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광역신문사 (aknews0511@daum.net) 기고 3편 연재
수암천 도시 재생사업, 누구를 위한 것인가 ①
안양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도시 연역’이 나온다.
안양시는 서기 475년(고구려 장수왕 6년) 율목군으로 속하다가 300년 후인 757년(통일 신라 경덕왕)년 곡양현이 되었다.
200년 후인 940년(고려 태조 23년) 조선 금주현 과주가 되었다. 500년 후인 1413년(조선 태종 14년) 과천현으로 되었다. (안양 부림말 남평문씨 종중자료 박물관 기증 절차중) 고증문서 그 500년 후인 1895년(조선 고종 32년) 과천군이 되었다.
그 50년 후인 1941년 10월 1일 시흥군 서이면 안양면으로 개칭되었다.
10년 후인 1949년 8월 14일 안양면에서 안양읍으로 승격했다가 1973년 7월1일 안양은 안양시로 승격 되었다.2004년 10월에 2개구 31개동, 227.464세대 547,917명의 인구가 58㎢의 면적에 살며 이룩된 도시로 2023년 안양시는 승격 50주년이다.
안양은 도시의 역사만 해도 1300년의 오래된 도시다.
본인의 선조께서는 과천 부림말 (동편) 조상 대대로 터를 잡고 농사와 과수원을 하시다가 1956년부터 설립된 차량사업 및 운송업 ‘현대공업사’를 설립한 아버님(문현식님)께서 40여년간 경영하시다가 안과 밖의 사정으로 1987년 현대툴파크로 개칭되어 안양과 시흥, 수원 일대와 충남 당진산업단지 산업현장에 기계부품를 공급하는 현재의 회사가 되었다.
이곳에서 4대를 이어 살아온 전형적인 안양 토착민이 세운 토종기업이며 그 경영인 역시 안양과 수원 일대의 산업체들에 원부자재를 공급해온 안양 업체의 안양역앞 한 시민이다.
당시 안양시의 원도심은 안양역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는데 특히, 안양역 주변에는 강원도에서 캔 대성탄좌의 무연탄을 산더미처럼 적재하면서 서울시민이 소비하는 연탄을 만드는 태진연탄, 서울연탄공장과 서울에 물자를 공급하는 대한통운(대형 마루보쉬)이 있었다.
안양은 거대도시 서울에 연탄과 물자를 공급하는 서울 남부의 외곽도시이자 위성도시였으며, 안양역은 안양의 중심지이다.
안양역 옆 채탄장에 무연탄을 하차하거나, 차에 실을 때 발생하는 무연탄 가루는 비산먼지로 인한 공해의 주범이었다.
이 곳 주민들은 무연탄가루의 분진을 들이마시면서도 생계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호구지책 때문에, 밤낮없이 안양, 수원, 인천 일대의 민간사업체들 공장 가동에 필요한 각종 원부자재를 조달 공급하느라 주말도 없이 영업을 하며 공장이 24시간 가동되도록 최대한 뒷바라지를 해야만 하는 군번 없는 산업전사이자 안양, 시흥의 공장 지킴이 ‘5분 대기조’ 역할을 해왔다.
당시 6.25전쟁 통에 먹고 살기도 어려운 찌든 가난의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지나며, 문민시대 전 신작로에서 발생하는 분진가루와 무연탄차 상하차시 발생하는 무연탄 가루, 연탄을 찍어낼 때마다 주변에 퍼지는 눈에 안보이는 미세먼지인 분진 가루를 들이 마시며 이를 씻어내고자 민간요법이라며 돼지고기가 끊 키질 않았고 기름장사에 휘발유를 마시기도 했는데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었던가?평생을 하시던 안양 최초 운수업, 타이어 차량수리업에서 우여곡절 끝에 산업기자재 납품으로 이 자리를 떠나면 죽을새라 60년동안 사업을 하며 교통이 편리한 안양역 앞을 사수하며 안양시와 함께 그 영욕을 함께 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 집안은 선조들 대에 걸친 평생 생업과 집안의 모든 희망과 미래를 바치며 안양시 발전의 한 축을 토박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묵묵히 안양을 지키는 무명의 안양 시민이었고 안양의 파수꾼이었다.<다음호에 계속됩니다>
수암천 도시 재생사업, 누구를 위한 것인가 ②
아버님께서는 1986년 안양1동 주민자치위원장을 겸하셨으며, 아버님은 조국을 위해 흘리신 땀과 눈물은 말할 것도 없으며 건강한 신체까지도 조국을 위해 싸운 6.25 참전 용사와 경찰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며 국민으로서의 마땅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셨다.
생업에서도 철저한 서비스정신으로 ‘바쁜 일손을 돕는 충실한 사업체가 되자’라는 사훈을 내세우고 생산공장이 멈추지 않도록 거래처를 돕는 보람으로 사셨는데, 안양 일대 운수사업의 메카이면서 간이 삼륜차까지도 제작하시며 시민들의 손과 발로써 생사고락을 함께한 세월이었다.
