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안양 태평방직과 1960년대 안양읍내 풍경

안양똑딱이 2016. 5. 31. 23:36

 

#안양 #기억 #기록사진 #태평방직/ 안양시역사사료관에서 찾은 1960년대 초로 추정되는 안양1동에 자리하고 있던 태평방직과 그 주변의 모습입니다. 사진 중앙의 공장자리는 1953년부터 1970년 초까지 태평방직이 있던 자리로 1983년 10월에 진흥아파트 저층 단지가 들어선데 이어 추가로 고층아파트단지 들어섰으며 현재 재개발사업이 추진중에 있습니다.
사진 아래쪽으로는 경부선 철길(오른쪽이 서울, 왼쪽이 수원방향)과 쭉쭉 뻗은 미루나무가 심어진 길이 과거 정조임금이 화성원행을 하며 지나갔던 1번국도(안양역앞 구도로- 현 만안로)가 보입니다.
공장 오른쪽 담장 너머로 보이는 집들이 있는 자리는 현재 성원아파트, 현암아파트, 새하늘교회가 들어선 자리이며 그 옆으로 1970년대 중반 개통한 안양우체국에서 비산동으로 넘어가는 비산대로와 비산대교가 있습니다.
사진 왼쪽의 마을은 1920년대 개설된 안양 최초의 시장(안양시장이라 부르다 1960년대 말 안양4동에 중앙시장-새시장이 들어선 이후 구시장이라 불리움)이 들어선과거 시대동이라 불리우던 1940-60년대 안양의 다운타운이라 할 수 있지요. 안양1동 92 일대인 이 곳은 1997년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돼 당시 주택공사에 의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20∼25층 1천1백여가구가 입주하는 주공뜨란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과거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사진 아래 국도옆 동네는 과거 남부동으로 현재는 남부시장이 들어선 지역이고.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사진 아래 오른쪽으로 안양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사진 윗쪽으로는 안양천이 흐르고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과거 수푸루지 다리(현재 임곡교)라 불리웠습니다. 이 다리는 당시 안양 시내에서 관양동-인덕원-청계-과천을 지나 서울 사당으로 연결되던 유일한 다리였지요. 현재의 다리는 매우 넓지만 과거에는 버스가 겨우 한대 지나갈 정도에 다리 난간도 없어 다리를 건너다 버스가 오면 다리 아래 하천(그때는 물이 참 많았음)로 떨어져 물에 빠지기도 했지요. 
수푸루지 다리 뒷쪽 산자락과 계곡에 보이는 마을이 수푸루지마을입니다. 수푸루지 마을 뒷산에는 현재 대림대학교가 들어섰으며 임곡1.2지구에 이어 남아 있는 동네에 대해서도 재개발사업이 추진중입니다.

태평방직에 대해 알아볼까요. 태평방직은 1953년에 자본금 1억환으로 안양읍 안양리 97번지 일대에 설립된 삼흥방직이 전신으로 당시 방기 1만추, 직기 50대를 구비하고 1954년 10월부터 생산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자금사정을 겪자 안양3동에 있는 금성방직이 1956년 5월 15일 인수하면서 안양사람들의 기억에는 태평방직을 떠올립니다.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은 1960-70년대 안양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웁니다. 당시 두 공장에만 3천여명의 여성근로자들이 일해 월급날에는 안양시내 식당과 술집이 호황을 누릴 정도로 봉급 특수가 안양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지요. 특히 충청,전라,경상도에서 상경한 여성 근로자들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형제 친척들까지 안양으로 올라오는 배경으로 인해 현재 안양에 팔도민이 골고루 분포돼 있고 타 위성도시와 달리 팔도향우회가 매우 활성화 된 것도 하나의 배경이 아닐가 싶습니다.
태평방직은 1967년 10월 금성방직과 함께 대한농산(대농)에 매각되고 한국토지금고에 의해 택지개발을 통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