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익]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 캐탈로그
[206/11/11 네이버 profyongik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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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 캐탈로그 원고 | 낙서장 2006/01/23 14:20
http://blog.naver.com/profyongik/120021476708
이번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힘이 좀 들었다. 작업이란게 돌쌓고 흙퍼나르는 일이니 완전 “노가다”였다. 내가 직접 삽을 든 경우는 적었지만 포크레인 기사들, 인부들을 잘 다루는 일이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내가 양평에서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골병이 들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난 어쨌든 작업이 진행되던 3주간 하루도 빠지지않고 옆에 서서 유무언의 간섭을 했다.
나의 작업, 돌로 만든 공원이 조경업자가 만든것과는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일까? 내가 예술가니까 내 작업은 예술이고 조경업자가 만든 것은 그냥 작업일 뿐이라는 식으로, 미술제도론으로 해석하면 되는 것일까?
독일의 소위 뉴장르 퍼블릭 아트 현장을 방문 했을 때,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도 그것이었다. ”우리들의 작업이 생태학자들이나 사회복지사들이 하는일과 다른점이 무엇인가는 하나의 질문으로 남습니다.(왜냐하면 그들이 하는일과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때 나는 그말을 이렇게 이해했었다. “그래, 아방가르드는 원래 존재태가 아니라 가능태이고 래디칼하고 혼돈속에 있는게 그 본질이기 때문에 이것이다 저것이다 존재론적으로, 결정론적으로 구별해 낼 수 없는것이지.. 그리고 왈 이게 바로 탈근대적인 태도라는 것이겠지…”
그러나 이제 나는 조경업자들의 일감인 작은 돌공원 만드는 일을 해놓고 나서 거기에 대해 답을 얻었다. 예술가(내)가 한 일은 조경업자와 한 일과 다르다! 돌 쌓는 솜씨가 다르다! 그냥 보면 바로 표가나게 다르다! 예술가로서의 자연관, 세계관과 조경업자로서의 자연관, 세계관이 다른 만큼 결과물이 다르게 나왔다. 물론 이 미학적 올바름은 조경업자도 넘 보려면 넘 볼 수 있는 지점이겠지만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또 넘보기 힘든 지점을 예술가들은 직업적으로 선점하고있다. 그 정치적 올바름이란 공공미술의 경우는 공공성이란 것이다. 내가 만든 돌공원에서 그 공공성은 축대에 의해 접근이 차단당한 개울로 내려가는 돌 계단을 만들어주는것이었다. 거의 한나절을 소비하여 돌계단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무도 그 돌계단을 만들라고 종용한 사람은 없었다.
미학적 올바름과 정치적 올바름이란 두가지 무기로 무장한 예술가를 “업자”가 당해내기는 어렵다! 내말이 너무 방자한가? 업자를 무시하고 예술가를 특권화시키는 낯익은 수법인가? 하하하… 업자도 예술가와 꼭 같은 일을 할 수가 있다 정치적으로도 올바르고 미학적으로도 올바른…단지 예술가들이 더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전략적 얘기일 뿐이다. 행정가들이어…이 예술가들의 유리함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시게나..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사실 또 딴데있었다. 나의 나이브 취향이 이영철감독과 공무원 (정확히는 안양시장!)의 아티피셜 취향과 안맞는데서 오는 어려움이었다. 나는 언제나 덜 만든듯 , 좀 깔끔한 마무리가 안된듯한 것을 선호하는 취향의 소유자이다. 1997년의 내 금호 미술관 개인전에서 진행을 맡았던 미술평론가 정헌이 교수와 처음에 부딪친 문제도 이것이었다. 나의 캔버스에 그린 땡땡이 작업과 전시 방식이 단호하고 깔끔한 카리스마가 없이 지저분하고 맥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개인전이기에 정헌이를 설득해나갈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공공미술은 어쨋거나 관객, 대중, 타인의 개입을 허용해야하는 것 아닌가?
나의 미완성 미학은 나의 양보 할 수 없는 철학이다. 완성에의 의지에서 나는 수많은 역사적, 정치적 부당성을 읽어낸다. 그것은 수납에의 의지, 질서와 규율에의 의지, 억압에의 의지, 박정희- 김현옥- 이명박으로 내려오는 토건적 완성에의 의지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의지가 안양천의 돌쌓기, 청계천의 돌쌓기라는 몰취미를 양산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미완성 철학은 공공미술에서는 타협점을 모색해야하는법. 한시대의 미술은 그 시대의 관람객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는 법이려니…
그럼에도 나는 나의 고인돌 작업(“우리들의 안양”)을 좀 더 완성도 있어보이게 손대기를 바라는 안양시 문화예술국장님의 염원을 단호히 뿌리쳤다. 나의 예술의 이름으로…
때로 예술가는 그 시대의 평균적 미학을 단호히 거절함으로써 넘어서는 의지를 보여야 함일러니…중얼 중얼 중얼중얼
http://blog.naver.com/profyongik/120021476708
이번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힘이 좀 들었다. 작업이란게 돌쌓고 흙퍼나르는 일이니 완전 “노가다”였다. 내가 직접 삽을 든 경우는 적었지만 포크레인 기사들, 인부들을 잘 다루는 일이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내가 양평에서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골병이 들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난 어쨌든 작업이 진행되던 3주간 하루도 빠지지않고 옆에 서서 유무언의 간섭을 했다.
