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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서남쪽에 자리잡은 사찰 수리사

안양똑딱이 2016. 5. 5. 17:44
[볼기행]수리산 서남쪽에 자리잡은 사찰 수리사


수리산 서남쪽에 자리잡은 사찰
소재지;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군포시를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수리산 거룡봉 남쪽에 위치한 1천5백년의 전통사찰 수리사는 신라시대 진흥왕 18년(558년)에 수도중에 나타난 부처님으로부터 “너는 다음 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은 운산(雲山)스님에 의해 창건돼 ‘도를 닦아 이치를 깨달았다 뜻’의 수리사(修理寺)로 명명된 고찰이다.

절의 기록이나 석물이 남아 있지 않아 역사를 헤아려 볼 길이 없다. 하지만 예부터 견불산수리사(見佛山修理寺)라 하여 수리산의 유일한 고찰로 오래 존속해 온 것이 확실하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부속 암자만 12개를 거느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 수리사는 임진왜란 중에 크게 파손 되었고,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재건했음에도 불구하고 6.25동란을 거치며 또다시 파괴돼 예전의 웅장한 모습을 잃었다.

주춧돌과 절터만이 남아있던 수리사는 1955년 꾸준히 재개된 보구언사업을 통해 현재는 대웅전,나한전,삼성각 등의 법당과 석등2기,3층석탑,입불좌대(立佛座臺)등이 자리잡은 화성 용주사 말사로 군포시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그러나 수리사가 예전에 얼마나 큰 절이었는 가는 현재의 경내 주변 수만평에 이르는 절터와 수리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50년대 말 한 스님이 대웅전 뒤편에서 낮잠을 자다가 부처님 호통소리에 놀라 잠을 깻는데 ,그 자리를 파보니 오동나무 상자에 든 금동불상이 나왔으며,그 이전에도 전쟁의 화(禍)를 피해 묻어둔 성보(聖寶)들이 지금도 사찰 주변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98년에도 당시 수리사 신도회장이던 송만용 전시원의 부인 문옥순씨가 3번의 선몽(禪夢)을 꾼 끝에 대중전에서 약2백m 떨어진 산 중턱에서 고려초기 것으로 추정되는 돌부처와 좌대를 찾아내기도 했다.

정부에서도 수리사의 이러한 전통과 역사를 인정,지난 88년 뒤늦게나마 전통사찰 제86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고 금번에 대규모 중창불사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지난 96년 임기 4년의 주지로 부임해 수리사 옛모습 복원사업을 위해 연임된 성견스님은 “수리사가 이번에 추진하는 중창불사는 단순히 불교계만의 숙원사업이 아니라 27만 군포시민이면 누구나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문화재로 변모시키는 우리 모두의 사업”이라며,시민들의 적극적인 성원과 협조를 당부했다.

오는 12월8일 수리사 경내에서 진행될 대웅전 기공식에는 한국불교계의 대표인 대한불교 조계종 정대 총무원장이 참석해 군포시의 문화재로 거듭나는 수리사의 발전을 축원하는 등 내외빈,불자,시민 등 3천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향후 수년이 소요될 수리사의 중창불사 계획이 발표되며,유명 연예인들로 구성된 축하사절단의 공연과 달마도 그림으로 유명한 동양화가 담원 김창배 화백의 선화 전시회도 함께 열리게 된다.

수리사는 수리산의 푸른 산림과 산새소리,맑은 공기가 어우러져 수도권에서도 손꼽히는 수도 도량으로 지난 1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민족의 흥망성쇠를 온 몸으로 겪으면서도 경허 큰 스님 등 이 시대까지 추앙받는 고승들을 배출하며 수리산을 지켜온 고찰로 현시대에 이르러 커다란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군포시에서는 하나의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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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웅전과 종각, 칠성각, 산신각 등이 있는데 절 주변에 숲이 울창하여 쉼터로도 손색이 없으며 가을이면 절뒤에 숲속에서 밤을 줍는 재미도 쏠쏠하다.

뒷산을 오르면 공군부대가 있고 옆길로 넘어 안양9동 병목안쪽으로 향하는 등산길을 올라서면 능선을 보며 서쪽으로 안산과 멀리 인천앞바다가 보이고 안양으로 내려오기 전 옛 봉화대 돌산을 오르는 것도 좋다.

능선길 중간에 헬기장을 지나 뒤로 돌산이 있다.

승용차 1번 국도 이용, 안양역 에서 병목안 방향으로 2km정도 직진.
대중교통 안양시내버스 10, 11-3, 13, 15-2,, 913번(2~3분간격) 병목안 종점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