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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 군포.안양.의왕『10대뉴스』

2001년도 군포.안양.의왕『10대뉴스』 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방송-내일신문 공동 선정 안양지역시민연대와 안양방송, 내일신문은 2001년 한해를 마감하며 안양.군포.의왕지역의 『2001년도 안양지역 10대뉴스』를 공동으로 선정하였다.(번호가 우선순위는 아닙니다) (1) 지역간의 갈등, 안양군포의왕 고교평준화 시행 경기도교육청은 7월 31일 현재 중학교 3학년부터 적용될 2002학년도 수도권 5개지역(안양권.수원.성남.고양.부천)의 고입평준화에 따른 학생배정 방안은 1차 선지원-후추첨, 근거리배정 효과를 절충한 당초 시안의 기본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1차 배정비율을 지역에 다르게 설정하는 안으로 최종 확정 발표했다. 또 논란속에 특수지(평준화 비적용 대상) 지정 여부가 검토됐던 의왕시 소재 고교는 평준화대상..

시민운동자료 2016.06.13

2001년도 안양권 발생 주요뉴스 종합

2001년도 안양권 발생 주요뉴스 종합 아듀 2001년! 안양권 발생 주요뉴스 종합 정리 안양권역의 2001년도 10대뉴스를 선정해 지난 26일 발표한 바 있는 안양지역시민연대는 안양권역인 안양.군포.의왕에서 발생했던 일들과 관련해 보도된 뉴스와 소식들중 요점만을 정리한 "아듀 2001년! 안양권 발생 주요뉴스"를 정리해 2001년을 마감하는 마지막 날인 31일 발표한다. 이번에 정리한 2001년의 주요 뉴스들은 안양시민연대에서 매주 발행해 온 시민연대 전자팩스신문에 게제된 소식뿐 아니라 안양권과 관련 다양한 정보들을 담아 온 홈페이지의 화제집중과 공지사항 그리고 뉴스게시판에 올라있는 소식들을 지역, 시민단체, 행정, 교육, 인물 등으로 분류해 일자별로 나누었다. 안양시민연대는 지난 1년동안 전자팩스신문..

시민운동자료 2016.06.13

2000년도 군포.안양.의왕『10대뉴스』

2000년도 군포.안양.의왕『10대뉴스』 안양지역시민연대 안양포커스와 공동 안양지역시민연대 안양포커스와 공동으로 2000년도 안양지역『10대뉴스』선정 안양지역시민연대는 지역 주간신문인 안양포커스와 공동으로 안양.군포.의왕권역인 안양지역의 2000년도 10대뉴스를 선정하고 가장 큰 뉴스로 "2001년 고교입시 평준화 시행 눈앞"을 꼽았다. 1.2001년 고교입시 평준화 시행 “눈앞” ◀내년부터 사실상 고교입시평준화가 시행된다. 경기도교육청 용역에 의해 고교입시제도를 연구한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성남시 분당구, 부천시, 고양시, 안양권역 등 4개지역을 모두 평준화 적용지역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 하지만 이 용역보고서에 의왕시가 제외돼 있어 주민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한편 2000년 안양권 고교입시에서..

시민운동자료 2016.06.13

[기사]서울에도 경기에도 있는 시흥, 왜?

[기사]서울에도 경기에도 있는 시흥, 왜? [2015.10.07]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서울에도 경기에도 있는 시흥, 왜? 조선시대 영등포까지 거느린 거대도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땅 일부 서울 편입 김범수 기자 발행일 2015-10-07 제37면 광명·안산 등 독립으로 해체 위기도 현재 42만 산업도시 제2 중흥기 맞아 ‘서울의 시흥동과 경기도 시흥시, 어느 지역이 먼저일까’. 서울을 오가는 경기도민은 한 번씩 의문이 생기는 지역이 있다.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과 경기도 시흥시다. 심지어 한자어 역시 시흥(始興)으로 같다. 이처럼 다른 지자체에서 같은 지명을 사용하는 이유는 쪼개지고 축소된 ‘시흥군’ 행정구역 변천사에 있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경기도 시흥군은 오늘날의 서울 영..

[기사]길에서 뿌리를 찾다· 안양 시흥로(현 만안로)

[기사]길에서 뿌리를 찾다·15·끝 안양 시흥로(현 만안로) 경인일보 [길에서 뿌리를 찾다·15·끝]안양 시흥로(현 만안로) 애민정신 다져진 능행 안양상권 '탄탄대로' 정조, 사도세자 6차 원행부터 시흥로 이용 조선시대 교육·과학·예술 '통신사 역할' 1930년대 섬유관련 공업지역 자리매김 행정구역·경계 변경 거듭 교통요충지로 ▲ 조선 후기만 해도 왕의 행차시에 이용되는 다리는 행차시에만 임의로 길을 닦고 나무로 된 다리를 놓았다가 행렬이 지난 이후에 다시 철거하는 관례가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돌로 만안교를 건립하면서 이같은 관례를 과감히 철폐했다. 조선 22대 정조(正祖·1776~1800년 재위)는 역대 누구보다도 궁궐 밖 행차가 많은 임금이었다. 이 가운데 아버지 사도세자가 모셔진 현륭원(顯隆園) ..

