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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6]대한제국기, 시흥군 민중운동과 의병

[금천신문]3.1운동 100주년 기념 우리동네 역사 찾기시흥군, 민중운동을 견인하는 에너지원최석희 ・ 2019. 4. 11. 13:08​ '3.1운동 100주년 기념 우리동네 역사 찾기'를 주제로 우리동네 '마을신문 금천in'에 기고한 마지막 기사 입니다. 원문보기 1898년 1차 시흥농민봉기와 1904년 2차 시흥농민봉기 그리고 1919년 시흥군의 3.1운동을 볼 때 시흥군은 우리나라 근대 민중운동의 중심지 였다. 당시 시흥군은 금천과 구로, 영등포, 동작, 관악, 광명과 안양, 과천, 의왕, 안산을 포괄하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1차 시흥농민봉기는 1894년의 갑오농민전쟁이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지 4년 만에 일어났다. 당시 위정자들은 갑오개혁을 단행하였지만 토지개혁 등 농민들의 요구는 수렴되지 않았으며..

[20250205]한글학자 이희승 선생의 내가 겪은 3·1운동

[금천마을신문]금천구의 3.1운동-2] 내가 겪은 3·1운동-이희승2019. 2. 28. 11:03원문보기 https://gcinnews.tistory.com/4966 내가 겪은 3·1운동-이희승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은 시흥군(의왕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희승 선생은 “내가 겪은 3·1운동”을 『3·1운동 50주년 기념논집』에 1969년 게제했다. 본 지는 시흥군 출신의 이희승 선생의 글을 100주년을 맞아 다시 읽어봄으로써 당시의 분위기를 되짚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회승 선생은 “호시탐탐한 일본은 1910년 기어이 한일합방이란 명목으로 한국을 완전히 병탄하고 말았다. 고종은 이태왕이란 치욕의 칭호 밑에서 10여년을 지내다가, 1919년 1월 21일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