나의 작업, 돌로 만든 공원이 조경업자가 만든것과는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일까? 내가 예술가니까 내 작업은 예술이고 조경업자가 만든 것은 그냥 작업일 뿐이라는 식으로, 미술제도론으로 해석하면 되는 것일까?
독일의 소위 뉴장르 퍼블릭 아트 현장을 방문 했을 때,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도 그것이었다. ”우리들의 작업이 생태학자들이나 사회복지사들이 하는일과 다른점이 무엇인가는 하나의 질문으로 남습니다.(왜냐하면 그들이 하는일과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때 나는 그말을 이렇게 이해했었다. “그래, 아방가르드는 원래 존재태가 아니라 가능태이고 래디칼하고 혼돈속에 있는게 그 본질이기 때문에 이것이다 저것이다 존재론적으로, 결정론적으로 구별해 낼 수 없는것이지.. 그리고 왈 이게 바로 탈근대적인 태도라는 것이겠지…”
그러나 이제 나는 조경업자들의 일감인 작은 돌공원 만드는 일을 해놓고 나서 거기에 대해 답을 얻었다. 예술가(내)가 한 일은 조경업자와 한 일과 다르다! 돌 쌓는 솜씨가 다르다! 그냥 보면 바로 표가나게 다르다! 예술가로서의 자연관, 세계관과 조경업자로서의 자연관, 세계관이 다른 만큼 결과물이 다르게 나왔다. 물론 이 미학적 올바름은 조경업자도 넘 보려면 넘 볼 수 있는 지점이겠지만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또 넘보기 힘든 지점을 예술가들은 직업적으로 선점하고있다. 그 정치적 올바름이란 공공미술의 경우는 공공성이란 것이다. 내가 만든 돌공원에서 그 공공성은 축대에 의해 접근이 차단당한 개울로 내려가는 돌 계단을 만들어주는것이었다. 거의 한나절을 소비하여 돌계단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무도 그 돌계단을 만들라고 종용한 사람은 없었다.
미학적 올바름과 정치적 올바름이란 두가지 무기로 무장한 예술가를 “업자”가 당해내기는 어렵다! 내말이 너무 방자한가? 업자를 무시하고 예술가를 특권화시키는 낯익은 수법인가? 하하하… 업자도 예술가와 꼭 같은 일을 할 수가 있다 정치적으로도 올바르고 미학적으로도 올바른…단지 예술가들이 더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전략적 얘기일 뿐이다. 행정가들이어…이 예술가들의 유리함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시게나..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사실 또 딴데있었다. 나의 나이브 취향이 이영철감독과 공무원 (정확히는 안양시장!)의 아티피셜 취향과 안맞는데서 오는 어려움이었다. 나는 언제나 덜 만든듯 , 좀 깔끔한 마무리가 안된듯한 것을 선호하는 취향의 소유자이다. 1997년의 내 금호 미술관 개인전에서 진행을 맡았던 미술평론가 정헌이 교수와 처음에 부딪친 문제도 이것이었다. 나의 캔버스에 그린 땡땡이 작업과 전시 방식이 단호하고 깔끔한 카리스마가 없이 지저분하고 맥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개인전이기에 정헌이를 설득해나갈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공공미술은 어쨋거나 관객, 대중, 타인의 개입을 허용해야하는 것 아닌가?
나의 미완성 미학은 나의 양보 할 수 없는 철학이다. 완성에의 의지에서 나는 수많은 역사적, 정치적 부당성을 읽어낸다. 그것은 수납에의 의지, 질서와 규율에의 의지, 억압에의 의지, 박정희- 김현옥- 이명박으로 내려오는 토건적 완성에의 의지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의지가 안양천의 돌쌓기, 청계천의 돌쌓기라는 몰취미를 양산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미완성 철학은 공공미술에서는 타협점을 모색해야하는법. 한시대의 미술은 그 시대의 관람객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는 법이려니…
그럼에도 나는 나의 고인돌 작업(“우리들의 안양”)을 좀 더 완성도 있어보이게 손대기를 바라는 안양시 문화예술국장님의 염원을 단호히 뿌리쳤다. 나의 예술의 이름으로…
때로 예술가는 그 시대의 평균적 미학을 단호히 거절함으로써 넘어서는 의지를 보여야 함일러니…중얼 중얼 중얼중얼
2006-11-11 18: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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