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지도읽기 54

[지도]18세기 중반 제작된 해동지도-경기도편(보물 1591호)

2023.01.29/ #아카이브 #옛지도 #해동지도 #海東地圖 #경기도/ 출처: 문화재청 지도 보기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21115910000 해동지도』의 「경기도」부분(18세기 중반, 채색필사본, 47.5×60㎝, 서울대학교 규장각).보물 제1591호 해동지도는 조선 후기 전국의 군현을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를 수록한 지도첩이다.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군현 지도, 도별도, 조선 전도와 함께 중국도, 황성도, 북경 궁궐, 왜국 지도 따위가 포함되어 있다. 원래 8첩이었으나 지금은 6책이 남아 있다. 지도는 당시 비변사와 함께 지도 제작을 주도하였던 홍문관에서 만들어..

[지도]1949년 안양면의 읍 승격 이후인 1961년 시흥군 관내도

① 안양면의 읍 승격과 동면 일부지역의 서울 편입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자 조선은 식민지에서 벗 어나 미군정의 잠정적 점령하에 놓이게 되었다. 미군정기 지방제도는 식민지적 색채가 짙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일제하의 지방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인 11월 17일에는‘지방행정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 공포됨으로써 우리나라 지방제도의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시흥군과 관련된 행정구역 변화는 1949년 안양면의 읍 승격과 동면 일 부지역의 서울 편입이다. 즉 1949년 8월 13일에 대통령령 제162호로 공포되어 8월 14일에 시행된‘읍 설치에 관한 건’에 의해 시흥군 안양면이 안양읍으로 승격되었고, 같은 날 대통령령 제159호로 제정..

[지도]일제강점기 시흥군 약도(현 광명지역 교통기반 시설)

2022.12.08./ #옛지도 #아키이브 #기록 #시흥군 #근대 #시흥군약도(始興郡略圖)/ 일제강점기 경기도 시흥군의 도로·철도 등의 기반 시설을 표시한 약도. 재질은 한지이며, 도면 크기는 가로 79.7㎝, 세로 52.4㎝이다.전체적으로 도로와 철도 그리고 수계가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이 주요 특징이다. 부군계(府郡界), 국도(國道), 면계(面界), 삼등 도로(三等道路), 도로, 하천, 철도, 정거장, 군청, 동리(洞里), 면사무소, 우편국, 경찰서, 학교조합,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 보통학교, 분감(分監), 금융조합, 도로상의 판로(阪路), 산악(山岳) 등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군현의 개정 전 면 경계는 점선으로, 면의 이름은 검은색으로 처리했고, 개정 후 면 경계는 붉은색 점선으..

[지도]1979년 안양의 주요시설 표기된 그림 약도

2022.11.12/ #기록 #지도 #안양약도 #아카이브 #자료/ 1979년 3월 14일자 경향신문 지령10000호특집 江山萬里(강산만리) 안양편에 삽입된 안양 약도. 당시 안양의 주요시설들이 표기돼 있다. 관악산, 삼막사, 불성사, 망월암 등 주요사찰과 유유산업, 현대양행(만도기계), 태평방직, 동일방직, 금성사(금성통신), 락희유지(럭키화학.하이타이) 등 굴뚝공장과 함께 시청(안양6동.현 만안구청), 관악전철역, 명학전철역, 신학대학(현 성결대학교) 등이 표기.

[지도]기억을 더듬어 그린 어릴적 장내동골목 고샅길 그림지도

마을길과 집사이를 연결하는 앞마당길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것 같은데 지난시절의 내가 살던곳은 지금의 기준으로보면 시골이었고 그 시골의 작은 장안 골목, 내가 기억속에서 찾고자 한 그길을 "고샅길"이라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것이다. 그 고샅길을 수없이 넘나들며 뛰어놀며 감정의 변화 쌓아갔을텐데, 언제부터인지 그 골목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었다. 자동차가 불편하지 안게 다닐 수있는 몇십메타짜리 대로를보며 차가 움직이는데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과 어느날 십충짜리 이상의 새로운 건물이 보이면 유심히 건물의 이름이며 용도를 알아보건만, 내 소중했더 기억들이 잊혀지고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수가 없었다. 그많큼 바쁘게 살아왔을터이고 한편으로는정신을 놓고 살아왔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에 대..