이렇게 한 도시가 성장하기 까지에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구성원인 지역주민들이 안양이 내 삶터이며 고향이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고, 지키고, 감시하고, 납세의무와 봉사한다는 희생정신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밀실행정으로 시작된 수암천 도시재생1977년 물난리로 병목안과 충훈부에서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안양역 주변은 지대가 높아서 전혀 피해가 없었다. (군대 복무중)2015년 안양시는 수암천 재개발사업을 발표하고 수암천에 지하를 파서 3만톤의 빗물을 저장할수 있는 저수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암천 하천정비사업은 만안구 안양동 수암천 복개주차장을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정비, 지하저류조, 공영주차장, 공원 등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였다.
2015년 12월 국토부 하천공모사업에 선정됐고 예산 966억원 (국도비491억원, 시비 475억원)이 투입될 계획으로 시작했는데, 안양시는 원도심 활성화를 내세워 2020년 2월 도시계획시설사업 실시 계획인가를 고시하고 2020년 하반기부터 수용에 들어갔다.저수조는 일시에 많은 비가 내릴 경우에 하천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빗물이 도로 위로 넘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빗물을 가두었다가 시차를 두고 하천으로 흘려보내는 수해방지 시설이다.
수암천의 경우라면 지대가 높아 서 1977년 홍수에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안양역 인근이 아니라 지대가 낮아 침수피해를 입었던 삼덕제지 인근에 지하 저수조를 설치하는 것이 타당한 일인데, 무슨 의도였는지 안양시는 전혀 무관한 수암천 정비사업(사설 시행업자 농간+캠코대부료+개천부지 불하후 재수용 실패)과 안양역전 정비사업을 하나로 묶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는 탁상의 행정편의적인 발상인 것이다.<다음호에 계속됩니다>
수암천 도시 재생사업, 누구를 위한 것인가 ③
안양역전은 지난 70여년의 세월동안 저수조가 없는 상황 속에서, 단 한 번도 침수피해가 없었던 지역이며, 이곳에서 70여년을 붙박이로 살아온 주민들로서는 저수조 빗물 펌프 사업은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돈키호테식 망발로 밖에 다가오질 않는다.
또한, 이 같은 계획이 전문적인 용역이나 주민의견 수렴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체, 밀실에서 급조됐다는 안양시의 갑질과 부끄러운 행정은 안양시 50주년의 어두운 그림자이며, 전형적 독선적 행정의 표본인 것이다.
이같은 계획이 발표되자 해당 지역에 수용되는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가장 큰 원인은 보상가였다.
정비사업이 발표된 이후 수암천 인근 땅을 경매로 취득해 건물을 지은 이들은 평당 1억이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반해 안양시가 안양역전 수용지역에 제시하는 보상가는 평당 1,400여 만 원에 불과했다.
시는 이에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공익성 심사를 통해 토지수용을 인정한다는 답변을 받아냈고 지장물 보상금을 법원에 공탁해 토지 소유권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되어, 경기도는 시에 ‘향후 도비 지원이 어렵다’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그나마도 본인의 경우에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았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호계동 상가에 건물를 계약했던 터라 잔금 기일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 공탁금을 수령하게 됐다.
현재 안양시는 올해 가을 강제집행을 강행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시는 점유자 없는 빈 건물 일부를 철거하고 남은 세입자에 대한 강제집행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현 시장, 주민협의 없이 시행 한 전시장, 도시재생과 공무원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는 현시장은 “원점에서 재검토”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그러나 당선되고 나서는 말을 바꾸어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민 협의없이 집행했던 안양시의 무능한 행정에 관여한 만안구 국회의원, 안양시1동 시의원, 도시재생과 공무원 및 정비사업 용역에 관여한 자들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나열 하라고 하면 응당히 답할 수가 있다.
민주사회에서, 더욱이 지방 자치단체는 협치와 대화를 통한 의회 정치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오래 전부터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온 안양역 주민들에게 위로을 해줘도 모자를 판에, 어찌하여 삶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고 쓸어 버린단 말인가.
“수암천 도시재생사업은 원주민 쫓아내는 사업이다” 만천하에 알릴 것이다. 안양시 50주년을 맞았다.누구나 기뻐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공공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서민의 재산을 갈취하는 식의 안양시의 밀실 독선 행정과 안양시의회를 책망한다.
비현실적인 저수조 시설로 막대한 세금만 낭비하며, 인위적으로 만드는 정치적 이득 행위로 밖에 볼 수가 없다. 아무 죄 없이 묵묵히 안양시를 지켜온 토착민을 헐값 보상비로 내쫒는 행위와 함께 국민 세금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법무법인 08인의 변호사를 선임 대동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훗날 안양시 역사는 반드시 준엄하게 심판평가받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정중히 재검토를 요청한다. 그곳에는 수백년을 사용했던 가옥 접한 철로변 커다란 우물터가 나올 것이다. 아주 귀중한 안양 역사 문화재 증거일 것이다.
끝으로 이런 횡포 사업이 다시 재현되거나 반복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마땅히 수암천 재생사업은 재검토 되어야만 한다.
[편집자 주]
문화영님은 안양 부림말 출신의 토박이로 환일고&안양공고.기계과졸 성결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육군 8사단16연대본부
사격감독관으로 군 복무를 하고 현재 (주)현대툴파크 회장. Asan Steel공업(주) 전무이사로 일하면서 안양시민회 회원, 새안양회회원, 안양문화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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