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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담긴 과거, 시흥군의 그때 그 시절

안양똑딱이 2016. 6. 11. 08:16

시흥군의 역사 1895.5.26 - 1988.12.31 93년만에 폐군
서울시 6개구, 안양.군포.의왕.과천.시흥.부천.광명.안산시 등 포함


지금은 서울시의 6개구와 안양, 군포, 의왕, 과천, 시흥, 부천, 광명, 안산시 등 경기도의 8개시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졌지만 1895년 5월 26일 탄생해 1988년 12월 31일 93년만에 폐군되기까지 거대한 행정구역 시흥군으로 존재해 오던 100여년 가까운 지난 시절의 모습이 담긴 빛 바랜 사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있다.

시흥시 홈페이지(www.shcity.net)에 마련된 "사진으로 보는 시흥 100년"에 접속하면 다양한 주제별로 시흥시뿐 아니라 안양, 군포시 등 시흥군 시절의 100년간의 지도, 역사, 문화, 행정, 인물 등 다양한 모습이 담긴 빛 바랜 옛 사진집을 통해 감상 할 수 있다.

시흥군의 역사는 1895년 5월 26일 탄생해 1914년 3월 1일 과천,시흥,안산군이 합병하여 거대한 시흥군으로 통합된 후 1941년 10월 1일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49년 8월 14일 안양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73년 7월 1일엔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되며 시흥군에서 분리되었다.

또한 1979년 5월 1일 시흥군 남면이 시흥군 군포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80년 12월 1일엔 시흥군 의왕면이 시흥군 의왕읍으로, 소래면은 소래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1년 7월 1일에는 소하읍과 광명출장소가 광명시로 분리되었고, 1982년 6월 10일에는 시흥군 과천면이 과천출장소(현 果川市)로 분리되어 나갔다.

이어 1989년 1월 1일 시흥군을 분리하여 군포읍이 군포시로, 의왕읍과 동부출장소가 의왕시로, 소래읍과 수암면.군자면이 통합되어 시흥시로 각각 승격시킴으로 시흥군은 1988년 12월 31일 종무식을 끝으로 93년만에 해체(폐군)되어 행정구역상에서 그 명칭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시흥(始興)이라는 명칭이 "넓은 땅(廣野)"을 의미하고 고구려 시대 지명인 잉벌노(仍伐奴)의 뜻풀이인 "뻗어가는 땅"과 걸맞다는 점에서 시흥군은 서울의 영등포구ㆍ구로구ㆍ금천구ㆍ관악구ㆍ동작구ㆍ서초구 등과 경기도의 안양시ㆍ광명시ㆍ안산시ㆍ과천시ㆍ군포시ㆍ의왕시 등을 분가시켰으니 우리 선조들의 탁견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에 인터넷에 '사진으로 보는 시흥 100년'이란 사진집을 개설한 시흥시는 제1권 '시흥의 역사와 행정'편 과 제2권 '시흥의 어제와 오늘'을 홈페이지에 수록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시흥군의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제1권 '시흥의 역사와 행정'은 역사, 행정, 지방자치, 공무원, 인물을 시흥군ㆍ시흥시(관선시장시대ㆍ민선시장시대)로 나눠 시대별로 역사와 행정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됐으며 제2권 '시흥의 어제와 오늘'은 크게 '시흥의 지형변화, 번영의 역사, 땅의 어제와 오늘, 시흥의 관공서'로 분류해 시흥의 어제의 모습과 오늘의 모습으로 비교 구성했다.

▲1930년대 안양역사의 모습

시흥시민뿐 아니라 시흥군시절 포함되어 있던 자치단체의 시민들은 이 사이트를 통해 잊혀져 가는 지난 역사를 되돌아봄으로써 시흥군 시절의 사회의 모습과 행정구역의 변화를 통해 행정구역이 어떻게 변천, 발전돼 왔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지난 시절의 역사를 몸소 체험한 노년층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그 시절 그때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일부나마 고장의 삶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한편 시흥시가 시흥군 시절의 다양한 자료들을 보유하게 된 과정에는 시흥군 시절의 행정자료들이 이전해간 이유도 있지만 경기도의 대표적인 향토사학자였던 이한기씨(필명 이승언/ 2002년 1월20일 사망)가 시흥시 향토사료실에 근무하며 향토사 연구뿐 아니라 안양권역과 관련한 귀중한 자료들을 수집해 온데 근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걸어다니는 경기도 향토사료사전으로도 불리웠던 고 이한기씨는 지난 1989년 시흥시지 편찬뿐 아니라‘시흥시의 문화재와 유적’(1995) ‘시흥시의 인물과 행적’(1995) ‘시흥의 생활문화와 자연유산’(1995) ‘안양시 지명 유래집’(1996) ‘한말 일제하 수원기사 색인집’(1996),‘사진으로 보는 시흥 100년 시흥의 생활문화’(2001)외 3권의 사진자료집을 발간하는 등으로 사진 민속학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특히 30여년간 향토사연구에 힘써온 그는 기전향토문화연구회 연구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시흥시 지명위원, 서울 문화사학회 회원으로 향토사 연구발전을 위해 활동해 오며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인 역사적 사건들을 한 눈에 일별할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해 온 수집광으로 경인지역 지방지 창간호를 비롯해 각종 잡지 창간호, 동아특위 해직 기자단 성명서, 진주만 폭격을 알리는 호외 등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해왔다.

또한 안양중학교 시절 납부한 공납금 영수증, 48년도 결혼식 청첩장, 54년 8월 27일 최초의 미스코리아 심사채점표, 6.25때 식량권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자료들을 그에게서 볼 수 있었으며 안양과 관련한 미정리된 많은 사료들이 시흥시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관련 자료들이 시흥군 행정구역 당시 포함되어 있던 자치단체들과 연관이 있는 소중한 문화적 사료들인 만큼 자치단체간의 공유속에 향토사학자와 문화원뿐 아니라 자치단체간의 공동연구와 체계적인 정리는 물론 전시를 위한 공동보조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시절 시흥군청과 안양읍사무소가 자리잡았던 자리는 현재의 안양1번가 한복판으로 젊은이들이 넘치는 거리로 바뀐 가운데 2003년 내년은 1973년 7월 1일 안양읍이 시흥군에서 분리되어 안양시로 승격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지난 과거의 흔적이 담긴 사진전 등을 통한 역사의 재조명 기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안양지역시민연대 www.ngoanyang.or.kr)


시흥군 관내도(조선 고종조)

1949년 8월 15일 제2차 서울시에 편입되기 직전의 관내도(1949년)

의분의 항거/ 원태우지사의 호적. 1905년 11월 17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된지 5일 후인 이해 11월 22일 민족의 원흉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수원지방에서 유람한 후 기차로 귀경하던 중 시흥현 군내면 안양리(현 안양시 석수동) 안양육교에 이르자 시흥군 출신 원태우(1882∼1950)지사가 투석하여 수주를 요하는 상처를 입혀 기개를 내외에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