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170513]안양, 조선시대 만안교.사찰 등 석재 채취 현장?

안양똑딱이 2017. 5. 19. 07:25

 

#안양 #석재 #돌 #만안교 #안양사지 #중초사지 #채석/
우리 조상들은 청동기 고인돌 시대부터 돌을 잘라내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방법은 잘라야 할 선에 따라 구명들을 열지어 파고 마른 단단한 나무를 구멍에 박고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하면서 그 단단한 돌도 쪼개지지요.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건너편 낙원마을 뒤 산자락(안양2동 예술공원 118번길 21-27 뒤)에 오르면 커다란 바위들이 있는데 일부 바위는 돌을 잘라낸 흔적이 있고 일부 바위는 돌을 잘라내기 위해 구멍을 뚫어놓은 것들도 있습니다.
과거 여기서 잘라낸 석재들은 인근의 만안교를 놓는데 또는 중초사와 안양사의 당간지주, 석탑 등을 만들때 쓰였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 현장은 안양2동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던 곳인데 김귀연 전 안양2동주민자치위원장의 안내로 찾아가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참고로 김귀연 위원장은 기록에 대해 누구보다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옛사진으로보는안양의재발견(2009.11), '내고장안양2동의흐름'(2014.12) 등 안양2동의 옛사진들을 수집해 2차례나 자료집을 발간했고 지금은 멀리 대부도에 이주해 살지만 안양으로 자주 마실을 나오지요.
일부 주민들의 말로는 만안교의 석재와 돌 재질이 같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과학적으로 분석을 하면 사실 관계를 알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것은 시 또는 문화원 차원에서 심도있게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기록을 보면 만안교는 1795년(정조 19년) 당시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전국의 석수쟁이들을 불러 모아 단 3개월의 공역 끝에 같은해인 1795년 9월에 길이 15장(약 31.2m), 폭 4장(약 8m), 높이 3장(약 6m)에 7개의 갑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을 깐 돌다리이지요.
만안교가 빨리 완공을 보게된 것은 경기도관찰사를 위시하여 병마수군절도사, 수원, 개성, 강화 등의 유수(留守)까지 동원될 만큼 큰 사업이었지만 안양천 주변과 삼성산 등에 교량 건축용 좋은 석재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석재들을 어디서 채취했는지는 기록으로, 또 현장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채 사실 관심 갖는 이들도 없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