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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8]42세때 국회의원에 당선 3선을 역임한 윤국노의원

2023.01.28./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인물 #안양 #윤국노 #국회의원 윤국노(尹國老) (1936∼1986) 정치인. 본관은 해평. 호는 도암. 일제강점기 당시 경기도 평의원을 지낸 윤경섭과 어머니 김복성 사이에서 5형제 중 4남으로, 안양시 안양동 634에서 출생했다. 큰형 학노는 전 국회의장 이재형(작고)과 군포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광복전에는 평양지법 판사. 광복후에는 대구.;대전.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원로법조인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법관 연임을 거부한 유일한 율사로 기록돼 있다. 양조업을 하는 부친 덕분으로 비교적 유복하게 자라 어려서부터 쌀을 몰래 빼어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하고, 주말이면 안양2동에 있는 안양기독보육원을 찾아 원생들과 하루해를 보내기도 했다. 훗날 JC(청년회의..

[20230128]1992년 안양시지에 실린 <만안교>에 대한 기록

9. 萬安橋 안양을 대표하는 문화재의 하나로, 안양문화를 상징하는 文化祭의 유래가 된 조선 후기의 虹霓石橋이다. 이 다리의 축조는 조선 제22대 임금으로 효심이 지극 했던 正祖(1776~1800)의 명에 의해 가설되었다. 정조는 英祖(1694~1776)의 왕 세손으로 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 했으나, 아버지思悼世子(1735~ 1762)는 영조의 왕세자이었으나 부왕인 영조에 의해 영조 38년 (1762) 윤 5월 13일 왕세자의 지위에서 폐출되어, 뒤주속에 갇힌지 8일째 되는 동년 윤 5월 21일 죽은 비운의 인물이다. 세자가 죽은 후 영조는 세자의 位號를 회복시킴과 동시에 시호를 思悼라고 하고, 세자빈을 惠嬪이라 하여 비명에 간 아들의 영혼을 위로 하였으나 이미 지나간 비극이었다. 영조가 재위 52년(17..

[20230128]1974년 옛 안양시청사(현 만안구청) 신축 조감도

2023.01.28/ #아카이브 #옛사진 #안양 #기록 #기억 #구안양시청 #현만안구청 #1974년/ 2023년 올해는 안양시가 읍에서 시로 승격한지 50주년이 되는해로 관련 자료들을 발굴하고 있다. 이 사진은 1974년 발간한 제1회 안양시통계연보 자료집에 수록된 기록으로 당시 안양6동에 자리했던 안양시청사(현 만안구청)의 신축 조감도이다. 구 안양양시청(현만안구청)이 들어선 곳은 과거 밤나무가 무성한 율원(栗園) 이었다. 경기도 임업시험장(1938~1971)으로 쓰이다가 안양읍이 1973년 시로 승격하였으나, 새 청사가 마련되지 못한 관계로 안양1동(현 안양일번가)에 있던 안양읍 청사에서 일시 업무를 보다가 시 승격 2주년이 되는 1975년 7월 여기에 최초의 안양시 청사를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청사..

[20230127]1992년 안양시지에 실린 주간조선 이규태컬럼 만안교

2023.01.27/ #기록 #만안교 #안양시지 #이규태컬럼/ 만안교는 본래 안양대교에서 동쪽으로 안양유원지 길을 따라가다 만안로와 서로 만나는 +자 교차로에서 북쪽으로 약 20m 지점에 있었다. 그러나 구 한말에 이르러 일제가 경부선을 부설하면서 안양천을 남쪽으로 우회한 후부터 다리로서 의 효용가치는 상실되어, 다리의 위와 아래지역에 공장과 민가가 들어섰는가 하면 한 때는 다리 밑은 넝마주이 등의 안식처(?)이기도 했으며, 광복후 국도1호선에 포장을 실시하면서 다리위에 콜타르를 부어 만안교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언론인 이규태(1933년생, 조선일보 논설위원)가 1976년 만안교를 둘러본 후

[20230127]1978년 안양6동에 있던 안양시청사(현 만안구청)

2023.01.27/ #아카이브 #옛사진 #안양 #기록 #기억 #구안양시청 #현만안구청 #1978년/ 2023년 올해는 안양시가 읍에서 시로 승격한지 50주년이 되는해로 관련 자료들을 발굴하다. 이 사진은 1978년 발간한 제5회 안양시통계연보 자료집에 수록된 사진으로 당시 안양6동에 자리했던 안양시청사(현 만안구청)의 전경이다. 사진을 보면 현재 만안보건소가 들어선 구청 남쪽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청사 울타리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본관앞 정원에 나무들이 안보여 의외다. 구 안양양시청(현만안구청)이 들어선 곳은 과거 밤나무가 무성한 율원(栗園) 이었다. 경기도 임업시험장(1938~1971)으로 쓰이다가 안양읍이 1973년 시로 승격하였으나, 새 청사가 마련되지 못한 관계로 안양1동(..

