보이는 ‘시점時點·시점視點-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 아카이브전’을 통해 이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격동의 시대, 1980년대 경인지역 민중미술 소집단 활동가들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경인지역 민중미술을 이끈 소집단 활동가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첫 번째는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의 권윤덕 작가다.

예순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생기 넘치고 환한 얼굴, 머리 위에 살포시 얹은 화려한 핀, 소녀감성이 물씬 나는 말투. 그 안에 담긴 많은 경험과 깊은 고민에서 나온 진실한 언어. 지난 13일 오후 군포시평생학습원에서 만난 그림책 작가 권순덕은 그녀의 작품처럼 담백하면서도 빛났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꽃할머니>, 제주 4ㆍ3 사건을 다룬 <나무도장>, 5ㆍ18 광주민주화 항쟁을 주제로 한 <씩스틴> 등 시대의 아픔을 그림책으로 담아온 권 작가는 지난 1987년 안양에서 창단한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의 창립멤버다.

그가 미술운동에 뛰어든 나이는 스물일곱. 권 작가는 “대학교 2학년 때 광주를 겪었고, 사회 변혁에 대한 갈망과 관심이 컸다. 변혁에 대한 갈망이 미술활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권 작가를 비롯해 이억배, 정유정 등 중심멤버가 모여 이듬해 말 안양근로자회관 강당에서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을 창립했다. 사회변혁의 갈림길에서 화랑에서 작품이 소비되는 걸 거부한 예술가들이 현장으로 들어왔다. 시민, 노동자들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했다. 이들이 주창한 것은 ‘시민과 함께하는 예술’, ‘그림은 특정인이 소유하고 누리는 게 아닌, 누구든지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우리그림은 ‘안양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고, ‘안양독서회’, ‘민요연구회’, 노동자미술학교 등 지역 예술문화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안양 그린힐 섬유봉제공장 화재로 여성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터지자 이들을 위한 <영정도>를 제작했다.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조각 단위의 소그룹이 연합으로 뭉치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그림은 해체됐다.

이후 눈길을 돌린 것은 그림책이었다. 작가의 생각을 담아서 복제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나누는 게, 민중미술의 또 다른 형태였다. 권 작가를 비롯해 이억배, 정유정 등 민중 미술가들이 대거 그림책으로 장을 옮겼다. 1995년,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권 작가의 첫 그림책 <만희네 집>이 나왔다.

지역민중 활동은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안양시민들과 수업을 하면서 <구름 가족 이야기>라는 그림책을 낸 경험도 있었다. 권 작가는 “미술운동을 했던 작가들은 작가 정신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정립돼 있어 이질감 없이 그림책으로 많은 호응을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들은 직접적이지 않다. 폭력을 말하면서도 폭력적인 장면이 없고, 성폭력을 다루지만 선정적이지 않다. 아름다운 그림으로 담담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더 아프다. “대학교 때 사회문제로 관여하고 관심 가졌던 일들이 책 <꽃할머니>까지로 이어졌어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 논쟁 중인 아픔들이 많네요.”

그는 지금도 시민과 문화예술 활동을 함께한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군포문화재단의 <말하는 그림책>에 1회부터 참여 중이다. 이 역시 30년 전 안양, 군포지역에서 시민 대상으로 했던 시민주도 참여 문화운동이 기반이 됐다. 그는 “지역 소집단 문화예술운동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이 그룹으로 모아져 한 번은 장을 펼쳐야 다음 단계로 이어지고, 큰 흐름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권 작가는 앞으로도 사회와 시대의 아픔을 대신 말하며, 대중과 함께 나눌 예정이다. 올해엔 우리가 가해자이기도 한 ‘베트남전쟁’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준비 중이다. “여수에 가면 여순사건을, 광주에 가면 광주를, 아이들은 세월호를 담아달라고 해요. 사회에 아프고, 누군가 대신 얘기해달라고 하는 걸 하는 일,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특히 베트남, 세월호까지 이 두 권은 꼭 제가 그림책으로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자연기자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