[기사]길, 그곳으로 가다·30 제주로-국도 1번의 모태

[기사]길, 그곳으로 가다· 제주로-국도 1번의 모태 [경인일보] 30. 제주로 >1< -국도 1번의 모태 조선후기 6대로(大路) 가운데 서울에서 제주까지 잇는 서부의 간선도로가 '제주로'이다. 이 길은 해남에서 바닷길을 통해 제주까지 닿았으므로 육지부의 종착점 지명을 따 '해남로'라고도 하고, 동래로의 별칭이 영남대로이듯 이 길은 '호남대로'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제주로는 경기도에서 과천~수원~진위~평택 등을 경유하며, 영화역·장족역·동화역·청호역·가천역 등이 본 도로를 관리했다. 제주로는 문헌에 따라 통영로의 분기로로 취급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수원로와 더불어 1번 국도의 모태가 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도이다. 1번 국도는 일제시기에 신작로로 정비된 제주로를 근간으로 한 것이었으나, 산업화 과정..

[자료]청계산 청계사와 조심태 장군

[자료]청계산 청계사와 조심태 장군 김산 홍재인문학연구소장 [山과 사람, 京畿를 세우다]청계산 청계사의 조심태 장군 정조의 개혁 도운 최측근…사도세자 원찰 지정 주도 청계산은 한남정맥의 주산중의 하나이다. 안양, 의왕, 서울의 양재까지 아우르는 이 산은 경기중 남부 지역의 시민들에게 좋은 안식처가 되는 곳이다. 청계산을 오르는 이들 대부분이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올라가서 이수봉을 지나 국사봉을 거쳐 양재동 옛골로 내려오는 산행을 한다. 약 3시간 반에서 4시간에 이르는 이 산행은 청계산 주요 봉우리를 거치면서 산행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가장 대중적인 이 산행로와 더불어 청계산 등산의 진미를 보여주는 곳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이 바로 청계사 등산로이다. 청계산에 청계사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기억-정진원]수푸르지 [숲골>숲울>수푸르지, 임곡(林谷)]

[기억]수푸르지 [숲골>숲울>수푸르지, 임곡(林谷)] 정진원/ 문학박사, 수필가 수푸르지 [숲골>숲울>수푸르지, 임곡(林谷)] 지금 안양역 동쪽 지역 안양1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한 아파트 자리에 일찍이 정기시장이 형성되었다. 안양에서는 유일한 시장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안양중앙시장이 나중에 만들어지면서 이곳은 구시장이 되었고, 얼마 지나다가 사라져버렸다. 시장의 북쪽 끝부분에 있었던 소시장터를 지나서 안양천 다리(임곡교)를 건너면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을 ‘수푸르지’라고 하였다. 그것이 여느 동네 이름과 달라서 이상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마을 이름이 한자로 ‘임곡’임을 알게 되었다. 한자 지명 임곡(林谷)에서 그 훈(訓)을 빌려 써서 수푸르지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역순으로 변화된 ..

[기억-정진원]왜 하우고개인가?

[기억]왜 하우고개인가? 정진원/ 문학박사, 수필가 ‘하우고개’ 란 고개 이름이 우리나라 여러 곳에 있다. 의왕시 청계동에서 성남시 판교(너더리) 쪽 뫼루니로, 부천시 소사동에서 시흥시 대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하우고개이다.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에서 아미리로 넘어가는 하오고개도 있다. 왜 하우고개라 하였을까? 넘기 어려운 고개를 힘겹게 오를 때 ‘하우 하우’ 가쁜 숨소리에서, 아니면 고개 마루에 올라앉아서 내쉬는 ‘하아― 하아―’ 소리에서, 또는 산적이나 귀신을 만난 두려움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온 외마디 소리에 따른 의성어가 지명으로 굳어졌나? 학고개(鶴峴)가 ‘학고개>학오개>하우고개’로 음운변화를 거쳐서 하우고개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마도 정설일 듯싶다. 여우가 출몰하는 여우고개[호현狐峴]를 좋게 ..

[기억-정진원]덕장골과 큰집골

[기억]덕장골과 큰집골 정진원, 문학박사, 수필가 덕장골과 큰집골 [큰집 “죄수들의 은어로, ‘교도소’를 이르는 말”] 내가 나고 자란 마을은 마을이랄 것도 없이 서너 채 집들로 된 작은 동네였는데, 동네 이름이 ‘덕장골’이었다. ‘덕짱꿀’이라 소리 나는 대로 불렀었다. 그곳에 큰집이 있다고 해서 그런 동네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큰 ‘덕(德)’, 집 ‘장(莊)’하여 ‘덕장골’이 되었단다. ‘큰집골’이라 하면 더 좋았을 것을 딱딱한 한자식 이름이 되어 좋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떠랴. 그야말로 큰일이 터지고 말았다. 큰집골에 진짜로 ‘큰집’이 들어오게 되었다. 1987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던 서울구치소가 의왕시 포일동 큰집골, 덕장골로 밀고 들어왔다. 국어사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