[20230126]1974년 안양시청 별관에 대해 아시는분 있나요?

2023.01.26./ #아카이브 #옛사진 #안양 #기록 #기억 #안양시청별관 #1974년/ 2023년 올해는 안양시가 읍에서 시로 승격한지 50주년이 되는해로 관련 자료들을 찾아 보았다. 이 사진은 1973년 7월 1일 시흥군 안양읍에서 안양시로 승격한 다음해인 1974년 안양시가 시 승격후 처음 발간한 제1회 안양시통게연보 자료집에 수록된 사진으로 안양 중앙동(현 안양일번가)에 있던 안양시청 별관이라 기록돼 있다. 안양 중앙동에 안양시청 별관이 있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안양 중앙동(현 안양일번가)인지 아니면 다른곳인지.기억이 안난다, 건몰을 볼떼 옛 읍사무소 뒷편(현 꼬꼬바베큐쪽)에 있던 건물이 아닌가 싶다. 이 건물에 대해 아시는분 계신가요? 시 승격 당시의 안양은 인구 11만여 명의 ..

1974년 안양 중앙동(현 안양일번가)에 있던 안양시청사 전경

2023.01.26/ #아카이브 #옛사진 #안양 #기록 #기억 #안양시청 #1974년/ 2023년 올해는 안양시가 읍에서 시로 승격한지 50주년이 되는해로 관련 자료들을 찾아 보았다. 사진은 안양 중앙동(현 안양일번가)에 있던 안양시청사로 1973년 7월 1일 시흥군 안양읍에서 안양시로 승격한 다음해인 1974년 안양시가 시 승격후 처음 발간한 제1회 안양시통게연보 자료집에 수록된 사진이다. 시 승격 당시의 안양은 경부선 철도 아래로 안양천이 흐르고 지역특산물인 포도가 알알이 익어가는 인구 11만여 명의 작은 도시로 대부분의 관공서가 현재의 안양1번가(당시 중앙동 현 안양1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2023년 1월 1일 현재 안양에는 54만8,228명에 달하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1941년 10월 ..

[안양]1973년 안양읍 시 승격 당시 거리 풍경(1973.03.05)

2023.01.21/ #아카이브 #영상 #기록 #대한뉴스 #안양 #1973년 #승격 금년(2023년)은 안양시가 읍에서 시로 승격한지 50주년이 되는해다. 대한뉴스 제922호(1973.03.05)에 실린 영상에는 시 승격 당시의 현 만안구 원도심과 읍사무소, 경찰서 등 관공서와 은행 등이 몰려있던 안양 중앙동(현 안양일번가) 의 거리 풍경이 담겨져 있다. 제작연도 1973-03-05 상영시간 01분 01초 영상출처 대한뉴스 제 922호 영상보기 https://www.ehistory.go.kr/page/view/movie.jsp?srcgbn=KV... 1973-03-05상영시간 01분 01초출처 대한뉴스 제 922호 행정구역 대폭개선 전국 행정구역 개편. -성남단지의 지역개발,시로 승격(성남시). -부천시..

[20230121]안양 동편마을 입구에 세워져있던 4H클럽 표석

2023.01.21/ #아카이브 #4H클럽 #안양 #동네 #골목 #기록 #기억 #동편마을 #표석/ 안양시 관양동 동편마울이 개발되기 전인 1970-2004년까지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던 4H클럽 표석 사진이다. 농촌마을에서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천지개벽을 한 동편마을 입구에 새워져 있던 추억의 지덕노체 4H 클럽 콘크리트 팻말. 2004년부터 관악산 남쪽아래 명당이라 불리우면서 안양에서 유일하게 농사지으며 아늑했던 전원마을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4H클럽은​ 실천을 통해 배운다는 취지로 설립된 세계적인 청소년 단체로 1892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조직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52년 국가시책사업으로 채택되어 새마을 운동으로 이어졌다. 4H클럽은 19세기말 미국사회가 공업화로 진행되면..

[20230121]1969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의 새해 맞이

2023.01.21/ #아카이브 #안양 #석수동미군부대 #sine1969 #기록 #역사 #석수동 #닐미샬로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미군부대(83병기대대)의 1969년 겨울 풍경. 부대 게시판에 새해 인사 글씨가 부착된걸 블때 1969년 1월에 찍은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진들은 부대 전령으로 근무했던(1968년 3월~1969년 4월) 닐 미샬로프씨가 컬러 슬라이드필름으로 촬영한 풍경이다. 컬러사진이 아주 귀했던 당시의 모습이 색상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는 자료다. 83병기대대는 안양 삼성천옆에 자리했던 대규모 부대(현재 석수 이편한세상아파트)로 1970년대 초반까지 있었다. 이 부대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로 박달동 수리산 자락의 군용지라 불리우던 탄약 벙커에 있던 전술 핵탄두와 로켓을 관리.운용했다.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