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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진]1973년 호계2동 느티나무(현 육교옆) 주변 풍경

안양똑딱이 2019. 7. 28. 14:58

 

2019.07.28/ #안양 #느티나무 #호계2동 #호계육교 #느티나무버스정류장 #호계시외버스정류장/ 
1973년 5월에 찍은 안양시 호계2동 풍경으로 멀리 뒷쪽으로 수리산이 보이는 동네앞 길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정겨운 모습이 담겨있는 흑백사진으로 현재 호계2동 버스정류장앞에서 선 열린조각공방을 운영하는 김수선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입니다.  

사진 좌측은 남쪽(호계신사거리 방향) 우측은(비산사거리 방향)으로 현재 호계동시외버스정루장과 육교 앞 일대의 옛 모습으로 사진속 어린이들이 노는 앞쪽 하얀 부분이 도로인데 이 도로는 향후 서울과 수원을 잇는 경수산업도로(현 경수대로/ 1번국도)가 놓여지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이 사진이 특별하고 의미있는 것은 사진 좌측 기와집 뒤로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때문입니다.

느티나무는 1,000년 이상 오래 사는 나무로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제공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서당 훈장이 학문을 가르치거나 동네 주민들이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국가적으로도 느티나무는 신라시대부터 신성시하며 벌채를 금지해 온 나무라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마을의 정자나무이자 마을의 수호신으로 대접받았는데 근대에 와서도 마을앞으로 도로가 뚫리는 경우 찬반 격론끝에 결국 원형 로터리 식으로 도로가 내는 등 그야말로 지극한 예우를 받으면서 도시의 보호수로 지정받고 있지요.

안양에도 오래된 느티나무 몇그루가 현존하는데 안양시 만안구 삼막로 36에 있는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높이 25m, 둘레 5.3m)는 매년 마을제를 지낼 정도로 대접받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1982년 10월 15일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지요.

안양시 동안구 관악대로 275번길 수목공원(관양1동 1377)에도 수령 550년(2014년 150->550년으로 안내판 수정)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있는데 안양시가 2005년 6월 보호수로 지정했으며 이곳에서도 매년 마을제(수촌마을 동제)를 지내고 있지요. 

또 안양시 안양시 동안구 신촌동 1067-6 언덕위 느티나무공원에도 수령 200년 가까운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평촌 신도시 개발시 이 나무를 보전하기 위해 경관녹지 1개소(소공원)를 만드는 도시계획을 별도 수립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럼 사진속 호계동 느티나무를 자세히 들여다 볼까요. 이 나무는 2012년 베어지기까지 수령 250년(사진 찍을 당시 200년)이나 되는 동네의 수호신이자 정자나무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위풍당당한 느티나무는 햇볕이 쨍쨍한 여름에는 주민들에게 그늘이 되어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쉼터가 되었고, 가슴 답답한 일이 생기면 치성을 드리는 신성한 터전이 되기도 했지요.

이 느티나무는 도시 개발과 함께 서서히 신음하기 시작합니다. 1970년대 중반 마을 앞 도로가 넓어지면서 느티나무는 도로 안에 자리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차량들이 질주하다가 갑자기 이 나무를 들이받는 교통사고가 수시로 발생하면서 느티나무 추돌 위험 지역이란 오명을 받게 되지요.

더욱이 차량들이 오가는 도로 한복판에 자리하면서 매연 등 환경 오염원으로 인한 탓일까, 결국 느티나무는 주민들의 무관심속에서 죽고 말지요.

죽은채 한동안 방치되던 느티나무는 1990년대 경수산업도로 확장공사를 앞두고 다시금 주민들의 관심을 받게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 느티나무가 비록 고사돼 죽었지만 그대로 놔두길 원했고, 시에서는 경수산업도로를 일직선으로 내야하기에 베어야 함을 통보합니다. 

결국 이 느티나무는 베어지고 맙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80년대 서울에서 안양 호계동으로 이사와 조각 등 공예 작업을 하고 있는 공예가 김수선 작가의 눈에 띈 것이지요.

전남 광주가 고향인 김 작가는 중학 시절 미국에서 공예가로 활동하던 사촌형을 보며, 군 제대 후 목공예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공예에서도 최고로 치는 옻칠을 배우면서 현대에 접목시키면 좋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합니다.

1980년대 초 서울의 작업장이 좁았던 터라 안양으로 이주해 느티나무 앞 건물에 공방을 차리고 작업활동을 했는데 그때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250년을 살다가 고사된 채 방치되어 있던 느티나무였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1990년대 경수산업도로 확장 공사시 고사된 느티나무를 놓고 동네 어르신들이 안양시와 맞서 갈등을 겪는 상황을 지켜 보았는데 나무를 벨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 수호신이었던 이 나무를 의미있게 보존하고 싶은 마음에서 김 작가에게 기증했다고 합니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대접받아온 수령 250년의 나무를 베어내기는 쉽지 않았다네요. 혹여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건 아닐까 걱정하며 모두가 꺼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하기에 1996년 8월 17일 김 작가와 마을 어르신들이 정중히 제물상을 차려 제를 지내고 나무를 베어냈다고 합니다. 

김수선 작가는 나무 뿌리부터 가지 끝까지 어느하나 버린 것 없이 고스란히 공방으로 옮겨 작업에 들어갑니다. 동네 유지와 인척은 물론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친분 두터운 작가들까지 느티나무 한 토막만 달라고 애원했지만 느티나무의 부활을 위해 일언지하에 거절 했다고 합니다.

안양시가 고향이자 호계동의 역사라 할수 있는 느티나무는 작가의 손과 12년의 기나긴 시간을 거쳐 특성에 따라 부분별, 분야별 작업을 통해 영롱한 문향을 고스란히 간직한 32점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느티나무 공예 작품들은 안양문예회관(현 안양아트센터)에서 한차례 전시를 통해 일반에 선을 보입니다마는 행정기관, 문화예술단체는 물론 홍보 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지역 주민들도 보지 못한채 흐지부지 끝나고 맙니다.

더욱이 32점이나 되는 작품들을 보존 및 전시할 공간을 찾지만 이 또한 문화단체의 무관심 등으로 보금 자리를 찾지 못해 지금도 32점의 작품들은 지하 공방에 머물고 있는 상태이지요.   

당시 김 작가는 안양문화원을 찾아 느티나무 공예 작품 보존을 위해 도움줄 것을 요청했는데 문화원에서는 “전시하고 싶어도 살아있거나 죽어서 제를 지낸다면 몰라도, 이미 작품으로 만들어졌으니 지원할 방법이 없다”는 말만 했다면서 지금도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느티나무이 있던 자리인 호계동 육교앞에는 얼마전 까지만 하더라도 느티나무 식당이 있었고, 현재의 호계동 시외버스정류장은 공식 명칭이 느티나무 버스정류장으로 불려져 왔지요. 시내.시외버스에서는 다음정류장은 "느티나무 버스정류장입니다"라고 안내 멘트가 흘러나오기도 했는데 이같은 멘트는 대중교통 덕후들이 늑음으로 남겨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