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60219]안양 평촌 순우리말 옛지명 <벌말오거리> 주변

안양똑딱이 2026. 2. 19. 12:16

 

2026.02.19/ #도시기록 #안양 #평촌 #벌말/ 안양 인덕원 벌말오거리와 인덕원교 및 시민대로 주변 풍경.

과거 한앙에서 수원을 거쳐 삼남지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인덕원 옛터를 거쳐 학의천을 따라가는 삼남로를 이용하여야 했는데, 삼남길의 인덕원 마을 바로 아래에 위치한 곳이 현재의 평촌동으로 과거 벌말과 민배기로 불리웠다
관아와 원이 있어 지체높은 사람들이 살거나 묵었던 윗 마을 인덕원과 아랫 마을 갈미 사이에 위치한 벌말과 민배기는 평화롭고 한적한 평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산업화 시기, 벌말에 깨끗한 수질을 가진 학의천을 바탕으로 동일방직과 오뚜기식품, 가나안제과, 크라운제과 등의 다수의 공장들이 설립되기 시작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동일방직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인덕원 대우 아파트와 재개발된 일부 지역들을 제외하면, 흥안대로 동쪽에 위치한 평촌동 대부분의 주택이 이 시기에 지어졌다. 따라서 평촌신도시 개발 당시 위 지역엔 이미 주택가들이 형성되어 대지 수용이 불가했으며, 흥안대로 서쪽 지역 위주로 신도시가 계획되는과장에서 배제돼 2020년대 초까지도 농촌 풍경이 남아았던 곳이다.

평촌동에는 벌말도서관, 벌말초등학교, 벌말오거리 등  평촌의 옛지명인 벌말 상호를 사용하는 곳들이 있다. 지하철 4호선 평촌역도 개통 초창기에는 벌말역이라 쓰고 불리웠는데 안양시의회에서 바꾸고 말았다.

 

벌말(坪村)

산이 없는 허허 벌판에 자리잡고 있어 벌말(坪村)이라 불렀는데, 그 후 마을이 또 생겨 두 벌말 또는 이 평촌(二坪村)이라 했으며, 이를 줄여 이동리라 칭하였다. 예전에는 한강에서 과천-안양에 이르는 모든 취락 중 가장컸던 벌말은 조선 초기에 괴산 음씨(후손-음순배, 음경택 등)가 최초로 살아 음촌 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그 후 밀양 박씨, 전주 이 씨, 김해 김씨 등이 세거해 왔다. 벌말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서울-과천-군포-남양간 도로를 개설한 후 1969년에 동일방직 (평촌동 1)을 비롯하여, 오뚜기식품(평촌동 160), 1982년에 가나안제과(평촌동 81-4) 등의 공장이 건립되면서 인구가 늘기 시작하였다. 발말 대부분 지역이 평촌신도시로 개발된 이후에도 동일방직(현 대림아파트) 뒷편에 예전 마을 일부가 마치 구도심처럼 남아 유지돼 오다 최근에 재개발이 추진중이다. 벌말 출신 인물로는 2018 728일 타계한 고 음순배씨를 손꼽는다. 음순배 씨는 안양시의회 1.2대 시의원을 역임했으며, 안양시새마을회 2.3.6.7대 회장을 지내면서 안양시 새마을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구() 평촌동 청사 부지 기부, 장학사업 전개 등 기부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했으며, 안양시 새마을회관 및 평촌동 벌말경로당 건립 등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등 지역 발전의 선구자로 장례 영결식을 안양시 최초의 시민장(市民葬)으로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