[지도]1940년경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이용구선생 손그림)

1940년경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 중심가(현 안양 만안구 지역) 약도(자료 발굴; 건축사 최승원 선생님) 안양3동 양짓말에 사시던 이용구 선생께서 손으로 그린 그림지도로 안양포도 재배를 시작한 오끼이 집과 농장, 과거 수암천 물길, 안양역, 미륵당, 주재소와 신사, 변전소와 우체국, 우시장, 양조장 등의 위차가 기록돼 있다. 이 지도를 그린 이용구(李瑢求) 선생은 1926년 10월생으로 안양3동 양지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유년시절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우고 9살 나던 1934년에 안양공립보통학교를 7회로 입학해서 졸업했다. 이후 경기공립상업학교를 다닌 선생은 졸업한 이듬해인 1945년 1월부터 40년간 근속으로 철도청에서 근무한 후 1984년 정년으로 공직생활을 마쳤..

[안양권지도]일제강점기 지도속 안양(양지동과 담내동)

안양초교 27회동창회 블로그에서 최승원님 자료와 댓글 양지마을(원복상) 20.07.24 17:55 첫댓글 그시절 우리집이 보이네요. 양지마을 至字 와 洞字사이 왼편이 우리집 입니다. 현재는 서초등학교 앞이고요. 기능 더보기 양지마을(원복상) 20.07.24 18:31 양지마을에서 지 자가 해방후에는 알지를 쓴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방전에는 이를지 자를 셨군요. 일본글씨는 양지마을 담안마을 이라 써 있군요. 기능 더보기 운제(촤승원) 작성자 20.07.25 20:52 하천변 인가요? 기능 더보기 운제(촤승원) 작성자 20.07.25 20:54 @운제(촤승원) 양지 음지로 봅니다. 기능 더보기 스쿨보이(문수길) 20.07.25 06:12 옛날엔 양짓말, 다만마을이라 알고 있었는데~ 기능 더보기 운제(촤승원) ..

[안양권지도]1976년 안양시(현 만안구 지역) 지도

1977년 3월 국립지리원이 발행한 안양의 현 만안구(안양동.호계동.비산동) 1:5000 지도 1974년 6월 항공촬영 1976년 편집 지도 상단 좌측 끝자략이 안양역이다. 역 뒤로는 1960-70년대 현찰을 가장 많이 보유해 삼성 이벙쳘 회장도 돈을 빌리러 갔다는 얘기를 들었던 단사천 회장이 경영하던 한국특수제지 공장(현 안양1동 삼성 레미안 아파트)이 보인다. 당시 이 공장은 광택이 나고 빳빳한 아트제지를 생산하던 곳으로 공장안까지 수송용 철길이 놓여 있었다. 한국툭수제지와 태평방직 공장 사이로는 1940-60년대 안양읍 시절 다운타운이었던 구사장(시대동)이다. 구시장(시대동)은 1968-9년 당시 안양읍내에서 가장 큰 번화가로 안양역에서 인덕원, 과천, 청계, 서울강남(말죽거리) 으로 가는 도로의 ..

[안양권지도]군포안양의왕 산수여지도(박찬응. 2919)

지난해 페이스북에 올려진 지도를 보고 완성되면 제공해 줄것을 요청했던 박찬응 관장의 신 안양권역 산수여지도입니다. 안양사람이 지금은 군포에 살다보니 금정을 중심에 둔 도로망과 산본천과 당정천, 수리산 등의 하천과 산은 물론 실개천, 호수, 사찰 지명까지 군포에 중심을 둔 그림으로 그려졌네요. 수리산과 관악산과 청계산,백운 줄기에 둘러싸인 군포,안양,의왕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이며 세상의 중심으로 알고 살아온지 반백년이 지났는데 아직 그중심에 서서 그린 변변한 그림지도가 없어서 한번 시도해보았다. 어줍지않게 선조들의 흉내를 내어보았으나 쉬운일이 아니다. 내놓기가 부끄러웠으나 앞으로 수십장 그리다 보면 통하지않을까 하여 졸작이지만 올려놓고 보기로 한다. 제목 글씨와 낙관은 공제 진영근선생이 쓴 것이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