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70년대 중반 안양유원지 계곡과 공짜풀장 전경

안양똑딱이 2016. 6. 30. 16:04

 

#안양 #역사 #기록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안양유원지 초입에 있던 공짜 수영장인 제1풀과 제2풀장과 주변 풍경으로 안양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람 이정범 선생이 제공한 사진입니다.
사진 중앙의 계곡을 보면 아래쪽이 제1풀장이고 위쪽이 제2풀장입니다 여름철 물이 찼을 경우 제1풀장은 수심이 꽤 깊어 어른들이 이용했는데 매년 1-2명의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지요. 풀장 좌우측 스탠드는 엉덩이를 드러 낸채 수영복을 갈아입거나, 옷을 보관하기도 하고, 차디찬 계곡물에 몸이 추우면 햇빛에 달구어진 돌 계단에 누워 휴식을 취하기도 했던 곳이었지요.
돌계단을 올라가면 뒤족으로 상점들이 쭈욱 있었는데 수영복과 자동차 타이어에 바람을 넣은 고무 쥬브를 빌려주기도 했고 사이다를 파는 가게에 활쏘기, 총쏘기 게임과 도깨비굴도 있었지요. 
특히 왼쪽 스텐드 위에는 여관이 서넛 있었고 서울에서 춤추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캬바레도 있었지요. 캬바레는 지금 카페로 바뀌었지만 실내 한쪽에는 당시 악사들이 올라서서 연주를 하던 원형무대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데 좌측 건물들중 맨 끝에 있는 건물이랍니다. 
사진 중앙의 뒤쪽으로 보이는 하얀 건물은 1970년대 초반 완공을 한후 문을 연 안양관광호텔(현 블루몬테)로 실외 수영장과 나이트클럽이 자리하고 있어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요. 이건물은 이후 기아연수원 등으로 활용되다가 지금은 유스호스텔로 등록되어 있으나 시설은 노후화되고 가격은 전혀 유스호스텔 갖지 않은 실정이지요.

안양풀-안양유원지-안양예술공원 
안양유원지 계곡은 풍부한 수량과 숲으로 1920년대 부터 여름철 피서지였으며 일제 강점기인 1933년 철도수입 증대와 안양리 개발을 위해 사진속의 공짜 안양풀을 개장한 이후에는 서울 시민들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1960년대 유료수영장이 서너개 생기고는 1970년대 한 해 평균 100만 명이 몰릴 정도였지요. 
실제로 관보를 보면 1966년 여름피서철인 8월 6일-28일까지 토요일.공휴일에 경부선 안양 풀 임시승강장(시흥~안양역, 안양풀입구)이 운영됐으며, 1967년에는 7월 14일부터 8월 20일까지 여객을 받는 등 안양 풀 임시승강장은 1969년에도 운영했다는 기록도 있지여.
또 1967년 7월29일자 <매일경제>에 안양유원지에는 하루 평균 4만여명(일요일 10만)의 피서객이 몰리고 서울에서 당일코스로 40원이면 왕복할 수 있고, 기차도 매시간마다 입구에 정차했다고 기록돼 있고요.
1963년 7월17자 <동아일보>에는 국립도서관이 피서객을 위해 안양유원지 풀장에 7월26일부터 8월14일까지 임간문고를 설치해 운영했으며, 1968년 6월8일자 <동아일보>에는 체신부가 6월10일부터 8월30일까지 안양우체국 임시출징소를 운영한 기록도 있습니다.
1976년 3월25일자 <경향신문>에는 안양유원지에 해마다 100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자 입장료를 받기로 했다는 기록도 있네요.
안양유원지는 1969년 1월 21일 국민관광지로 지정돼 입구에 아치모양의 철구조물로 '안양유원지'라는 간판이 나붙고 '안양 풀' 대신 '안양유원지'라는 명칭을 처음 쓰기 시작했으며 경기도관광협회 안양유원지지부가 결성되어 입장 수입으로 유원지를 관리하게 됩니다.
또 유원지 계곡에는 대형풀장, 맘모스풀장, 만안각 풀장 등 인공풀장과 안양관광호텔(현 블루몬테 리조트)이 들어서고 안양 최초의 캬바레가지 들어설 정도로 호황을 누리지요.
그러나 1971년 7월 30일 개발제한구역(일명 그린벨트)으로, 1973년에는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건축 및 재건축이 억제되는 특별관리하에 들어가면서 발길이 끊기는 계기도 시작되지요.
더욱이 1977년 사상 유례없는 안양 대홍수는 기존 안양유원지 계곡의 경관을 참혹하게 파괴하고 지나갔다. 이로인해 안양 풀은 상류에서 내려온 토사와 자갈, 대형 바위돌로 메꾸어지고 휩쓸리며 완전히 자취를 감춰서 결국 잊혀져 버리는 계기가 되고 말았지요.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잃어버린 안양유원지는 이후 계곡을 넘칠 정도로 풍부하던 수량도 줄어들면서 인적이 끊긴 유원지로 전락하자 결국 교통부는 1984년 11월 28일 국민관광지 지정을 취소했으며, 안양유원지의 번창과 영화는 지난 추억의 이야기가 됐고요.
안양시는 1994년 유원지의 명성을 되찾고, 지역경제활성화 및 지역개발 차원에서 다시금 바라보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 지방자치의 실시로 민선시장체제가 출범하면서 유원지 정비 및 개발계획은 주요 공약의 하나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안양시는 2005년 APAP(공공예술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안양유원지를 단순 휴식공간 차원을 넘어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거기에 예술까지 결합된 국제적 명소로의 완전 탈바꿈을 시도했으며, 명칭공모를 통해 2006년 '안양예술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합니다.
사진속 안양 풀은 1977년 안양 대홍수로 토사와 바위로 뒤덮여 용도가 폐기됐지요. 그 원형은 남아 있었으나 2000년 안양유원지 정비사업으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려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름도 바뀌었지요. 안양풀장에서안양유원지로 그리고 현재의 안양예술공원으로.
모든 흔적들이 사라졌어도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기에 그 당시를 추억해 볼 수가 있어 다행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